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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도서관은 창고에서 창구로

Joyfule 2018. 6. 16. 18:01
    
    이제 도서관은 창고에서 창구로   (펌)   
     '열림'의 정체를 설명하자면 도서관을 예로 드는 게 좋겠다. 
    나는 미시간 공대에서 '21세기의 도서관 설계'를 위해 도서관장의 자문 역할을 맡은 적이 있는데 
    실은 그 일을 맡는 바람에 오히려 도서관학을 전공한 사람들로부터 거꾸로 많이 배웠다. 
    나는 도서관이 학교 부설 건물이 아니고 중앙 건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한국에 나올 때마다 틈만 있으면 도서관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한다. 
    그런 기회가 작년 봄에도 나한테 주어졌다.
    생긴 지 채 5 년이 안 되어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 기술 교육 대학(한기대)을 나는 여러 차례 방문하였다. 
    한기대는 노동부 산하의 유일한 대학으로서 특수 임무를 띤 대학이다. 
    특히 존경하는 권원기 총장님의 지도력으로 미루어 볼 때 
    앞으로 어떻게 발전될지 기대되는 대학이다. 
    지난봄에는 권 총장님과 만나 도서관에 대해 의논한 적이 있었다. 
    도서관을 짓는데 무슨 목적으로 지어야 하는가가 주제였다. 
    기하 급수로 불어나는 지식(책, 논문집, 학회지 등)을 다 갖추자니 
    불가능할 것 같은데 그 자료들을 추려야 한다면 뭘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하는가? 
    또 무슨 운영 철학을 가져야 하는가? 
    생각해 보면 여간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다. 
    지식을 얻고자 갈망하는 사람을 흔히들 목마른 사람에 비유한다. 
    그래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 헤매는 사람을 사막을 헤매면서 목말라 하는 사람으로 연상한다. 
    이 비유에서는 지식은 물이고, 도서관은 타는 목을 축여 줄 물이 고여 있는 오아시스다. 
    이렇게 볼 때에는 도서관이 바로 지식의 오아시스인 것이다. 
    좀 딱딱하게 표현하자면 여태까지 도서관을 
    지식의 집산지 또는 정보 창고로 보아 온 경향이 짙다.
    나의 아내가 한국에 연구 자료를 구하러 갔던 1987 년의 일이다. 
    책이 많다는 서울 대학 도서관에 갔더니 졸업생이 아니라고 못 들어가게 하더란다. 
    그래서 모교인 이화 여대에 갔더니 이번엔 재학생이 아니라서 못 들어간다고, 
    졸업생도 못 들어가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항의했더니 
    교무처에서 졸업증명서를 떼고 주민 등록 등본도 가져 오라고 하는 바람에 
    서류 만드느라 하루 이틀이 걸릴 것이 아까워 포기했다고 한다.
    (서강 대학에 갔더니 두말 없이 들여보내 주더란다)
    지식을 사막의 물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오아시스에 아무나 들어와 
    물을 마셔 버려 물이 금방 바닥날 것이 두려울 수밖에! 
    지식을 사막의 물로 비유하는 한 열린 도서관은 운영할 수 없다.
    학생들의 경우는 아직도 도서관을 '정답'이 있는 정보 창고라고 여기는 것 같다. 
    외워야 할 많은 정보량이 가득 들어 차 있으니 
    암기식 공부에 신물난 학생들은 도서관 가기를 꺼리는 게 당연하다. 
    이들은 책 냄새만 맡아도 골치가 아프다고 한다. 
    그래서 과제물을 내주면 한 학생이 십자가를 메는 셈치고 
    도서관에 들어가서 책을 찾아 나오고, 이를 기다리던 나머지 학생들이 
    같은 책을 돌려보며 대충 비슷비슷한 답을 적어 제출한다. 
    정답(닫힌 생각)을 요구받은 학생들이 마치 답 찾아 꺼내기 식으로
    지식 창고를 이용하는 한 열린 도서관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구상하는 도서관은 책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지 않다. 
    오히려 텅빈 공간이 많아 여유가 있고 창문도 많아 화창하다. 
    책을 보다가 쉴 만한 소파와 쉼터도 군데군데 마련해 놓아야 한다.
    미국의 최고 갑부 록펠러가 사업에서 번 돈을 
    지식 산업에 희사하는 뜻에서 지었다는 시카고 대학의 도서관을 보자. 
    세계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100 명 이상) 배출한 시카고 대학의 저력은 
    시카고 대학 도서관(Regenstein Library)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전교생이 도서관 안에 자기 캐비닛이 있고, 
    공부할 터와 쉴 터가 최적의 상태로 지어진 곳이다. 
    우리 나라 갑부 중에서도 이 정도의 지식 산업에 희사할 사람은 없을까.
    내가 상상하는 도서관은 보물 단지를 자물쇠로 꽉 잠가 놓은 듯한 닫힌 창고가 아니다. 
    내가 그리는 도서관은 사람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는 곳이다. 
    이제 지식은 어느 한 사람이 갖는다 해서 없어지는 보물이 아니다. 
    열 명, 천 명이 가져도 여전히 그대로 있다. 
    도서관의 부가 가치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수록 높아진다.
    도서관이나 대학은 지식을 가두어 놓는 탑이 아니라 
    지식을 주고받고 나누고 창조하는 지식 산업의 생산 본부다. 
    열린 교육이란 도서관에 창구를 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