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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1. - 쌩 떽쥐뻬리

Joyfule 2011. 1. 21. 03:19

 

인간의 대지1. - 쌩 떽쥐뻬리

 

 

대지는 우리들 자신의 대해 모든 책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왜냐하면 대지는 우리에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떤 장애물과 겨룰 때 비로소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하다. 대패라든가 쟁기가 있어야 한다.

농부는 땅을 가는 동안에 자연의 비밀을 조금씩 알아내는데

이렇게 캐낸 진리야말로 보편적이다.

이와 같이 항공로의 도구인 비행기도 사람을 모든 옛 문제들로 끌어넣는다.

아르헨티나로 최초의 야간 비행을 하던 날 밤의 들판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불빛들이 마치 별처럼 깜빡이던 밤의 인상이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다.

그 불빛 하나하나가 이 어둠의 큰 바다 속에도

인간의 의식이라는 기적이 깃들이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 보금자리 속에서 사람들은 읽고, 생각하고, 마음속 이야기를 되뇌이고 있을 것이다.

딴 집에서는 공간의 계측에 애를 쓰고,

앙드로메드좌의 성운에 관한 계산에 열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저기에서는 사랑을 속삭이고 있을 것이다.

띠엄띠엄 그 불빛들은 저마다의 양식을 찾아 들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 중에는 시인의, 교원의, 목수의 불빛 같은 아주 얌전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 살아 있는 별들 가운데에는 또한 얼마나 많은

닫혀진 창들이, 꺼진 별들이, 잠든 사람들이 있을 것인가...

서로 맺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들판에 간간이 타오르고 있는 이 불빛들의 어느 것들과 마음이 통하도록 해야 한다.


[1] 항공로

1926 년의 일이다.

나는 "라떼꼬에르" 회사의 젊은 정기 항공로 조종사로 갓 들어간 때였다.

이 회사는 나중에 "에르 프랑스" 회사가 된 우편 항공회사가

전에 뚤루즈와 다까르 간의 연락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내 직업을 익히고 있었다.

나는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우편기를 조종하는 영광을 갖기에 앞서

풋나기들이 치뤄야 하는 훈련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시험 비행이며, 뚤루즈와 빼르빼냥 간의 단거리 왕복이며,

썰렁한 격납고 속에서의 쓰라린 기상학 공부 등이었다.

우리는 아직 알지도 못하는 스페인의 산들에 대한 두려움과

선배들에 대한 존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선배들을 우리는 식당에서 만나곤 했는데,

무뚝뚝하고 약간 쌀쌀한 그들은 거만스럽게 우리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었다.

또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알리깡뜨나 카사블랑카에서 돌아와서

비에 젖은 가죽옷을 입은 채 뒤늦게 우리들과 합류했을 때,

우리들 중 하나가 조심조심 그의 여행에 대해서 묻기라도 하면

그의 짤막한 대답만으로도 폭풍우가 부는 날이면 덪과 함정과

느닷없이 나타나는 낭떠러지와 삼나무라도 뿌리 채 뽑아버릴 것 같은

돌풍들로 가득찬 우화적인 세계를 우리 눈 앞에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시커먼 용바람이 골짜기 어귀를 가로막고,

번개 뭉치들이 산마루를 뒤덮는 그런 광경이었다.

이 선배들은 교묘하게 우리들의 존경심을 북돋우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그들 중의 하나가 돌아오지를 않아

영원히 우리의 존경할 본보기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나중에 꼬리비에르 산중에서 죽은 뷔리가 돌아오던 어느 날의 일이 생각난다.

그 나이 많은 조종사는 우리들 사이에 들어와 앉자

아직도 어깨가 일 때문에 짓눌려 있는 듯이 아무 말없이 무겁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항공로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하늘이 썩어 문드러진 듯

장마 비를 뿌리고, 조종사에게는 옛날의 돛단 군선의 대포들이

밧줄이 끊어져서 갑판 위를 마구 굴러다니듯이 모든 산들이

시커먼 구름 속에서 뒹굴고 있는 것같이 보이는 그런 악천후의 저녁이었다.

나는 뷔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이번 비행이 힘들었냐고 물어보았다.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 머리를 접시 위에 틀어박고 있던 뷔리는 내 말을 듣지 못했다.

덮개 없는 비행기에서 날씨가 궂을 조종사는 좀 더 앞을 잘 보가 위해서

바람막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내다보게 되는 데

그래서 귀를 때리는 바람 소리가 오랫동안 윙윙거리기 마련이다.

마침내 뷔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그제야 내 말이 들리는 것 같았고

기억을 더듬는 듯하더니 갑자기 밝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 웃음이 나를 감탄하게 했다.

왜냐하면 뷔리는 좀처럼 웃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그 짧은 웃음이 그의 피로를 밝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승리에 대해서는 그밖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시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음식을 씹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어둠침침한 식당 안에서 하루의 초라한 피로를 풀고 있는 하급 관리들 가운데에서

이 묵직한 어깨를 가진 동료가 내게는 이상하게도 고귀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 거친 외모 속에서 용을 정복한 천사의 모습을 엿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내게도 차례도 닥쳐 지배인 실로 불려 가는 저녁이 왔다.

그는 이렇게만 말했다.

"내일 출발하시오."

나는 그의 작별인사만 기다리며 거기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잠시 동안의 침묵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규정은 잘 알고 있겠지?"

그 당시의 비행기 엔진은 오늘날만큼의 안전성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엔진은 종종 접시가 깨지는 것 같은 소음 속에

아무 예고도 없이 별안간 우리를 내팽개치기가 일쑤였다.

그러면 조종사는 피신할 데라곤 거의 없는 스

페인의 바위산을 향해 손을 들 도리밖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늘 말하곤 했었다.

"여기서 엔진이 고장 나는 날에는 유감이지만 비행기도 이제 끝장이다."

그러나 비행기는 바꿔 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턱대고 이 바위산을 들이받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산악지대에서는 구름바다 위로 비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고,

위반하는 경우에는 가장 무거운 징계를 받게 되어 있었다.

고장을 일으킨 조종사가 흰구름층 속으로 빠져들어 가다가는

보이지 않은 산꼭대기를 들이받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지배인의 느릿한 목소리를 끝으로

다시 한번 복무 규정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기야 스페인에서 구름바다 위를 나침반만 가지고 비행하는 것도 재미있지.

아주 운치가 있고 하지만...."

그리고는 더욱 느리게 말했다.

"... 하지만 명심해 두시오.

그 구름바다 밑은 ... 바로 저승이라는 것을."

그러자 갑자기 구름을 뚫고 솟아올랐을 때 보게 되는

그렇게도 고요하고 평평하고 단순한 그 세계가

내게는 미지의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 고요가 덫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나는 저 내 발 아래 펼쳐져 있는 끝없는 흰 덫을 상상해 보았다.

그 밑에는 누구나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북적거림이나, 혼잡이나, 도시의 활기찬 차들의 움직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절대적인 침묵과 보다 결정적인 평화가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 흰 끈끈이가 나에게는 현실과 비현실, 기지와 미지의 경계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벌써 어떤 풍경이든 그것을 보는 사람의

문화와 작업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산골 사람들도 구름바다를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서 이 우화적인 장막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지배인의 사무실을 나왔을 때 나는 어린애 같은 자랑을 느꼈다.

나도 이제 내일 새벽부터는 승객에 대한 책임,

아프리카행 우편물에 대한 책임을 맡게 된다.

그러나 나는 또한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는 아직 준비가 충분치 못하다고 느꼈다.

스페인에는 피난처가 적다.

위협적인 고장을 당했을 때 구조 받을 만한 곳을 찾아낼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나는 필요한 가르침도 찾지 못한 채 불모의 지도 위에 엎드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무서움과 자랑스러움이 뒤얽힌 가슴을 안고

이 싸움의 전날 밤을 동료 기요메 한테 가서 지내기로 했다.

기요메는 이 항공로를 앞서 왕래한 경험자였다.

기요메는 스페인의 열쇠를 얻는 비결을 알고 있었다.

나는 기요메의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그는 빙그레 웃었다.

"소식을 들었네. 기쁜가?"

그는 포르투갈산 포도주와 컵을 가지러 벽장 있는 데로 가더니

여전히 빙글거리면서 돌아왔다.

"우선 축배를 드세, 염려 말게. 잘될 테니."

훗날에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과

남대서양 횡단 우편 비행의 기록을 수립하게 될 이 동료는

램프가 불빛을 발하듯이 주위에 자신을 펼치는 것이었다.

그보다 몇 해 앞선 이날 저녁,

그는 셔츠바람으로 램프 밑에서 팔짱을 끼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에 참 미소를 띠며 이렇게 간단히 내게 말하는 것이었다.

"폭풍우니 안개니 눈 따위가 이따금 자네를 괴롭히겠지만,

그럴 때 자넨 자네보다 먼저 그것을 겪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그리고 자네 자신에게 이렇게 타이르게.

"남들이 해낸 일은 나도 꼭 해낼 수 있다"라고."

그러나 나는 가지고 간 지도를 펼치고 그렇더라도

나와 함께 항로를 재검토 해보자고 간청했다.

이렇게 램프 불 아래 엎드려 이 선배의 어깨에 기대고 있으려니

나는 학창시절의 평화가 되돌아옴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나는 얼마나 이상한 지리 수업을 받았던 것일까?

기요메는 내게 스페인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그는 스페인을 내 친구로 만들어 주었다.

그는 수로학에 관해서도 주민이나 가축 임대에 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또 구아디스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고,

다만 구아디스 근처에 들판을 둘러싸고 서 있는 세 그루의 오렌지 나무에 대해서만 말했다.

"그것들을 조심하게. 자네 지도에다 표시해 두게...."

그래서 그 후부터는 세 그루의 오렌지 나무가 지도 위에서

시에라네 바다의 높은 산맥보다도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는 또 롤까 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롤까 시 근처에 있는 하찮은 농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 살아 있는 농가에 대해서, 그 농부에 대해서, 그 안주인에 대해서.

그러자 우리로부터 1천 5백 킬로 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부부가 엄청난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산비탈에 자리잡은 채 마치 등대지기처럼

그들의 별아래서 사람들에게 구원을 청하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세계의 모든 지리학자들도 모르고 있는 상세한 것들을

그 망각과 상상도 할 수 없는 먼 거리 속에서 끌어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지리학자들의 흥미를 끄는 것은 큰 도시에 물을 대주는 에브르강 뿐이지,

모뜨릴 서쪽 숲 속에 숨어서 서른 포기쯤의 꽃을 가꾸어 주는

아버지인 그런 개울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개울을 조심하게. 이것 때문에 불시착에 소용이 없으니까....

이것도 자네 지도에 적어 두게."

아! 나는 모뜨릴의 그 작은 뱀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그 가벼운 물소리로

개구리 몇 마리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고작인 이 실개천 눈만 가리고 있는 격이다.

이 불시착의 낙원 속에 풀숲 밑에 길게 누워,

여기서 2천 키로 미터나 떨어진 것에서 나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첫 기회에 그놈은 나를 불꽃더미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또 조그마한 산 허리에 진을 치고,

당장이라도 덤벼들 태서를 갖추고 있다는 그 서른 마리의 싸움 양에 대해서도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대기하는 것이었다.

"자네는 이 초원에서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겠지. 하지만 보게!

자네 바퀴 밑으로 서른 마리의 양들이 굴러든단 밀일세...."

이런 믿지 못할 위협에 대해 나는 다만 감탄의 미소로써 답할 뿐이었다.
이리하여 내 지도 속의 스페인은 램프불 아래서 차츰차츰 동화의 나라가 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