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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2 - 쌩 떽쥐뻬리

Joyfule 2011. 1. 22. 10:26

 

인간의 대지2 - 쌩 떽쥐뻬리


[1] 항공로

 

나는 피난처와 함정을 십자표로 표시했다.

그 농부와 서른 마리의 양과 그 개울도 표를 했다.

나는 지리학자들이 등한히 했던 그 양치기 처녀를 정확한 제자리에 놓았다.

기요메와 작별하고 나오자, 나는 이 겨울을 얼어붙은 밤을 걷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나는 외투 깃을 세우고 아무것도 모르는 행인들 틈에 끼어 내 젊은 정열을 산책시켰다.

마음에 비밀을 간직하고 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이 야만인들은 지금 내가 누군지 모르고 있지만,

그러나 새벽이 되어 우편 행낭이 비행기에 실릴 때가 되면

그들은 자기의 격정과 정열을 내게다 맡길 것이다.

그들의 희망도 내 손안에 맡길 것이다.

이렇게 나는 외투에 몸을 감싸고, 그들 틈에 끼어 보호자 같은 걸음을 옮기고 있는 데도

그들은 나의 심려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내가 이 밤으로부터 받는 여러 가지 메시지들도 전혀 받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어디에선가 채비를 차리고 있을지도 모를,

그리고 내 첫 비행을 훼방 놓을지도 모를 그 눈보라가

바로 내 몸에는 중대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별들이 하나하나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산책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별들의 비밀은 나 혼자만이 알 수 있었다.

전투에 앞서 적군의 배치를 내게만 알려주는 셈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게 이렇게 막중한 책임을 지워주는 이 암호를

크리스마스 선물들이 번쩍이는 환한 쇼윈도우 옆에서 받았던 것이다.

거기에는 이 밤에서 땅위의 모든 보화가 진열되어 있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단념의 자랑스러운 도취감을 맛보는 것이었다.

나는 협박당한 병사였다.

그러니 밤축제를 위한 이 번쩍거리는 수정 그릇들이며,

저 램프 갓이며, 저 책들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미 나는 안개 덮인 하늘에 잠겨 있는 것이다.

벌써 나는 정기 항공의 조종사로서 비행하는 밤들의 쓰디쓴 과육을 베어 물고 있는 건이었다.

나를 깨워 준 것은 새벽 3시 였다.

나는 덧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거리에 비가 내리는 것을 보며 신중하게 옷을 입었다.

30분 후 나는 빗물로 번들거리는 보도에서

작은 가방 위에 앉아 내 차례로 회사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나보다 앞서 많은 동료들이 오늘 같은 처녀 출동 날에

가슴을 약간 조이며 이와 똑같은 기다림을 맛보았을 것이다.

마침내 거리 모퉁이에서 구식 차가 고철 같은 소리를 내며 나타냈다.

이번에는 나도 다른 동료들처럼 잠이 덜 깬 세관관리와

몇몇 사무원들 틈에 끼어 등받이 없는 의자에 자리를 잡을 권리를 가졌다.

이 버스는 곰팡이 냄새와 먼지 많은 관청 냄새와

자칫 사람의 한 평생이 파묻히기 쉬운 낡은 사무실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차는 5백 미터씩 가다가는 멈춰

서기를 하나 더, 세관리를 하나 더, 주임을 하나 더 태우기 위해서.

차안에서 벌써 꾸벅거리고 있던 사람들은 새로 탄 사람의 인사말에

분명치 않게 웅얼웅얼 대답했고 새로 탄 사람들도

가까스로 자리를 비집고 앉자마자 꾸벅거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뚤루즈 시의 울퉁불퉁한 길 위를 실려 가는 일종의 서글픈 짐들이었다.

이렇게 사무원들과 줄을 지어 섞어 있으면

정기 항공의 조종사도 언뜻 보면 거의 분간되지 않는다.

가로등이 줄을 지어 스쳐가고 비행장이 가까워 온다.
그러면 진동이 심란 이 낡은 버스도 이제는

변모한 사람이 빠져나올 한낱 회색빛 번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동료들 누구나가 이와 같이 한번은 오늘 아침과 비슷한 아침에

저 주임의 화풀이에 아직도 짓눌려 있는 욕받이 하급 관리에 끼어 앉아 있는 자신 속에서

스페인과 아프리카 간 우편기의 조종 책임자가 태어나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3시간 후에는 오스삐딸레의 용과 번개 속에서 대결하고

4시간 후에는 그 용을 정복하고 나서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완전히 혼자만의 자유 판단하에 해상으로 우회할 것인지

아니면 알꼬아 산덩이를 향해 똑바로 돌진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뇌우와, 산악과 대양과 대결할 인간이 태어나는 것을.

동료 누구나가 이렇게 한번을 뚤루즈의 음산한 겨울 하늘 아래

이름 모를 무리들 속에 묻혀서 오늘과 흡사한 아침에 5시간 후면

북극의 비와 눈을 뒤로 하고 겨울을 버리면서 엔진의 회전수를 줄이고

한여름인 알리깡뜨의 찬란한 태양 속으로 내려가기 시작할

왕자가 자라나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 낡은 버스는 이미 없어졌다.

그러나 그 딱딱하고 불편스러웠던 것은 내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차는 우리들의 직업상 거친 기쁨을 맛보는데 필요한 준비를 잘 상징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는 모든 것이 사무치게 검소해 보였다.

그리고 지금 생각난다.

3년 뒤에 그 차 안에서 열 마디도 안되는 대화에서 조종사 레끄리벵의 죽음을 알게 됐던 일을.

그도 안개 짙은 날이나 혹은 어느 밤에

갑자기 영원한 은퇴를 한 이 항로의 1백여 명의 동료들 중의 하나였다.
그 때도 역시 새벽 3시였고, 똑같은 침묵이 흐르고 있다.

어둠 속에 있어 모습이 안보이는 지배인이 감독관에게 소리 지르는 것이 들렸다.

"레끄리벵이 어젯밤에 카사블랑카에 착륙하지 않았다네."

"아! 그래요?"


감독관이 대답했다.
그리고 갑자기 꿈 속에서 끌려 나온 그는

잠에서 깨려고 자신의 근무열을 보이려고 애쓰며 덧붙였다.

"아! 그래요? 통과를 못했군요? 그래, 되돌아 왔나요?"

그 말에 대해 버스 안쪽에서는 다만 "아니"하는 대답뿐이었다.

우리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말도 없었다.

그리고 1초 1초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아니"라는 말에는

아무런 다른 말도 계속되지 않으리라는 것,

이 "아니"라는 말에는 호소할 길이 없다는 것,

레끄리벵은 카사블랑카에만 착륙 못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어떤 곳에도 착륙하지 못하리라는 것이 더욱 명백해졌다.

이리하여 그날 아침 나의 첫 우편 비행을 하는 새벽에

나는 또한 이 직업에 따른 신성한 의식을 치렀고

유리창 너머로 가로등의 불빛을 반사하여 번들거리는

돌을 깐 길을 내다보며 자신을 잃어감을 느꼈다.

물구덩이 위로 스쳐 가는 바람이 종려 나뭇잎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내 처녀 비행치고는 ... 정말이지... 운이 나쁜데."

나는 감독관을 쳐다보았다.

"날씨가 좋지 않죠?"

감독관은 피곤한 시선을 창쪽으로 돌리더니 이윽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뭘, 그렇지도 않은데."

그럼, 악천후는 도대체 어떤 징후로 알아낼 수 있는가 하고 나는 자문해 보았다.

 기요메는 엊저녁에 단 한번의 미소로 선배들이 들려주면서

우리를 겁주곤 했던 불길한 전조들을 지워 주었지만,

그래도 그 불길한 징조가 내 기억 속에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그들은 흔히 이런 말을 했었다.

"항공로를 조약돌 하나하나까지 알고 있지 못한 조종사가

만일 눈보라라도 만난다면, 가엾지...아암! 가엾고 말고...."

그들에게는 위신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약간 거북스런 동정의 눈초리로 우리들을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천진난만함을 동정하기라도 하듯이.

하기야 이 버스가 이미 우리들 중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피난처 노릇을 해 주었던가?

60명? 80명? 비오는 날 아침, 바로 이 과묵한 운전사에게 이끌려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밝은 점들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담배가 제각기의 명상에 구두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늙은 월급쟁이들의 하찮은 명상들, 우리들 중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람들은 마지막 호상객 노릇을 했을 것인가?

나는 또 그들이 낮은 소리로 주고받는 마음속 이야기를 귓결에 들었다.

그것은 병이니, 돈이니, 집안 걱정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것은 이 사람들이 갇혀 있는 우중충한 감옥의 벽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별안간 운명의 보습이 내 앞에 나타났다.

여기 있는 늙은 샐러리맨이여, 나의 동료여,

아무도 당신들을 해방시켜 준 일이 없고 그것은 조금도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은 저 흰개미들이 그렇듯이 광명으로 빠져나갈 모든 구멍을

한사코 시멘트로 막음으로써 당신의 평화를 건설해 왔다.
당신은 자신의 소시민적인 안전 속에 자신의 습관 속에

시골 생활의 숨막히는 관습 속에 공처럼 움츠려 들어가

바람과 조수와 별을 막기 위해 이 보잘 것 없는 성벽을 쌓아 올렸다.

당신은 세상의 큰 문제에 대해서 근심하려 하지 않았고

인간으로서의 처지를 잊기 위해서 갖은 고생을 했다.

당신은 방랑하는 떠돌이 별의 주민이 결코 아니며, 대답이 없을 질문은 던지지도 않는다.

당신은 뚤루즈의 한 소시민이다.

때가 늦기 전에 당신의 어깨를 움켜 잡아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신을 빚어낸 진흙이 마르고 굳어진 지금은 아무도,

어쩌면 애초에 당신 속에 깃들이고 있었을지도 모를

잠든 음악가를 시인을 또는 천문학자를 일깨워 줄 수는 절대로 없다.

나는 이제 폭풍우를 원망하지 않으련다. 직업의 마력이 또 하나의 세계를 내게 열어준다.

그 세계 속에서 나는 이제 2시간도 안돼서

검은 용과 푸른 전개의 머리털을 왕관처럼 쓴 산봉우리들과 대결을 할 것이다.

그리고 밤이 오면 폭풍우에서 해방되어 별들 속에서 내 길을 찾아 갈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들 직업상의 세례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는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하늘의 여행은 대개의 경우 무사했었다.

우리는 평온하게, 마치 직업적인 잠수부처럼

우리들 영토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이 영토는 오늘날에 속속들이 탐사되어 있다.

이제는 조종사도, 기관사도, 무전사도 모

험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

그들은 갖가지 계기의 바늘의 유희에만 순종하지,

풍경의 변화에는 이제 아랑곳하지 않는다.

밖에는 산들이 어둠 속에 잠겨 있다.

그것들은 이미 산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력일 뿐, 그 접근만을 계산하면 된다.

무전사는 현명하게 램프 불 아래서 숫자를 기입하고

기관사는 지도에 점을 찍고 조종사는 산들의 위치가 잘못되어 있거나,

왼편으로 피해서 돌아가려던 산마루가 작전 준비 때와도 같은

침묵과 비밀 속에서 정면에 나타나거나 할 때만 진로를 수정한다.
지상의 비행장에서 야근을 하는 무전사들로 말하더라도,

그들은 똑같은 시각에 그들의 노트 위에 동료로부터 받은 통보를 슬기롭게 적어 넣는다.

"0시 40분, 방향 2백 30도, 기내 이상 없음"

오늘날 승무원은 이렇게 비행한다.

그들은 움직이고 있다고는 조금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바다 위의 밤처럼 모든 목표들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엔진이 이 밝은 실내를 그 본질을 바꿔 놓는 진동으로 채우고 있다.
시간은 흐른다.

그러나 계기반 속에서, 무전 장치 속에서,

이 바늘들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은 연금술이 행해지고 있다.

1초 1초마다 이 비밀스런 몸짓, 이 가만가만한 말들, 이 주의가 기적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때가 오면 조종사는 어김없이 바람막이 유리판에 이마를 갖다 댈 수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속에서 황금이 생겨난 것이다. 그것은 기항지의 등불 속에서 빛나고 있다.

그러나 또한 우리들은 모두 이러한 비행도 겪어 알고 있다.

기항지에 닿기 2시간 앞두고 어떤 특수한 각도에서 비쳐오는 불빛을 보고 갑자기,

설사 인도에 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렇지 않을 만큼 우리가 멀리 와 있음을 느끼게 되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고 단념하게 된 그런 비행을.

이를테면 메르모즈가 그랬다.

처음 수상기로 남대서양을 횡단했을 때, 그는 해질 무렵에 뽀또놔르 지방에 접근했다.

그는 전방에 회오리 바람의 꼬리들이 마치 벽을 쌓아올리듯이

시시각각으로 포위해 들어오는 것을 보았고,

이어서 밤의 장막이 이 전투 준비 위에 내려, 그것들을 숨겨 버렸다.

그리고 1시간 후에 구름떼 밑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환상적인 왕국으로 들어섰던 것이다.

거기에는 바닷물 기둥들이 겹겹이 솟아올라 있었다.

언뜻 보기에 그것들은 신전의 검은 기둥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꼭대기가 부풀어서 컴컴하고 낮은 폭풍우의 천장을 떠받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천장의 틈새로는 빛의 자락들이 드리워져 있었고

만월이 기둥 사이로 바다의 싸늘한 포석 위를 비추고 있었다.

메르모즈는 이 사람없는 폐허를 가로질러 빛의 물길과 물길 사이로 비껴가며

바다가 울부짖으며 솟아 올라가고 있음에

틀림없는 그 거대한 기둥들을 피해 돌며 비행을 계속했다.

달빛의 여울을 따라 4시간을 비행한 끝에 그는 마침내 그 신전의 출구를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광경이 하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메르모즈는 뽀또놔르를 넘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가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나는 또 생각이 난다.

내가 현실 세계의 변경을 넘어섰던 때의 일들의 하나가.
그날 밤은 밤새껏 사하라사막의 착륙지에서 보내주는 위치 측정의 무선 유도에

오차가 심해서 무전사 네리와 나를 완전히 궁지에 빠지게 했다.

안개가 갈라진 틈 밑으로 물이 번쩍이는 것을 보고 나는 급히 기수를 해안 쪽으로 돌렸다.

도대체 몇 시간 전부터 우리가 외양을 향해 달리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