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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10. - 쌩 떽쥐뻬리

Joyfule 2011. 2. 1. 09:38

인간의 대지10. - 쌩 떽쥐뻬리


[5] 오아시스


나는 사막에 대해 이미 많이 이야기했다.

그러니 그 이야기를 더 하기에 앞서 오아시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지금 그 모습이 내게 떠오르는 오아시스는 사하라 오지에 숨어 있다.

그런데 비행기의 또 하나의 기적은

당신을 신비의 한가운데로 곧바로 데려다 준다는 그것이다.

당신을 비행기 창을 통해 인간의 개미집을 연구하는 생물학자였다.

당신은 들판에 별 모양으로 벌어져서 동백처럼 논밭의 양분으로 갈리는,

길들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그 도시들을 냉철한 마음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도계 위에서 바늘이 한 번 떨자

저 아래에 있는 저 푸른 수풀이 하나의 우주가 되어버린다.

당신은 잠들고 있는 정원 잔디밭의 포로가 된 것이다.

먼 곳을 재는 것은 거리가 아니다.

우리네 어떤 집 정원의 담이 중국의 만리장성보다도

더 많은 비밀을 둘러싸고 있을 수도 있으며,

한 소녀의 마음이 침묵에 의해서,

사하라의 오아시스가 모래의 두꺼운 켜로 숨겨지는 것보다 더 잘 감춰질 수 있다.

나는 세계 어느 곳에선가의 짧은 착륙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것은 아르헨티나의 꽁꼬르디아 근처에서의 일이었지만,

다른 어느 곳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신비란 그렇게 흩어져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 들판에 착륙했었는데,

내가 동화의 나라를 체험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나를 태우고 달리는 그 낡은 포오드 차도,

나를 태워준 그 온화한 부부도 아무 별다른 것이 없었다.

"오늘밤 우리 집에서 묵으시오...."

그런데 어느 길 모퉁이를 돌아가자,

달빛 아래 숲이 하나, 그리고 숲 뒤에 그 집이 나타났다.

얼마나 이상한 집이었던지! 몽톡하고, 육중한 것이 마치 성과 요새 같았다.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이 전설의 성은

수도원처럼 평화롭고 안전하고 듬직한 피난처를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그때 두 처녀가 나타났다.

그녀들은 금단의 왕국 입구에 서 있는 두 재판관처럼 엄숙하게 나를 훑어보는 것이었다.

나이 어린 쪽이 입을 뾰족 내밀더니 초록색 나무막대기로 땅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소개가 끝나자,

두 처녀는 이상하게 도전적인 태도로 말없이 내게 손을 내밀고는 사라졌다.

나는 재미 있으면서도 매력을 느꼈다.

그 모든 것이 단순하고 조용하며, 마치 무슨 비밀의 첫 마디처럼 은밀했다.

"이거 참! 애들이 버릇이 없어서요!"

아버지가 간단히 말했다.


우리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언젠가 파라과이의 수도에서,

포장해 논 돌의 틈바귀로 코끝을 내민 짓궂은 풀잎을 보고 좋아한 적이 있었다.

그 풀은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처녀림의 척후병으로서,

인간들이 여전히 도시를 점령하고 있는지,

이 돌들을 약간 뒤집어 엎을 때가 되지 않았는지 보러 온 것이었다.

나는 굉장히 큰 풍요함을 나타내주는 이런 황폐의 형태를 좋아했다.

그런데 나는 이 집에 들어와서는 감탄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모든 것이 오랜 세월에 다소 금이 간 이끼 덮인 고목처럼,

또한 10세대 전부터 연인들이 앉곤 했던

나무 벤치처럼 아주 매력 있게 황폐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루바닥은 닳아빠졌고, 문짝은 벌레가 파먹었고, 의자들은 건들거렸다.

그런데 여기서는 수리는 않는 대신 청소는 깔끔히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깨끗했고 밀초로 닦여져서 윤이 났다.

그래서 살롱은 주름살 많은 노파의 얼굴처럼 이상하게 강직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벽의 균열과 천장의 틈새가 모두 나를 감탄하게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는 마룻바닥에 감탄했다. 여기는 꺼져 들어갔고,

저기는 배의 타랍처럼 출렁거렸지만,

그래도 잘 닦여지고 광을 내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 이상한 집은 조금도 소홀히 했다거나,

게을리 했다고는 느껴지지 않았고, 이상스런 존경만을 자아내게 했다.

해마다 아마도 이 집의 매력에, 그 모습의 복잡성에,

그 친밀한 분위기의 열정에, 또 응접실에서 식당으로 건너가려면 겪어야 하는

여행의 위험에 새로운 그 무엇인가가 보태어져 왔음에 틀림없다.

"조심하십쇼!"
그것은 구멍이었다.

그 집 사람은 내게 주위를 환기시켰다.

보다시피 워낙 큰 구멍이어서 내가 다리 하나 부러뜨리기는 손쉬울 것이라고

이 구멍, 그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한 일이다.

이 구멍에는 왕자의 품격, 온갖 변명을 아예 경멸하는 위풍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 집 사람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구멍쯤 막을 수야 있죠. 우린 부자니까요. 하지만...."

또 이렇게 말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사실이었지만.

"이 집을 시에서 30년 계약으로 빌려 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리는 시에서 해야 하는데, 워낙 양쪽이 고집이 세어서...."

그 집 사람들은 설명을 경멸했다.

그 대범함이 내 마음에 들었다.

고작 이런 말을 할 뿐이었다.

"이런! 약간 퇴락해서요."

그것도 아주 가벼운 어조여서,

나는 이 친구들이 그것을 조금도 언짢게 여기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생각해 보시오. 미장이, 목수, 가구 수리공,

석고 세공사들의 한 패가 이런 과거 속에 그들의 모욕스런 연장들을 펼쳐 놓고

 1주일도 안돼서 당신이 전혀 알지도 못할 집,

남의 집에 방문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집으로 뜯어 고쳤다면 어떻게 될가를!

그것은 아무런 신비스러움도 없고, 아늑한 구석도 없고, 발 밑에는 함정도 없는,

도시 호텔의 응접실 같은 곳이 되지 않겠는가?

이 요술의 집에서 처녀들이 사라진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집의 처마 밑 방들은 어떨까.

응접실이 이미 다락방만치 풍성함을 보이고 있으니!

응접실의 벙싯 열린 아주 조그마한 장에서도 벌서 누렇게 바랜 편지 뭉치며,

증조할아버지 때의 문서며, 온 집안의 자물쇠 수보다도 더 많은 열쇠들,

그러니 어느 자물쇠에도 맞지 않는 열쇠 꾸러미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

우리의 이성을 혼란케 하고, 지하 창고며, 거기 숨겨진 궤짝이며,

그 속의 루비 금화를 연상하게 하는 그 기막히게 쓸데없는 열쇠들.

"어떠세요, 식탁으로 가실까요?"

우리는 식탁 앞에 앉았다.

나는 어느 방에서나 향내처럼 감도는 오래된 서고의 냄새,

온 세상의 온갖 향료보다도 향기로운 그 냄새를 맡았다.

무엇보다도 램프 불을 옮겨놓는 것이 나는 좋았다.

그것은 묵직한 진짜 램프였으며, 나의 소년 시절의 가장 아득한 무렵처럼

그 집 사람은 그것을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들고 다니는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벽에다 이상한 그림자를 어른거리게 했다.

그 집 사람은 그 램프 속에 빛의 다발과 검은 종려 잎을 떠오르게 했다.

램프가 자리를 잡고 나자 빛의 해변이 펼쳐지고,

마루바닥만이 삐걱거리는 그 둘레의 널따란 밤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두 처녀가 아까 사라졌을 때와 똑같이 신비롭고 조용하게 다시 나타났다.

그녀들은 정숙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녀들은 틀림없이 그들의 개와 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맑은 밤을 향해 창문을 열어 놓고, 저녁바람 속에서 초목의 향기를 맡곤 했을 것이다.

지금 그녀들은 냅킨을 펴면서 곁눈으로 조심스럽게 나를 살펴보고 있다.

자기들의 친한 동물들 속에 나를 끼워 줄까 말까 하고 생각하며,

왜냐하면 그녀들은 갈기도마뱀 한 마리와 망구스 한 마리, 여우 한 마리,

원숭이 한 마리에다 꿀벌까지 기르고 있었으니까.

이런 것들은 한곳에 어울려 살면서 서로 화목하며, 새로운 지상낙원을 이룩하고 있었다.

그 처녀들은 지상의 모든 짐승들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 조그만 손으로 그들을 어루만지고, 먹이를 주고, 물을 먹이고,

또 망구스에서 꿀벌에 이르기까지 귀를 기울이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면서.

그래서 나는 이렇게 활발한 두 처녀가 그들의 온 비판력과 예민성을 발휘하여,

마주앉은 남성에 대해서 재빠르고 은밀하며

또한 결정적인 판단을 내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나의 누이들도 이와 같이

우리 집 식탁에 처음 앉은 손님들에게 점수를 매기곤 했었다.

그래서 어른들의 대화가 중단됐을 때,

침묵을 깨뜨리고 갑자기 이런 소리가 울리는 것이었다.

"11점(프랑스의 학교에서는 대개 20점 만점의 채점법이 행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 재미는 누이들과 나밖에는 아무도 몰랐었다.
이런 장난을 한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약간 불안했다.

그리고 내 재판관들이 몹시 영리하다는 느낌 때문에 더욱 거북했다.

그들은 속임수를 쓰는 짐승과 순진한 짐승들을 분별할 줄도 알고,

그들의 여우의 발소리로 기분이 좋은가 나쁜가도 아는,

속마음의 움직임에 대하여 그렇게도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재판관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날카로운 눈과 그렇게 올곧은 작은 마음들을 좋아했으나,

그녀들이 이 장난을 달리 바꾸어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비굴하게 "11점"에 겁이 나서

그녀들에게 소금 접시를 건네 주고, 포도주를 따라 주기도 했지만,

눈을 쳐들 때마다 그녀들은 이런 것으로는 매수할 수 없을 만큼

얌전하고 의젓하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런 아첨은 소용없는 것이었다. 그녀들은 허영을 몰랐으니까.

그녀들은 허영심이 아니라 아름다운 자부심에 의해서

내 도움 없이도 자신들에 대해 나의 아첨의 말이 나타냈을 이상의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내 자신의 직업의 매력 같은 것을 끌어내어 위신을 세워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단지 새 새끼들이 날개가 돋았는가 살펴보거나,

아래를 지나가는 동무들에게 인사나 하기 위해

플라타너스 꼭대기까지 기어오른다는 것은 지나친 대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두 천사들이 말없이 내가 식사하는 것을 살펴보고 있었고,

그녀들의 훔쳐 보는 시선과 어찌나 자주 맞닥뜨리는지 나는 그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 침묵이 흐르는 동안 무엇인지 마루 위에서 가벼운 휘파람 소리를 내며

식탁 밑에서 바스락거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나는 이상하다는 눈치를 보였다.

그러자 자기의 시험 결과에 만족하지만, 그러나 마지막 시금석을 써보려는 듯,

그 싱싱하고 야성적인 이빨로 빵을 물어뜯으면서

둘째 소녀가 대수롭지 않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내가 만약 그것에 놀라는 야만인이라면 놀래 주려는 천진스런 속셈으로.

"살무사들이에요."

그리고 그다지 바보가 아니라면 이 설명으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그의 언니가 내 첫 번 반응을 판정하려고 번갯불 같은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는 둘이 다 더할 수 없이 상냥하고 순진한 얼굴을 접시 위로 숙이는 것이었다.

"아! 살무사로군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새어 나왔다.

그것은 내 다리 사이로 미끄러지며 내 종아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놈의 살무사가...

다행히도 나는 웃음을 지었다.

아주 예사롭게. 그녀들도 그것을 느꼈던 모양이다.

나는 즐거웠고, 이 집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웃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살무사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기도 해서.

언니가 나를 도와 주었다.

"구멍 속에 집이 있어요, 식탁 밑에."

"밤 열 시쯤이면 돌아와요."

동생이 덧붙였다.

"낮에는 사냥을 나가구요."

이번에는 내가 두 처녀를 곰곰이 바라보았다.

그 평화로운 얼굴 뒤에 깃들인 그 영리함과 조용한 웃음.

나는 그녀들이 행사하는 임금님 같은 위엄에 감탄했다.

지금 나는 꿈처럼 생각해 본다.

이 모든 것이 아주 아득한 옛일이다.

그 두 천사들은 그후 어떻게 됐을까?

아마 결혼을 했겠지. 그렇다면 그녀들은 달라졌을까?

처녀의 위치에서 부인의 위치로 옮겨간다는 것은 아주 중대한 일이다.
새 집에서 그녀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잡초와 뱀들과의 우정은 어떻게 됐을까?

그녀들은 어떤 우주적인 것들과 얽혀 있었는데.
그러나 처녀 속에서 여인이 눈을 뜨는 날이 온다.

그러면 자꾸 19점을 주고 싶어진다.

19점이 마음 속의 무거운 짐이 된다.

그때에 한 바보가 나타난다.

그러면 그렇게도 날카롭던 눈이 처음으로 잘못 보고

그 바보를 아름다운 빛깔로 비춰 준다.

그 바보가 정말 시라도 한 구절 읊으면 그녀는 그를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구멍 뚫린 마루바닥을 이해하고, 망구스를 좋아하는 줄로 안다.

식탁 밑의 제 다리 사이에서

몸을 구불거리는 살무사의 신뢰감을 그가 좋아하는 줄로 믿는다.

그래서 잘 가꾼 정원밖에는 좋아할 줄 모르는 그에게

자연 그대로의 꽃밭 같은 자기의 마음을 줘 버린다.

그러면 그 바보는 공주를 노^36^예로 데려가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