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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8. - 쌩 떽쥐뻬리

Joyfule 2011. 1. 29. 12:56

 

인간의 대지8. - 쌩 떽쥐뻬리

 

[4] 비행기와 지구

(1)
비행기도 틀림없이 하나의 기계지만 그러나 얼마나 놀라운 분석의 기구인가!

이 기구는 우리에게 땅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해준다.

길이란 사실, 여러 세기 동안 우리를 속여 왔다.

우리는 자기의 백성을 찾아 보고 그들이 자기의 통치에

만족하고 있는가를 알고자 했다는 저 옛이야기 속의 여왕과 비슷하다.

그의 신하들은 여왕을 속이려고 행차하는 길에

훌륭한 장식을 세우고 사람을 사서 춤을 추게 했다.

여왕은 그 가느다란 길밖에 자기 나라의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넓은 들판에서 굶어 죽는 백성들이 자기를 저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오랫동안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걸어왔다.

길은 불모의 땅이나, 바위나 사막을 피해서 인간의 욕망에 따라 샘에서 샘으로 간다.

길은 농부들을 곡간에서 밀밭으로 이끌어가고, 외양간 문턱에서

아직도 잠을 자고 있는 가축을 받아다가 새벽빛 속의 개자리 밭에 풀어 놓는다.

길은 이 마을을 저 마을과 결합시킨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저기로 결혼하니까.

그리고 길 중의 하나가 사막을 가로지르는 모험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아시스를 즐기기 위해 수십 번을 우회한다.

이렇게 달콤한 거짓말과도 같은 길의 굴곡 하나하나에 속아서

여행하는 동안 잘 관개된 많은 땅과, 과수원과, 목장들을 보아 온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의 감옥의 모습을 아름답게 생각해 왔다.

이 지구를 우리는 기름지고 부드러운 것으로만 믿어왔다.

그러나 우리의 시력은 예민해졌고, 우리는 무자비할 만큼 발전을 했다.

비행기로 우리는 직선을 배웠다.

이륙하자마자 우리는 물 먹이는 곳이나 외양간으로 기울어지는 길들과,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구부러져가는 길들을 버린다.

이때부터 정든 굴종에서 벗어나고 샘에 대한 욕망에서 해방되어

우리는 먼 목표를 향해 기수를 돌린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직선탄도의 높이에서 본질적인 바탕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위와 모래와 소금의 집적이며,

그곳에는 가끔 생명이 폐허의 구덩이에 돋아난 한줌의 이끼처럼

여기저기에 꽃을 피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골짜기 속을 미화하고,

때로는 기적적으로 기후의 혜택을 받는 꽃밭처럼 피어나 있는

이 문명을 조사하면서 물리학자나 생물학자로 바뀐다.
과학자가 실험기구를 통해 보듯이 비행기 창을 통해 인간을 관찰하게 된다.
우리는 이제야 우리의 역사를 다시 읽고 있는 것이다.

(2)
마젤란 해협을 향하는 조종사는 갈레고스강의 조금 남쪽에서

오래된 용암 분출구 위를 나아가게 된다.

이 잔해는 20미터 두께로 평야를 짓누르고 있다.

이어서 그는 둘째 분출구, 셋째 분출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뒤로는 땅이 솟아오른 곳마다,

2백 미터쯤의 젖꼭지 같은 같은 야산 하나마다

모두 옆구리에 분화구 흔적을 가지고 있다.

거만한 베스비어스 산과는 달리 이것은 들판 위에 늘어선 유탄 포의 포구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고요함을 되찾았다.

지금은 변해버린 풍경속에서, 수천 개의 화산들이 서로 호응하듯 불을 뿜으면서

지하의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을 울려대던 당시의 광경을 생각하면,

지금의 이 정적이 이상할 정도이다.

이제 사람들은 검은 빙하로 장식된, 영원히 잠잠해진 땅위를 비행한다.

그러나 더 멀리 더 오래 된 화산들은 벌써 황금빛 잔디를 입고 있다.

가끔 그 우묵하게 파인 곳에는 나무 한 그루가 낡은 화분 속의 꽃처럼 자라고 있다.
황혼빛 속에서 평야가 짧은 풀로 꾸며져 공원처럼 사치스러워지고,

이제는 그 거대한 둘레에서나 겨우 불거질 뿐이다.

산토끼 한 마리가 뛰어 가고, 새 한 마리가 날아 오른다.

이 별 위에, 좋은 흙반죽이 쌓인 새로운 지표를 마침내 생명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윽고, 뿐따 아레나스 조금 못미친 곳에 마지막 분화구들이 솟아올라 있다.

편편한 잔디밭이 화산들의 기복을 따라 펼쳐져 있다.

이제는 그 화산들도 평온하기만 하다.

갈라진 곳마다 잔디의 부드러운 아마실로 꿰매져 있다.

지면은 편편하고, 경사는 완만하여 사람들은 그 화산으로서의 기원을 잊어버린다.

이 잔디밭이 구릉 옆구리의 어두운 상혼을 지워버리고 있다.

그리고 그 앞쪽의 세계 최남단의 도시 뿐따 아레나스 원시의 용암과

남극의 빙하 사이에서 우연히 약간의 진흙에 의지해서 이 도시는 존재한다.

시커먼 분출구에서 그리도 가까운 곳이어서, 사람들은 한층 더 인간의 기적을 느끼게 된다.

얼마나 이상한 만남인가!

어떻게, 또 왜 인간이라는 길손들이 아주 짧은 시간밖에는 살 수 없는

이 가식의 정원을 하나의 지질학적 시대,

하고 많은 날 중에서 축복 받은 이 하루에 찾아오게 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저녁의 아늑함 속에 착륙했다.

뿐따 아레나스여! 나는 샘물 가에 기대서서 소녀들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그녀들의 두어 걸음 앞에 서서 나는 인간의 신비를 더욱 느낀다.

생명이 생명과 그렇게도 쉽게 결합되고, 바람의 침대 속에서도 꽃들은 꽃들과 섞이며,

한 마리의 백조는 다른 모든 백조와 알게 되는 이 세상에서

홀로 인간들만이 그들의 고독을 쌓고 있다.

얼마나 커다란 공간이 그들 사이의 마음의 통로를 가로막는 것을,

어떻게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는가?

눈을 내리뜨고 혼자 미소지으며 이미 귀여운 교태와 거짓을 품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는 저 소녀에 대해서 누가 무엇을 알 수 있으랴?

그녀는 한 애인의 생각과, 목소리와, 침묵으로써 하나의 왕국을 이룩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 그녀에게는 그 애인 말고는 모두가 야만인이었다.

나에게는 그녀가 어느 떠돌이 별에 있는 것보다도 더 자기의 비밀과, 습관과,

자기 추억의 즐거운 메아리 속에 갇혀 있는 듯이 느껴졌다.

화산에서, 잔디밭에서, 또는 바다의 소금물에서

어제 막 태어난 이 소녀가 벌써 반은 신이 되어 있는 것이다.

뿐따 아레나스여! 나는 어느 샘물 가에 기대 서 있다.

노파들이 물을 길으러 온다.

그녀들의 일생의 비극에 대해서 나는 지금 그 하녀의 몸짓밖에는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한 사내 아이가 소리도 없이 울고 있다

그 아이에 대해서는 달랠 길 없는 한 예쁜 아이로밖에는 내 기억 속에 남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방인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그들의 "제국"에는 끝내 들어갈 수 없다.

얼마나 초라한 무대장치 속에서

인간의 원한과 우정과 기쁨의 거창한 연극이 상연되고 있는가?

아직도 식지 않은 용암 뒤에 위태롭게 서 있으면서,

벌써 뒤에 덮쳐올 모래와 눈사태에 위협받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이 영원에 대한 동경을 어디서 찾아낸 것일까?

그들의 문명은 취약한 도금에 불과하다.

화산이, 새로운 바다가, 모래바람이 그것을 멸망시킬 수 있는 것이고 보면.

뿐따 아레나스 시는 보오쓰(프랑스의 곡창 지방)의 땅처럼

속속들이 기름지게 느껴지는 진짜 땅 위에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여기서도 다른 곳처럼 삶이란 사치이며,

인간의 발 밑에는 깊이 있는 땅은 아무 데도 없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뿐따 아레나스에서 10킬로 미터 되는 곳에

이 사실을 우리에게 증명해 주는 늪이 있다는 것을,

왜소한 나무들과 나지막한 집들에 둘러싸인,

농가 앞마당의 웅덩이처럼 보잘것없는 그 늪은 이상스럽게도 밀물 썰물이 있다.

이 늪은 갈대와 뛰노는 아이들의 이렇듯 평화로운 현실에 감싸여 있으면서도

낮과 밤에 그 완만한 호흡을 계속하면서, 또 하나의 다른 법칙에 순종하고 있는 것이다.

잔잔한 수면 아래, 꼼짝 않는 얼음 밀,

단 한 척의 낡은 조각배 밑에서 달의 에너지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바다의 소용돌이가 이 검은 덩어리 밑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불가사의한 소화작용이, 풀과 꽃의 가벼운 이불 밑에서

이 호수 주위에서 마젤란 해협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1백 미터도 못되는 이 물웅덩이는 사람들이

인간의 대지 위에 든든히 자리잡고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믿고 있는

이 도시 문턱에서, 어찌알랴, 바다의 맥박을 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