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대지11. - 쌩 떽쥐뻬리
[6] 사막에서
(1)
사하라 정기 항공로의 조종사로서 모래밭의 포로가 되어
몇 주일이고, 몇 달이고, 몇 해고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 초소에서 저 초소로 날아다니는 동안에는
이와 같은 따사로움은 우리에게 금지되어 있었다.
이 사막은 그와 같은 오아시스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지 않았다.
정원이니, 처녀들이니, 그 무슨 옛날 이야기란 말인가!
물론 우리가 근무를 끝내고 그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활할 수 있는
그 머나먼 곳에는 천도 넘는 처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곳에서는 그녀들의 망구스와 책들 틈에서
소녀들은 참을성 있게 달콤한 혼을 꾸미고 있을 것이다.
정녕 그녀들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독을 알았다.
사막에서의 3년간이 나에게 그 맛을 잘 가르쳐 준 것이다.
거기에서는 광물 적인 풍경 속에서 낡아가는 젊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에게서 멀리 떨어져 온 세상이 늙어가는 것 같았다.
나무들은 열매를 맺었고, 대지는 밀들을 돋아나게 했고, 여인들은 벌써 아름답다.
그럼에도 계절은 흘러가니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계절은 전진하고 사람은 먼 곳에 붙들려 있다.
그래서 땅 위의 재화가 사구의 가는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간다.
시간의 흐름은 흔히 사람들에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일시적인 평화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목적지에 착륙하여 끊임없이 움직이는
무역풍이 우리를 짓누를 때, 그것을 느끼곤 한다.
그런 때 우리는 밤중에 요란스럽게 차축의 소음을 울리며
달려가는 급행 열차의 여객과도 같다.
그는 차창 밖으로 휙휙 던져지듯 지나가는 한 줌의 빛으로
그곳의 번쩍이는 들판이며, 자기 마을의 모습이며, 아름다운 풍경들을 짐작할 뿐이며,
여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잡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도 또한 가벼운 열기를 띤 채 조용한 착륙장에 서 있으면서도
아직 비행기 소리로 귀가 멍멍하여 비행중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바람의 중역을 뚫고 미지의 미래로 끌려가고 있음을
우리의 심장의 고동으로써 알아차리는 것이다.
사막에다 불귀순민들까지 겹쳐지나.
쥐비의 밤은 15분마다 시계 치는 소리에 의하기나 한 것처럼 토막내어져 있다.
보초들은 차례차례로 규정된 큰 소리로 경보를 전해 준다.
불귀순 지구 속에 고립돼 있는 그곳의 스페인 요새는
이렇게 하여 모습이 안보이는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눈먼 배의 승객과도 같은 우리는 이 외침 소리가 차례차례로 퍼져 나가서,
우리들 위로 해조의 둥근 궤도를 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막을 사랑했었다.
사막이 언뜻 보기에 공허와 침묵뿐인 것같이 보이는 것은,
일시적인 애인에게는 몸을 내맡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고장의 그 하찮은 마을조차도 자기 몸을 감춘다.
우리가 그 마을을 위해 세계의 나머지 부분을 모두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만일 그 마을의 전통이며, 풍습이며, 경쟁 속으로 뛰어들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결국 그 마을이 어째서 어떤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인지 모르고 만다.
게다가 우리 바로 곁에 자기 수도원에 갇혀서,
우리가 알 수 없는 법칙에 따라 살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티벳의 고독 속에,
어떤 비행기도 우리를 데려다 줄 수 없는 외딴 곳에 솟아나 있는 셈이다.
그의 독방을 찾아가 보았자 무슨 소용이랴! 그곳은 텅 비어 있다.
인간의 왕국은 내적인 것이다
이와 같이 사막도 결코 모래나, 뚜아렉족이나,
또는 소총으로 무장한 모르인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갈증을 겪어 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던 이 사막이라는 우물이
넓은 공간 위에 빛나고 있음을 오늘에야 비로소 발견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여인도 이렇게 온 집안을 즐겁게 만들 수 있다.
우물이란 사랑처럼 멀리 미치는 것이다.
사막은 처음에는 인적이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랍인 유격대의 습격이 두려워,
그들이 몸에 두른 큰 망토의 주름들을 모래 위에서 판독해야 할 날이 온다.
이리하여 그들 역시 사막을 변모시킨다.
우리는 놀이의 규칙을 받아들였고, 그 놀이는 우리를 제 모습대로 만들어 버린다.
사하라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우리 내부에서이다.
사막에 접근한다는 것은 오아시스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샘으로써 우리의 종교로 만드는 일이다.
(2)
나는 첫 비행 때부터 사막의 맛을 알았다.
리겔과 기요메와 나는 누아쇼트 초소 부근에 불시착했었다.
이 모리타니아의 작은 초소는 당시 바다 한가운데
작은 외딴섬만큼이나 모든 생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이 먹은 중사 하나가 15명의 세네갈 병사들과 함께 거기 갇혀서 살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하늘에서 온 사자인양 환영했다.
"야아! 이거, 당신네들과 얘기를 하게 되다니...
이 기분을 뭐라고 말할 수 없어요. 아아! 정말!"
아닌게 아니라 그는 울고 있었다.
"여섯 달만에 당신네들이 처음이오 식량 보급이 여섯 달마다 한 번씩이니까.
중위님이 올 때도 있고, 대위님일 때도 있죠. 지난번은 대위였지요."
우리는 아직도 정신이 멍해 있었다.
점심 준비를 하고 있을 다까르에서 2시간 거리인데,
연간축받이가 터지니 사람의 운명이 이렇게 바뀐다.
우리는 울고 있는 늙은 중사를 위해 유령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아, 드십시오, 포도주를 드리는 것이 기쁩니다.
생각 좀 해보십쇼. 대위님이 왔을 땐 그분에게 드릴 포도주가 없었거든요."
나는 이것을 어느 책(남방 우편기. 역주)에 쓴 일이 있지만,
그것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건배조차 못했단 말입니다.
나는 하도 창피해서 전출신청까지 냈었어요."
"건배!" 땀에 범벅이 되어 낙타 등에서 뛰어내린 사람과
잔을 찰깍 부딪치며 하는 "건배!" 이 순간을 위해 여섯 달 동안을 살아온 것이다.
한달 전부터 이미 무기에 광을 내고, 초소를 지하실에서부터 처마 밑까지 닦아 왔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는 이 축복 받은 날이 가까워 옴을 깨닫고,
전망대 위에서 끊임없이 지평선을 살펴보며,
아따르의 이동 부대가 뒤집어쓰고 나타날 그 먼지를 발견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포도주가 없어서 이 축제를 베풀 수가 없다.
건배를 할 수가 없다.
이래서 체면이 깎였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가 다시 오길 몹시 고대하고 있어요. 나는 그를 고대합니다."
"그가 어디 있는데요, 중사?"
그러자 중사는 광막한 모래밭을 가리켰다.
"알 순 없지만, 대위님은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초소의 망대 위에서 별들 이야기를 하며 지샌 그 밤도 실제 있었던 일이다.
(남방 우편기. 역주) 감시할 것이라고는 별밖에 없었다.
별들은 거기에도 비행기에서 보는 것과 다름없이 가득 차 있었다.
다만 고정되어 있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별이 무척 아름다운 밤이면,
비행기에서 거의 조종을 하지 않고 가는 대로 내버려 둔다.
기체는 차츰 왼쪽으로 기울어진다.
오른쪽 날개 아래로 마을이 하나 보여도 아직도 비행기가 수평인 줄로만 안다.
사막 속에 마을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바다의 어선 떼겠지.
그러나 사하라 한복판에 고기잡이 배가 있을 리 없다.
그러면? 그때서야 착오를 깨닫고 웃음이 난다.
천천히 비행기를 바로잡는다.
그러면 마을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는 떨어뜨렸던 성좌를 그림판에 다시 건다.
저것을 마을이라고? 그렇다. 별들의 마을이다.
그러나 초소 위에서 보면 얼어붙은 듯한 사막과
움직임이 없는 모래의 물결에 지나지 않는다.
잘 걸려 있는 성좌들. 그래서 중사도 우리에게 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 보십쇼! 나는 방향에는 환해요. 저 별이 있는 쪽이 바로 튀니스죠!"
"튀니스에서 왔소?"
"아아뇨. 내 사촌누이가 있죠"
그는 오랫동안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중사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감추지 못한다.
"언젠가는 나도 튀니스로 가겠어요."
그럴 테지. 그러나 그것은 저 별 쪽으로 가는 게 아니 딴 길로 해서일 것이다.
원정하는 어떤 날, 우물이 말라서 그를 정신 착란의 시상에나 붙잡히기 전에는.
그렇게 되면 저 별도, 사촌누이도, 튀니스도 모두 뒤범벅이 될 것이다.
그러면 남들에게는 고통스럽게 여겨질 그 영감에 의한 행진이 시작될 것이다.
"한번은 대위님에게 튀니스로 사촌누이 일로 휴가를 신청한 일이 있어요.
그랬더니 그 대답이...."
"그래, 그 대답이?"
"그 대답은 이랬어요.
"세상에는 사촌누이로 꽉 차 있다"
그래서 더 가깝다면서 다까르로 보내 주더군요"
"그래, 사촌누이는 예쁘던가?"
"튀니스의 누이 말이오? 물론이죠. 금발이었어요."
"아니, 다까르의 누이 말이오."
중사여, 약간은 억울하고 쓸쓸한 듯한 대답을 듣고 우리는 당신을 껴안기라도 하고 싶었다.
"아, 그건 검둥이였어요...."
중사여, 사하라는 당신에게 있어 무엇일까?
그것은 당신 쪽으로 끊임없이 걸어오는 하느님이었다.
그것은 또한 5천 킬로 미터의 사막 저편에 있는 금발의 사촌누이의 다사로움이기도 했다.
사막은 우리에게 있어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내부에 생겨나는 그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배우는 그것이다.
우리 또한 그날 밤에 한 사촌누이와 한 대위를 그리워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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