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대지9. - 쌩 떽쥐뻬리
[4] 비행기와 지구
(3)
우리는 하나의 떠돌이 별 위에 살고 있다.
이 별은 이따금 비행기의 덕분으로 우리에게 자기의 근원을 보여준다.
달과 관계 있는 웅덩이가 숨겨진 친척 관계를 드러내 보이듯이...
그러나 나는 그것에 대한 다른 징후도 알았다.
쥐비 끝 부분과 시스레로스 사이를 사하라 사막의 해안선을 따라 비행하고 있노라면
원추대 모4양의 사고가 드문드문 산재해 있는데
그 넓이는 백 보 정도에서부터 30킬로 미터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이다.
그 높이는 놀라울 만큼 한결같이 3백 미터이다.
그런데 높이가 같을 뿐만 아니라 그 고원들은 어느 것이나
같은 색깔, 같은 흙의 결, 같은 절벽의 돌의 새김들을 보이고 있다.
모래 위에 홀로 솟아나와 있는 신전의 원주만으로도
붕괴되기 전의 식탁의 화려함을 보여주듯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이 모래 기둥들도
예전에는 하나로 되어 있었던 광대한 사구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카사블랑카와 다까르 간의 정기 항로를 개설하던 당시에는 기재가 취약해서 고장이니,
수색이니, 구출 작업이니 해서 우리는 종종 불귀순 지구에 착륙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데 모래란 놈은 속임꾼이다. 단단하리라고 믿었다가는 파묻혀 버린다.
아스팔트처럼 단단해 보이고, 발뒤꿈치 밑에서 굳은 소리를 내는
옛 염전 광만 하더라도, 가끔 바퀴 무게로 내려앉아 버린다.
그러면 흰 소금 껍질이 갈라지고 그 밑은 시커먼 늪지의 악취를 풍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이 사구의 편편한 표면을 택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결코 함정을 숨겨두지는 않았으니까.
이런 보장은 알이 굵고 단단한 모래의 덕택이다.
그것은 자세히 보면 작은 조개껍데기들의 어마어마한 퇴적이었다.
그것들은 사구의 표면에서는 아직 제 모습을 보존하고 있지만
능선을 따라 내려감에 따라 가루가 되어 엉겨 있음을 볼 수 있다.
산기슭의 가장 오래된 퇴적층에서는 그것들은 이미 순수한 석회암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동료인 레느와 세르가 불귀순민들에게 사로잡혀 포로가 되어 있을 때,
모르인의 심부름꾼 한 사람을 내려놓기 위해 이 안전지대 하나에 착륙한 일이 있다.
나는 그를 그곳에 남겨 두고 떠나기에 앞서,
그가 내려갈 수 있는 곳이 있나 하고 그와 함께 찾아보았다.
그런데 우리의 이 높이 쌓은 대는 어느 쪽에서나
나사 모양과 같은 주름을 지으며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곳에서 빠져나오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나는 다른 착륙지를 찾아 이륙하기에 앞서 여기서 꽤 오랫동안 서성거렸다.
어쩌면 나는, 일찍이 짐승이든 사람이든 그 누구도 더럽힌 적이 없는
이 땅 위에 내 발자국을 남긴다는 어린애 같은 기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용감한 모르인의 불귀순민도 이 성과 요새를 공격할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유럽사람도 일찍이 이 지역을 탐험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무한의 순결한 모래를 밟고 섰다.
나는 이 조개껍데기 가루를 귀중한 황금인양
이 손에서 저 손으로 흘려보내며 반짝이게 한 최초의 인간이었다.
이 정적을 깨뜨린 최초의 인간이었다.
태고 적부터 단 한 포기의 풀도 나게 한 적이 없는 이 북극의 빙산과도 같은 곳 위에서,
나는 바람에 불려 온 한 알의 씨앗처럼 생명의 최초의 증거였다.
별이 하나, 벌써 반짝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별을 골똘히 쳐다봤다.
나는 생각했다.
이 순백의 지면은 수천만 년째 오직 별들에게만 바쳐져 왔었다는 것을.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순결한 식탁보 그리고 이 식탁보 위,
내 앞에서 15내지 20미터쯤 되는 곳에 까만 조약돌 하나를 발견했을 때는
위대한 발견이라도 했을 때처럼 가슴에 충격을 받았다.
나는 3백 미터 두께로 쌓인 조개껍데기 위에 서 있었다.
이 거대한 지층 전채가 하나의 절대적인 증거인양
돌 하나라도 거기 있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구의 완만한 소화작용에서 생겨난 규석들이
어쩌면 저 땅속 깊이 잠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기적이 그들 중의 하나를 이다지도 새로운 지표 위까지 올려 놓게 했을까?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이 나의 발견 물을 주워 들었다.
단단하고 까맣고 주먹만하고 금속처럼 무겁고, 눈물 모양을 한 이 조약돌을.
사과나무 밑에 펼쳐진 식탁보 위에는 사과밖에 떨어지지 않는다.
별아래 펼쳐진 식탁보 위에는 별가루밖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찍이 어떠한 운석도, 내가 주워든 이것만큼 명백하게 자기 근원을 보여준 일이 없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쳐들며 극히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했다.
이 하늘의 사과나무에서는 다른 사과들도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나는 그것들을 떨어진 그 자리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그것들을 떨어진 그 자리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왜냐하면 수십만년 이래 아무도 그것들을 흩뜨려 놓지 않았을 거니까.
또 그것들은 다른 물질들과 조금도 뒤섞이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당장 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탐사에 나섰다.
내 가설은 실증되었다.
나는 대략 1헥타르에 돌 하나 꼴로 내 발견 물을 주워 모았다.
어느 것이나 응결된 용암의 그 형상, 언제나 까만 다이아몬드의 경도였다.
나는 이리하여 이 별의 우량계 위에 서서 수천만 년의 시간의 축도 속에서
이 느린 불의 소나기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4)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지구의 둥그런 등 위에,
이 자기를 띤 식탁보와 별들 사이에 한 인간의 의식이 서 있어,
이 별의 비가 거울에 비치듯이 그의 인식에 비쳐 나왔다는 그것이다.
광물의 층 위에 한 꿈이 있다는 것은 기적이다. 그리고 보니 꿈 하나가 생각난다...
또 한 번은, 모래가 두껍게 쌓인 지방에 불시착하여 날이 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금빛 언덕들은 달빛에 그 밝은 쪽 경사면을 향하고 있었고,
어두운쪽 경사면은 빛의 분계선까지 솟아 올라 있었다.
그늘과 달빛의 이 적막한 선대 위에는
작업이 끝난 뒤의 평화와 함정의 침묵이 군림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
잠이 깨었을 때 나는 밤하늘의 연못밖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그 별들의 연못을 향하여 어느 모래 산 위에 누워 있었으니까.
그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그 심연과 나 사이에 붙잡을 나무 뿌리 하나 없고,
지붕 하나 나뭇가지 하나 없기 때문에 나는 벌써
몸을 의지할 곳을 잃고 잠수부처럼 추락에 내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떨어지지는 않았다.
머리 끝에서부터 발 뒤꿈치까지 나는 땅에 붙들려 매어져 있음을 알았다.
나는 내 몸무게를 대지에 내맡기고 있는 데에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
인력이 나에게는 사랑처럼 지고의 힘으로 느껴졌다.
나는 대지가 내 허리를 받쳐 주고, 나를 지탱해 주고,
나를 들어올리고, 나를 밤의 공간 속으로 옮겨 주는 것을 느꼈다.
나는 커브를 돌 때 마차에 착 달라붙게 하는 것과 같은
중력으로 내가 이 지구에 달라붙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어깨로 떠받쳐 주는 듯한 든든함과 안전감을 맛보았으며
내 등밑에 내가 탄 이 배의 휘어진 갑판을 느꼈다.
나는 내 몸이 실려가고 있다는 의식이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에
설령 힘을 내려고 안간힘 하는 물질들의 한숨이나,
항구로 돌아오는 낡은 범선들의 신음소리,
역풍에 시달리는 작은 배들의 날카롭고 긴 외침소리 등이
땅 밑에서 들려 왔다하더라도 놀라지 않고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꺼운 대지 속에서는 침묵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중량감은 내 어깨에 조화 있게 떠받쳐져 영원히 변함없을 것같이 느껴졌다.
나는 마치 죽은 조역형수의 시체가 추를 달고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듯이 분명히 이 나라에 살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사막 속에 홀로 떨어져 반도들의 습격에 위협받으면서
모래와 별들 사이에서 알몸으로, 내 생활의 중심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침묵에 의해 격리되어 있는 내 처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 중심에 찾아가기 위해서는 나를 찾아내지 못하거나,
모르인들이 내일이라도 나를 학살하지 않는다면,
여러 날과 주일과 달들을 허비해야 하리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나는 모래와 별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다만 숨을 쉰다는 흐뭇함 이외에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한 죽어야 할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내 안에 꿈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했다.
꿈들은 샘물처럼 소리도 없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처음에 나는 나를 가득 채워주는 이 흐뭇함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했다.
거리에는 목소리도 모습도 없었지만 무언가 존재한다는 느낌,
아주 가까이 있어서 벌써 반쯤은 집착되는 우정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리자 나는 눈을 감고 내 기억의 환희에 나를 내맡겼다.
그것은 어디인지 모르는, 검은 전나무와 보리수와 우거진 넓은 정원이었고,
그곳에는 내가 사랑하는 낡은 집이 있었다.
그 집이 여기서 멀든 가깝든,
또 그 집이 내 몸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든 없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다만 꿈의 역할을 해주고,
그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나의 하룻밤을 가득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이미 모래 벌판에 추락한 불쌍한 몸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있는 곳을 알아차렸다.
나는 이 집 냄새의 추억이 가득 차 있는 그 현관의 서늘함이 가득 차 있는,
그 활기를 띠게 하던 목소리들이 가득 찬 이 집의 어린아이였다.
연못 속의 개구리 울음소리까지도 여기까지 나를 찾아왔다.
나 자신을 재확인하기 위해,
이 사막의 맛이 어떤 부재들로 만들어졌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개구리조차 울지 않는 이 천의 침묵으로 이루어진 침묵에서 하나의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내게는 이런 천 가지 부호가 필요한 것이다.
아니다. 나는 이미 모래와 별들 사이에 머물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이미 이 배경으로부터는 차디찬 메시지밖에는 받지 못했다.
전에 내가 이런 배경으로부터는 얻었다고 믿었던 영원에 대한 동경도,
나는 이제 그 근원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나는 그 집의 화려하고 큰 장롱들을 눈앞에 떠올렸다.
그 장롱 문이 빠끔히 열려 있어서 눈 같이 흰 시트가 채곡채곡 개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문이 빠끔히 열리며 눈같이 찬 피륙들이 보였다.
늙은 가정부가 이 장에서 저 장으로 종종걸음을 치며 노상 살펴보고 펼쳐 보고,
다시 개켜 놓고, 세탁한 속옷들을 다시 세어보곤 하면서
이 집의 영구성를 위협하는 어떤 불길함의 징조가 보일 때마다,
"아이구 하느님, 이걸 어쩌나!" 하고 소리치면서 달려가
램프 불 밑에서 눈이 벌개 가지고 그들 제단 보의 실 올을 고치고,
돛대가 3개인 범선의 돛만큼이나 근 백포를, 자기보다도 큰 사람,
하느님이나 그의 배에라도 쓰려는지 열심히 꿰매는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당신을 위해 한 페이지만 더 써야겠다.
내가 첫 번 비행에서 돌아왔을 때, 할멈이여, 나는 당신을 다시 만났다.
비늘을 한손에 들고, 무릎까지 흰 천 더미 속에 파묻혀,
해마다 주름살이 더하고 백발이 늘긴 했지만,
여전히 그 손은 우리들의 숙면을 위해서 구김살없는 시트를,
수정 그릇과 빛의 축제 같은 우리들의 만찬을 위해서
솔기 없는 식탁보를 마련하고 있는 당신을.
나는 바느질 방으로 당신을 찾아가 당신 앞에 앉아서
당신을 감격시켜 주기 위해, 세상을 향해 당신의 눈을 열어주기 위해,
당신을 놀려 주기 위해, 죽을 뻔했던 내 모험들을 들려주곤 했었다.
당신은 말했었지. 내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어릴 적부터 내가 곧잘 속옷에 구멍을 냈었다고...
"아이구! 이걸 어쩌나! 걸핏하면 무릎을 깼고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붕대를 감아달라고 했었다우. 마치 오늘밤처럼 말야."
"아니야, 아니라니까, 할멈.
지금 내가 돌아온 것은 정원 안쪽에서가 아니라 세계의 끝에서야.
그래서 나는 고독의 쓰디쓴 냄새를,
뜨거운 모래의 회오리 바람을, 열대지방의 번쩍이는 달을 데리고 온 거야!"
그러자 당신은 말하는 것이었다.
"아암, 사내애들은 뛰고 뼈를 부러뜨리고 하면서
자기가 아주 힘이 세다고 생각하는 거라우."
"아니야, 아니라니까, 할멈. 나는 이 정원보다도 훨씬 먼 곳을 보고 왔단 말야!
그 따윈 사막이나, 화강암이나, 처녀림이나,
큰 늪 가운데 갖다 놓으면 어느 구석에 있는지도 몰라!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만나기만 하면
대뜸 총부리를 겨눠대는 땅이 있다는 걸 할멈은 알아?
얼어붙은 밤에, 지붕도 없이, 침대도 없이,
이불도 없이 잠을 자는 사막이 있다는 것을 할멈, 알기나 해...."
그러자 당신은 소리쳤었지.
"어휴, 야만인!"
성당의 하녀의 신앙을 움직일 수 없듯이 나는 이 할멈의 신념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눈멀게 하고, 귀머거리로 만든 그의 미천한 운명을 가엾게 여겼다.
그러나 이 밤, 사하라의 모래와 별들 사이에서
벌거숭이로 내팽개쳐지고 나서야 나는 그녀가 옳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 속에서 일어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처럼 많은 별들이 자기를 띠고 있건만, 이 중력이 나를 땅에 잡아 매어 놓고 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중력이 나를 나 자신에게로 데려온다.
나는 그 많은 것들 쪽으로 나를 끌어당기는 내 중력을 느낀다.
나의 꿈은 이 모래언덕보다도,
저 달보다도, 여기 있는 모든 존재들보다도 더 현실적이다.
아아! 집의 소중함은 그것이 우리들을 감싸 주고,
따뜻하게 해주고, 또 그 벽을 갖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천천히 우리들 마음 속에 그리도 많은 포근함을 축적시켜 주기 때문이다.
마음속 깊이 샘물처럼 꿈들이 태어나는 이 안보이는 덩어리를 형성해 주기 때문이다.
사하라, 나의 사하라여!
너는 이제 털실을 잣는 한 할멈 덕분에 아주 황홀해져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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