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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16. - 쌩 떽쥐뻬리

Joyfule 2011. 2. 8. 23:18

인간의 대지16. - 쌩 떽쥐뻬리

 

[6] 사막에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그의 고통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고통을 느낀다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인간의 죽음과 함께 미지의 세계가 하나 죽어 가는 것인 만큼,

그의 안에서 꺼져가는 영상들은 어떤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세네갈의 어떤 농원이,

남부 모로코의 어떤 백악의 도시들이 차츰차츰 망각 속으로 잠겨 드는 것일까?

이 검은 덩어리 속에서, 차를 준비한다던가,

가축들을 우물가로 몰고 가는 따위의 하찮은 걱정만이 꺼져가는 것일까...

즉 노예의 한 영혼이 잠들어 가는 것일까,

아니면 추억의 소생으로 다시 살아난 이 인간이

그 본래의 위대함 가운데에서 죽어가는 것일까.

그 단단한 두 개골이 나에게는 오래 된 보물상자처럼 보였다.

어떠한 빛깔 고운 비단들이, 어떠한 잔치의 추억들이,

이 사막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고 아무 소용이 없는 유물들이

난파를 모면하여 거기에 들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상자는 단단히 채워진 채 무겁게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며칠의 그 커다란 잠을 자는 동안에,

세계의 어떤 부분이 이 사람 속에서 해체되어 가는 것인지,

차츰차츰 밤과 뿌리로 되돌아가는 그 의식과 육체 속에서

분해되어 가는 것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나는 가축 몰이꾼이었읍죠. 이름은 모하메드였구요!"

검둥이 노예 바르끄는, 내가 알기로는 그의 운명에 저항했던 최초의 사람이었다.

모르인들이 그의 자유를 하루아침에 빼앗고,

그를 이 땅 위에서 갓난아기보다 더한 발가숭이로 만든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의 수확을 삽시간에 짓밟아 버리는 신의 폭풍도 있으니까.

그러나 모르인들은 그의 재물보다도 그의 인격을 깊이 상처 입혔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도 많은 다른 포로들이 1년 내내 먹을 것을 벌기 위해 일을 했던

불쌍한 가축 몰이꾼을 자기들 속에서 죽어가게 내버려 두었지만

바르끄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바르끄는, 남들이 기다리다 지쳐 보잘 것 없는 행복에 자리잡듯이

그렇게 노예살이에 정착하지 않았다.

그는 주인의 선심을 노예의 기쁨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은 없는 모하메드를 위해,

그 모하메드가 살았던 집을 자기 가슴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텅 비어 쓸쓸하긴 했지만, 다른 아무도 살게 할 수는 없었다.

바르끄는 오솔길의 풀과 침묵의 권태 속에서 충실하게 죽어간

그 백발의 정원지기와도 같았다.

"나는 모하메드 벤 라우셍이오."라고 그는 말하지 않고

 "나는 모하메드였었죠"라고 말했다.

그 소생만으로도 자기의 노예의 모습을 쫓아내어 줄,

그 잊혀진 인물이 되살아날 날을 꿈꾸면서. 이따금 밤의 고요 속에서

그의 모든 추억들이 어렸을 적의 노래처럼 완전하게 되살아나기도 했다.

우리들의 모르인 통역이 이런 말을 했다.
"밤중에, 한밤중에 그가 마라께시 얘기를 하고 울었어요"

고독 속에 있으면 누구나 이런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자기가 예고 없이 깨어나 자기 팔다리 속에서 기지개를 켜면서,

여자라고는 한 번도 가까이한 적이 없는 이 사막에서 자기 곁에 여인을 찾는 것이다.

또 샘물이라고는 일찍이 흘러본 적이 없는 그곳에서 샘물의 노래를 듣는 것이다.

그러면 바르끄는 눈을 감고 하얀 집에 살고 있다고 믿는 것이었다.

여기, 사람들이 거친 천으로 엮은 집에 살면서 바람만을 쫓고 있는,

매일 밤 같은 별 아래 앉아 있으면서도...

신비스럽게도 생생하게 되살아난 옛 애정을 품고,

마치 그 끝이 가까이에 있기라도 한 듯이 바르끄는 나에게 왔었다.

그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그의 애정도 모두 준비돼 있고,

그것을 나눠주기 위해서는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내게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의 눈짓 하나만 있으면 충분한 것이다.

그래서 바르끄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그 비결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내가 그것을 생각해본 일이 없기나 한 것처럼.

"내일이지요, 우편물이 떠나는 게...아가디르로 가는 비행기에 나를 감추고...."
"불쌍한 바르끄!"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불귀순 지구이다. 어떻게 그의 탈주를 도와줄 수 있겠는가?

내일이면 모르인들은 이 도둑질과 모욕을 무서운 학살로써 보복할 것이다.

나는 공항 기관사인 로베르그, 마르샬, 아브그랄의 도움을 받아 바르끄를 사려고도 해보았지만,

모르인들은 노예를 사려는 유럽사람을 만난 적이 없으므로 배짱만 퉁긴다.

"2만 프랑 내쇼,"
"우리를 놀리는 건가?"
"그놈의 억센 팔을 보슈."

이렇게 해서 여러 달이 지나갔다.
마침내 모르인들의 달라는 값이 내려갔다.

그리고 내가 편지로 호소한 프랑스의 친구들의 도움도 얻어서

늙은 바르끄를 살 수 있을 만큼 되었다.

그것은 굉장한 흥정이었다. 그것은 여드레나 걸렸다.

열 다섯 명의 모르인과 나는 모래 위에 빙 둘러앉아 흥정을 진행했다.

소유주의 친구이자 내 친구이기도 한, 산적 진 울드 라따리가 은근히 나를 거들었다.

"팔아 버려라. 어차피 그놈은 없어진다.

그놈은 병들었어. 병이 처음엔 보이지 않지만, 속에 들어 있다.

언제고 갑자기 불거져 나온다. 얼른 저 프랑스 사람한테 팔아 버려라."

그는 내가 권한대로 자꾸 주인에게 말했다.
또 하나의 산적인 랏지에게는 흥정을 도와주면 커미션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랏지는 주인을 구슬렸다.

"그 돈으로 낙타하고 총하고 탄환을 사라.

그러면 너는 습격대를 만들어 프랑스 사람들과 싸움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아따르에서 새 노예를 셋이고 넷이고 끌고 올 수 있다.

이런 늙다리는 팔아 치워라."

이리하여 바르끄는 내게 팔렸다.

나는 우리 바라크 속에 그를 쳐 넣고 엿새 동안 자물쇠를 잠가 두었다.

비행기가 지나가기 전에 그가 문밖에서 어정거리다가는

모르인들이 그를 다시 잡아 먼데로 팔아버릴까 봐서였다.

어쨌든 나는 그를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그것은 또한 아름다운 의식이었다.

회교의 중이 오고, 그전 주인과, 쥐비의 추장 이브라힘도 왔다.

보루에서 20미터 떨어진 곳에서라면,

나를 골려 준다는 재미만으로도 서슴없이 바르끄의 목을 잘랐을

이 세 산적들이 그를 열렬히 껴안았고, 서명했다.

"이제 너는 우리 아들이다."

그래서 바르끄는 그의 여러 아버지들에게 키스를 했다.
그는 출발할 때가 오기까지 우리 바라크에서 유유한 포로 생활을 보냈다.

그는 하루에도 스무 번씩이나 그 쉬운 여행에 대해 설명을 시키는 것이었다.

아가디르에서 비행기를 내리면 그 비행장에서 마라께시로 가는 버스 표를 받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탐험가 놀이를 하고 놀 듯이 바르끄는 이렇게 자유인 놀이를 하는 것이다.

삶으로 향하는 그 첫걸음, 그 버스며 그 군중, 그가 다시 보게 될 도시들....

로베르그가 마르샬과 아브그랄을 대리해서 나를 찾아왔다.

바르끄가 차에서 내린 후 배를 곯아서는 안되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바르끄를 위해서 내게 천 프랑을 주었다.

이리하여 바르끄는 일거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20프랑을 주고는 감사를 요구하는

"자선을 하시는"사회 사업체의 노부인들을 생각했다.

비행기 기관사인 로베르그와 마르샬, 아브그랄의 세 사람은

천 프랑을 주면서도 자선을 하지 않고, 더구나 감사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또한 행복을 꿈꾸는 그 노부인들처럼 동정심으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순히 한 인간에게 인간으로서의 위엄을 되돌려주는데 이바지했을 뿐이다.

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바르끄가 귀향의 흥분이 일단 지나면,

그를 제일 먼저 맞이할 충실한 친구는 곤궁이라는 것과,

석 달도 못가서 그가 그 근처 철로 위에서

침목을 뽑느라고 애쓰고 있으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막에 있을 때보다 덜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기 가족 사이에서 그 자신이 될 권리를 갖고 있다.

"자아, 바르끄 영감, 가시오. 그리고 사람이 되시오."

출발 준비가 된 비행기는 떨고 있었다.

바르끄는 마지막으로 쥐비 곳의 끝없는 황폐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비행기 앞에는 2백 명의 모르인들이 삶의 문턱에 선 한 노예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잘 보기 위해 떼지어 모여 있었다.

비행기가 조금 가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그들은 그를 도로 빼앗아 갈 것이다.

우리는 세상으로 나가려고 약간 얼떨떨해 있는 이 쉰 살 먹은 갓난애에게 작별의 손짓을 했다.

"잘 가게, 바르끄!"
"아니오."
"아니라니?"
"아닙죠. 나는 모하메드 벤 라우셍인 걸요."

아가디르에서 바르끄를 돌봐주라고 우리가 부탁해 둔

아랍인 아브달라로부터 그에 대한 마지막 소식을 들었다.
버스는 저녁 때에야 떠나게 되어 있었다.

바르끄는 온종일 마음대로 보낼 수 있었다.

그는 맨 먼저 그 조그만 도시를 아무 말도 없이 오랫동안 쏘다녔다.

아브달라가 보기에는 그가 불안해하고 감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 그러나?"
"아무 것도 아냐."

바르끄는 갑작스런 휴가의 한복판에서 아직도 자기의 부활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렴풋한 행복을 느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어제의 바르끄와 오늘의 바르끄 사이에 아무 다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저 태양을 나누어 받을 권리도,

여기 이 아랍인 카페의 정자 밑에 앉을 권리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