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을 위한 ━━/세계문학

인간의 대지17. - 쌩 떽쥐뻬리

Joyfule 2011. 2. 10. 02:25

인간의 대지17. - 쌩 떽쥐뻬리

 

[6] 사막에서

 


그는 거기 앉았다. 아브달라와 자기를 위해 차를 주문했다.

그것이 양반으로서의 첫 행동이었다.

그 권력으로 하여 그의 얼굴모습조차도 달라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급사는 그 행동이 당연하다는 듯이 놀라지도 않고 그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급사는 느끼지 못했으리라.

그 차를 따름으로써 한 자유인을 예찬하고 있다는 것을.

"어디, 다른 데로 가보세."

바르끄가 말했다.
그들은 아가디르를 굽어보는 가스 바로 올라갔다.
베르베르족의 춤추는 소녀들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녀들이 길들여진 친절을 잔뜩 보여주었기 때문에

바르끄는 다시 살아난 것만 같이 여겨졌다.

그녀들은 자기네들도 모르게 그를 인생 속으로 맞아들여 준 것이다.

여자들은 그의 손을 잡고 친절하게,

그러나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차를 권했다.

바르끄는 자기의 부활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자들은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그가 만족해하니까 소녀들도 그를 위해서 만족해했다.

그는 그녀들을 놀라게 해주려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모하메드 벤 라우셍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 말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다 이름이 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아주 먼 데서 돌아오기도 하니까...

그는 아브달라를 다시 시내 쪽으로 끌고 갔다

그는 유태인의 노점 앞에서 서성거렸고, 바다를 바라보았고, 그리고 생각했다.

어느 방향으로든지 자기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과 자기는 자유롭다는 것을...

그런데 이 자유가 그에게는 씁쓸한 것 같이 생각되었다.

어떤 점에 있어서 그가 이 세계와 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 자유가 더욱 뚜렷하게 그에게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그때 한 아이가 지나가기에 바르끄는 그의 볼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아이는 방긋 웃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아첨하는 주인의 아들이 아니었다.

바르끄가 쓰다듬어준 아이는 연약한 아이였다.

그 아이가 방긋 웃고 있었다.

이래서 이 아이가 바르끄를 깨워 주었고,

자기에게 미소지었던 이 연약한 아이 때문에

바르끄는 자기가 이 지상에서 좀더 중요해진 것 같이 여겨진 것이었다.

그는 그제야 어떤 것들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래서 지금 발걸음을 크게 떼어 놓는 것이다.

"뭘 찾지?"
아브달라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냐."
바르끄가 대답했다.

그런데 어느 길모퉁이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한 떼와 마주치자 그는 걸음을 멈췄다.

여기였던 것이다. 그는 말없이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유태인 노점 쪽으로 가더니 선물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아브달라는 화를 냈다.

"바보같으니, 돈을 아껴야지!"

그러나 바르끄는 이미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점잖게 그는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작은 손들이 장난감이니 팔찌니 금실로 수놓은 슬리퍼 위로 뻗쳐졌다.

아이들은 저마다 보물을 손에 들고 버릇도 없이 달아나 버렸다.

아가디르의 다른 아이들이 이 소문을 듣고 그에게로 달려왔다.

바르끄는 그들에게 금실로 수놓은 슬리퍼를 신겨 주었다.

그러자 아가디르 근방의 다른 아이들이 이 소식을 듣고 일어서서 환성을 지르며

이 검은 신을 향해 달려 올라와서,

그의 낡은 노예옷에 매달리며 저의들 몫을 요구했다.

바르끄는 파산하고 말았다.

아브달라는 그가 "기뻐 미친"것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르끄로서는

넘치는 기쁨을 나누어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유였기 때문에 사랑 받을 권리도,

북쪽이든 남쪽이든 마음대로 걸어갈 권리도, 자기가 일해서 빵을 벌 권리도,

이런 모든 본질적인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돈이 무슨 소용이랴...

그러자 그는 사람들이 심한 허기를 느끼듯이 인간들 속의 하나의 인간,

인간들과 연결된 하나의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 것이다.

아가디르의 춤추는 소녀들은 늙은 바르끄에게 다정하게 대해 주었지만

그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마음 가볍게 헤어질 수가 있었다.

그녀들에게는 그가 필요치 않았으니까.

그 아랍인의 노점 상인도, 길을 오가는 통행인들도 모두

그의 속에 있는 자유인을 존경했고, 그와 함께 태양을 나누어 가졌지만,

어느 누구도 그 이상 자기에게 그가 필요하다고 알려 준 사람은 없었다.

그는 자유로웠다.

하지만 땅 위에 자기의 무게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한없이 자유로웠던 것이다.

그에게는 서로의 걸음걸이를 방해하는 인간 상호 관계의 무게가 없었고,

그가 어떤 행동을 하려 할 때마다 사람들이 쓰다듬기도 하고 짓찧기도 하는 모든 것,

저 눈물이며, 이별이며, 책망이며, 기쁨이 결여되어 있었으며,

그를 다른 사람들과 결합시켜 주고, 무게를 갖게 해주는

그 숱한 관계가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바르끄 위에는 벌써 아이들의 천 가지 희망이 묵직하게 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바르끄의 왕국은 아가디르 위에 저무는 태양의 영광 속에서,

또 그렇게도 오랫동안 기다렸던 유일한 다정함이었고,

유일한 안식처였던 저녁의 시원함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바르끄는 옛날에 양떼들에게 둘러싸였던 것처럼

어린이들의 물결 속에 파묻혀 세상에 첫발자국을 찍으며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내일이면 가난한 자기 가족들에게 되돌아 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의 노쇠한 팔로는 먹여 살릴 수 없을 만큼의

생명들의 책임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여기에서 자기의 참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삶을 살기에는 너무나 몸이 가벼운 천사가 속임수로

허리띠에 납덩어리를 꿰매 넣기라도 한 것처럼,

바르끄는 금실로 수놓은 슬리퍼를 갖고 싶어 하는 그 숱한 어린이들에 의해

대지 쪽으로 이끌려 가면서 고달픈 걸음을 내디디는 것이다.

 

[6] 사막에서


(7)
사막이란 이런 것이다.

본래는 놀이의 규칙에 지나지 않는 한 권의 코란이 사막을 제국으로 바꿔 놓는다.

텅 비었을 사하라 한복판에서 인간의 결정을 뒤흔드는 은밀한 연극이 연출된다.

사막에서의 참된 삶은 목초를 찾아 옮겨가는 부족들의 이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지금도 행해지는 놀이에 의해서이다.

귀순사막과 불귀순 사막과의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내용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현재의 전혀 다르게 변모해 버린 귀순 사막을 앞에 두고

나는 소년시절에 여러 가지 놀이를 하던 일들이며,

우리가 온갖 신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던 컴컴하고 금빛 도는 그 공원이며,

우리가 완전히 알아낼 수도 없었고,

전부를 뒤질 수도 없었던 1킬로 미터 평방으로 된 그 무한한 왕국 등을 회상한다.

우리는 한 발자국마다 어떤 맛을 갖고 있고,

사물들이 다른 데서는 있을 수 없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갇혀진 문명을 형성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 다른 법률 아래 살게 되었을 때,

소년시절의 음영으로 가득 찬 그 마법의 공원, 그 얼어붙은 공원,

그 폭염의 공원에 무엇이 남아 있단 말인가!

지금 그 공원에 다시 돌아온 사람들은 일종의 절망감을 느끼며

바깥쪽의 나지막한 회색 돌담을 따라 걸으면서,

이렇게 좁은 울타리 안에 그때는 자기에게 있어

무한한 넓이였던 하나의 세계가 갇혀 있었음을 발견하고는 놀라게 된다.

그리고 이제 자기는 그 무한한 세계 속에 다시는 들어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들어가야 할 곳은 그 공원이 아니라, 그 놀이 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불귀순 사막은 없어졌다.

쥐비 곶, 시스네로스, 쀠에르또 깡사도, 사뀌에뗄함라,

도라 스마라, 그 어디에도 이제 신비는 없다.

우리가 그리고 달려가던 수많은 지평선들도, 마치 따뜻한 손의 올가미에 걸리면

빛깔을 잃어버리는 곤충들처럼 차례차례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 지평선을 쫓아다녔던 사람들도 어떤 환영에 사로잡혔던 것은 아니다.

그런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달리던 우리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의 팔에 안기자마자 아름다운 여자 포로들이 날개의 황금빛을 잃고

하나하나 새벽 빛 속에 사라져갔다는, 저 너무나 정교한 것을 추구했던

아라비안나이트의 사르탕 왕도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사막의 마술을 양식으로 삼았지만 다른 사람들 같으면

거기에 유정을 파서 그것으로 부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오는 것이 너무 늦었다.

왜냐하면 들어가지 못할 종려나무 숲이나 사람의 손이 닿은 적이 없는

조개껍데기 가루가 그 가장 귀중한 부분을 이미 우리에게 주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단 한 때의 열광밖에는 주지 않았으며, 그리고 그것을 살린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사막이라고? 언젠가 나는 바로 그 심장부로 해서 그곳에 뛰어든 적이 있다.

1935년 인도차이나로 가는 장거리 비행 도중,

나는 이집트의 리비아 접경 오지에서 끈끈이에 붙들리듯이

사막에 붙잡혀 버렸는데, 그때 나는 꼭 죽는 줄로만 알았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