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49과)3 |
사사기(4): 사사들의 이야기(3) (9-12장) |
1-2. 요담의 비유(7-21)
"7 혹이 요담에게 그 일을 고하매 요담이 그리심 산 꼭대기로 가서 서서 소리를 높이 외쳐 그들에게 이르되 세겜 사람들아 나를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를 들으시리라. 8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려 하여 감람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우리 왕이 되라 하매, 9 감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10 나무들이 또 무화과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하매, 11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12 나무들이 또 포도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하매, 13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한지라. 14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의 왕이 되라 하매, 15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아비멜렉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은 요담에게 전달되었다. 요담은 그 소식을 듣고 그리심 산에 올라가서 소리 높이 비유를 통해 아메밀렉을 비난하였다. 요담은 세겜 사람들에게 자기의 말을 들어야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심 산은 세겜 남서쪽에 인접해 있으면서 북동쪽에 있는 에발 산과 마주보고 있는 산으로 해발 854km이다(신 11:29). 이 산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을 향해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한 곳이기도 하다(수 8:33-35). 요담은 형제들을 복수하기 위해 은밀히 군사를 양성하지 않고 하나님께 심판을 맡겼다(롬 12:19).
이로 보아 아비멜렉의 선동적 언변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2절). 한편 요담은 매우 창의적인 우화를 사용하여 논지를 전개하였는데(8-15절) 이러한 우화는 일종의 비유 문학으로 다수 대중을 설득시키기에 좋은 방법이었다. 왕이 되기를 거절한 나무들은 기드온과 그 아들을을 가리키고 있다(8:22,23). 여기에 등장하는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그리고 포도나무 등은 나름대로의 귀한 재능을 이웃을 위해 사용하며, 분수를 넘어 과욕에 빠지지 않는 겸허한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롬 12:3). 그러나 14,15절에 등장하는 가시나무는 아무런 자격이나 재능이 없지만 협박 공갈로 왕위를 가로챈 아비멜렉을 비유하고 있다(시 12:8; 전 10:6). 그리고 이러한 요담의 경고는 그대로 성취되게 되었다(22절 이하).
감람나무('올리브 나무')의 열매는 식료품, 연료, 목공품, 의약품 등 일상 생활 전반에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이 나무에서 나오는 기름은 왕과 제사장의 임직식 때에의 머리에 부어졌으며, 성막의 등대를 밝히는 데에도 사용되었다(민 4:16; 왕하 9:6). 성경에는 종종 하나님의 축복이 감람 나무에 비유되고 있다(호 14:6).
이처럼 감람나무는 매우 귀하고 유용하였기 때문에, 나무들 중 왕이 될 만한 자질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었다. 따라서 왕을 뽑는다면 감람나무를 먼저 천거하는 것이 순리였다. '요동한다'는 말('누아')은 '떨다', '요동하다'라는 뜻 외에 '휘두르다'란 뜻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누아'는 '지배권'을 보여 주는 용어이다. 즉 감람나무는 자기가 모든 나무의 왕이 되어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이다. 무화과나무는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중의 하나이다. 그 열매는 흔히 식용으로 사용되나 일부는 약재(藥材)로도 사용된다. 팔레스타인에서는 1년에 9개월 내지 10개월 이상 계속해서 그 열매를 딸 수 있다. 더군다나 무화과나무의 잎사귀는 넓고 무성해서 더운 지방에서는 고마운 그늘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무화과 열매는 당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설탕이 귀했던 고대에는 설탕 대용으로 음식을 달게 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포도나무는 팔레스타인에서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함께 가장 많이 재배되는 나무이다. 이곳에서 수확되는 포도는 품질도 아주 좋아 주변 여러 나라로 수출되었다.
포도로 만든 포도주는 식수 사정이 좋지 못한 팔레스타인에서는 중요한 음료수 역할을 했다. 고대로부터 팔레스타인 및 시리아 지방은 포도주의 질이 좋고 양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헤브론 일대는 손꼽히는 포도주 산지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새로운 가르침을 '새 포도주'에 비유할 정도로(마 9:17) 이 포도주는 팔레스틴 지방민들의 일상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잔치 때는 물론(요 2:1-11) 평상시의 식사 때에도 음료수 삼아 포도주를 마신다. 이와 관련 시편 기자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시 104:15)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이 포도주는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용 술로도 바쳐졌다(삼상 1:24; 10:3). 그밖에도 포도주는 곤비한 자들에게 활력을 주며(삼하 16:2) '비위와 자주 나는 병'(딤전 5:23)에 약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상처 부위를 소독하는 소독약 대용으로도 쓰였다(눅 10:34). 이상과 같은 점에서 가히 포도주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술'이라 칭할 수 있다.
가시나무는 가시 있는 관목(灌木)을 총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이 나무는 저주를 상징하는 나무로서(창 3:18)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처럼 식용으로 사용될 열매도 없고, 감람나무와 같이 여러 용도로 소용되는 기름도 없다. 오히려 이 가시는 사람을 찌르며 고통스럽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요담은 이 가시나무를,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하여 방탕하고 경박한 유를 사서 형제 70인을 죽인 아비멜렉(4,5절)에 비유하고 있다. 모든 나무들이 가시나무의 무익성과 그 해악에도 블구하고 굳이 가시나무더러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는 행위였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을 배제하고 인간적 취향과 욕구에 따라 스스로 절대적 보호 망을 만들고자하는 인본주의적 노력을 상징한다. 역사상으로 이러한 보호망은 이념, 체제, 국가, 이방 종교, 재물 그리고 심지어는 예술 등의 영역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다. 러한 무모한 요청에 대해 가시 나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나섰으며 심지어 위협하는 자세를 보이기까지 했다(15절).
이처럼 지극히 우매하고 무모한 대중들의 여망(輿望)은 자기 분수도 모르는 파렴치한 지도자의 허세와 결탁하여 피차의 멸망을 초래케 하는 것이다. 가시나무는 본래 그늘이 거의 없다. 따라서 그 가시나무 밑 그늘에 피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 가시에 찔리는 것과 같다. 이처럼 요담은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왕 삼은 것이 그들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Moore). 레바논의 백향목은 근동 지방에서 가장 값진 나무로 최고급의 건축 재료로서(레 14:4 ) 본문에서는 이 나무가 세겜 성읍의 지도자들을 상징하고 있다.
요담은 나무들의 비유를 통해서 아미멜렉이 왕이 된 것을 비난한 후에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은 일이 정당한 일이냐고 물었다. 요담은 이러한 행위가 이스라엘을 구한 기드온과 그 집에 행할 수 있는 일이냐? 고 다구쳤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을 때 기드온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에는 왕이 하나님 한 분밖에 없기 때문이다(8:22,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으로 하여금 왕을 삼은 것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함이었다(2,3절). 따라서 이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결코 진실되거나 의로운 행동이 될 수 없었다. 요담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답'이란 말( '그물')은 선악에 대한 보상, 답례를 의미한다. 구약시대에는 개인이나 민족의 선악행위가 현실적으로 그대로 보응 받는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수 23:9-16). 이는 신정국 이스라엘의 독특한 면모를 반영하는 것이다.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은 현세적으로 부당하게 대우를 받기도 하지만, 종국적으로 모든 것을 합당하게 갚아 주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소망을 지니고 있다(롬 12:19). 한편 세겜 사람들은 이러한 사상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의 은공을 악행으로 갚았다(1-6절). 때문에 요담은 본절에서 이러한 잘목된 보응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현실적 정책이 다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요담은 자기 부친이 과거에 죽음을 무릅쓰고 세겜을 위해 싸워서 미디안의 손에서 그들을 구해낸 일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그들이 기드온의 아들을 쳐서 칠십 인을 한 반석 위에서 죽이고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자기 족속이라고 해서 그를 왕으로 삼은 일에 대헤 책망했다. 요담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세겜 사람들이 기드온의 가족들에게 은혜를 악으로 갚는 배은 망덕한 죄를 범했다고 강조하였다. 세겜 사람의 왕이란 말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동의하여 세운 왕이 아니라 세겜 사람들이 임의로 세운 왕이란 사실을 비꼬아 한 말이다. 또한 이는 아비멜렉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세겜 지역의 왕 노릇밖에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저주의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요담은 만일 세겜 사람들이 한 행위가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었다면 그들이 아비멜렉을 인해 즐길 것이며 아비멜렉도 그들을 인해 즐길 것이지만, 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이 서로 상대를 쳐서 둘 다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세겜 족들이 기드온의 아들들을 몰살시키고 아비멜렉을 왕으로 추대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좇은 행위였다면 하나님께서 세겜족은 물론 아비멜렉도 형통케 하사 서로 기쁨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정작 세겜족의 소위(所謂)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한 이기적인 행위였다(16절). 이러한 요담의 예언은 삼 년 후에 그대로 성취되었다(22-27절).
요담은 이 말을 한 후에 아비멜렉을 두려워하여 도망하여 브엘로 가서 살게 되었다. 브엘은 '우물'(well)이란 뜻이며, (민 21:16)에는 브엘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대로 물을 주신 우물이 있었던 곳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곳은 요단 동편의 모압 족속 지경(地境)이었기 때문에 본문의 '브엘'과 동일한 곳인지는 알 수 없다. 요담이 그리심 산(7절)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요단 동편 모압까지 도망쳤다고 보기는 다소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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