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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52과) 3

Joyfule 2008. 10. 25. 00:03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52과) 3 

 사사기(7): 부록(2) 도덕적 타락(19-21장)

 


 다. 기브아에 유슉하게 된 레위인(10-21)

 

  "10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아니하여 일어나 떠나서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둘과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11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사이다. 12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외인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13 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나아가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 14 모두 앞으로 행하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15 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이켜 들어가서 성읍 거리에 앉았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케 하는 자가 없었더라. 16 이미 저물매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우거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사람이더라. 17 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거리에 행객이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뇨? 18 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19 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보리가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 우리들과 함께 한 소년의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20 노인이 가로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모든 쓸 것은 나의 담책이니 거리에서는 자지 말라 하고, 21 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그러나 레위인은 그 곳에서 밤을 지내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인의 청을 거절하고 길을 떠났다. 그들은 길을 떠나서 여부스 맞은편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가 가는 길에는 안장 지운 나귀 둘과 첩이 그와 함께 하였다. 이처럼 레위인이 밤중에라도 집으로 가려고 한 것은 그 다음날 저녁부터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종교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자였기 때문에 안식일에는 성소에서 봉사하여야만 했다(Lange).

 

여기서`여부스 맞은편'은 예루살렘의 서쪽을 가리킨다.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걸어서 약 1시간 반 거리이다.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세겜 쪽의 에브라임 산지로 가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의 서쪽에 있는 도로를 반드시 지나야 한다. 여부스라는 이름은 여부스 족이 다욋 시대까지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삼하5:6).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왔을 때에 해가 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레위인의 종은 주인에게 여부스 사람 성읍에 가서 밥을 지내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레위인은 이방인의 성읍에서 머물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브아나 라마 중에 한 곳에서 유숙하자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비록 가나안을 정복하기는 했지만, 아직 미 정복지가 남아 있었둣이(1:19-21,27-36)  예루살렘 역시 다윗 시대까지 가나안 후기 원주민인 여부스족의 성읍으로 남아 있었다

(1:21).

 기브아(Gibeah)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6.4km 떨어진 곳에 있었던 베냐민 지파의 땅이다(수 18:28). 이곳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고향이기도 하다(삼상 10:26). 그리고 라마는 기브아에서 북쪽으로 약 3.2km 가량 떨어진 곳이다(수 18:25). 이 곳은 현재의 엘람이며 과거 여사사 드보라의 고향이었고(4:5) 또한 사무엘의 활동 중심지였다(삼상 7:17). 그러므로 그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그들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레위인은 라마로 가지 못하고 기브아에서 유숙하기 위해 다시 기브아로 돌아갔다.

그는 기브아로 들어가서 그곳의 성읍 거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라. 레위인 일행이 앉아 있던 거리는 성문 안쪽에 있는 넓은 광장으로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공회(公會)를 열거나 재판을 행하거나 장사하는 곳이었다. 레위인 일행이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에 앉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기브아 사람들이 얼마나 악했는가를 보여준다. 즉 나그네를 사랑하고 대접하라는 것이 율법의 가르침이었지만(신10:19), 그들은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이 일로 인해 레위인의 일행은 이방인의 성읍인 여부스에서 머물기를 마다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성읍까지 오면서 가졌던 기대를 한꺼번에 잊어버리고 낙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Wycliffe).

 

  이미 날이 저물었을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고 있었다. 이 노인은 원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기브아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기브아에 살던 기민들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다. 본서 기자는 레위인 일행에게 친절을 베푼 에브라임 출신의 노인 한사람을 소개하면서, 기브아 성읍에는 타지에서 온 이 한 사람 외에는 정직한 사람이 없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우거하는 자란 말(`게르')은 '나그네(손님)로서 체류(거주)하다'는 뜻의 '구르에서 온 말로, 타지에서 온 사람을 가리킨다. 노인은 어둠 속에서 성읍 거리에 여행객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찾아가서 본지라. 여행지의 출방지와 목적지짐이 어디냐고 물었다. 레위인은 그 노인에게 자기는 유다 베들레헴의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는 도중이라고 말했다. 레위인은 자기가 그 곳 사람이며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아무도 자기를 영접하는 사람이 없다고 호소했다. 노인이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을 때 레위인은 이처럼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대답을 했다. 당시 `여호와의 집` 즉`회막'은 실로에 있었다(수 18:1; 삼상 4:3,4).

그런데 실로는 레위인의 집이 있던 에브라임 산지(1절) 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때문에 본문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서는 학자간에 서로 견해가 다르다. 먼저 혹자는 본절을`여호와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Keil). 그러나 다른 사람은 이 레위인이 그의 첩과 화해하였기 때문에 화목제를 드리러 실제로 `여호와의 집'으로 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말한다(Cundall). 반면, 또 다른 사람은 이 레위인이 단지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고 말함으로써 그 노인에게 좋은 대우를 받기를 원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Cassel). 그런데 70인역(LXX)은 이 말을 `나의 집으로'로 번역하고  있어서 카일(Keil)의 주장이 옳음을 반증해 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레위인이 `여호와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간다고 말함으로써 그 노인에게 좋은 대우를 받고 싶어하는 의도를 가졌었음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레위인 일행은 그 노인으로부터 크게 환대를 받았었기 매문이다(19, 20절).

여기서 `영접한다'는 말(`아사프')은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가벼운 선심을 쓰거나 계산에 의거하여 일정한 혜택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뜨거운 마음으로 열렬히 환영하는 것'을 가리키는 `카라'와는 엄연히 구별된다. 이로 보아 레위인 일행은  기브아에서  숙박비를 제공하려 해도 유숙할 장소를 얻지 못했던 것 같다(15절).

  

레위인은 자기에게 나귀에게 먹일 짚과 보리도 있고 자기들이 먹을 양식과 포도주도 있기 때문에 잠잘 장소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노인은 자기가 레위인이 쓸 물건을 담당하겠다고 대답했다. 그 노인은 레위인에게 거리에서 자지 말고 자기 집으로 가서 유숙하라고 요청했다. 그 노인은 레위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인도하고 나귀에게 양식을 먹여주었다. 그러므로 레위인 일행은 그 노인의 집에 들어가서 발을 씻고 먹고 마실 수 있었다. 레위인은 노인이 마음에 부담을 갖지 않도륵 하기 위하여 나귀 두 마리와 자신과 자기 첩과 종이 먹을 양식과 짚은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말속에는 기브아 사람들에게 단지 하룻밤 묵고 갈 숙소만을 요구했는데도 그들이 받아주지 않았다는 탄식이 내포되어 있다(Pulpit). 그 노인은 레위인의 염려를 이해하고 안심시켰다. 여기서 `안심하라'는 말(`솰롬')은 평안을 기원하는 히브리인의 인사이다. 이러한 히브리 인사에서  우리는 지난날 애굽의 종살이나 광야의 방황생활 중에서 히브리인이 얼마나 평안을 원했는지를 알 수 있다. 옛부터 거리에 앉아 있는 나그네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후히 대접하는 것이 히브리인의 관습이었다(창 18:1-8; 19:1-3). 만일 그렇지 않을 때는 공회 앞에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신 10:19; 욥 31:32). 따라서 그 노인은 전통적 관습대로 나그네가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에 상관없이 자기 양식으로 그들을 대접하려고 했다. 그 노인은 레위인 일행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환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귀도 잘 먹였다. 이는 곧 그가 진정한 마음으로 나그네들을 사랑하고 대접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고대 근동에서는 여행자들이 주로 샌달을 신고 흙먼지 길을 다녔다. 그러므로 손님을 영접하는 주인은 반드시 발씻을 물을 내어놓는 것이 예의였다(창 18:4; 24:32; 43:24; 요 13: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