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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70과)2

Joyfule 2009. 4. 23. 00:20

인터넷 성경 핵심 공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70과)2

역대기(1): 서  론


 

1.4 역대기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

  그렇다면 과연 역대기는 족보 투성이의 케케묵은 남의 이야기이며, 환상적인 아라비안 나이트이고, 사무엘-열왕기의 재탕에 불과한가? 그렇지는 않다. 최근에 들어서 역대기는 구약 시대의 마지막에 기록된 책으로 구약 전체의 사상이 가장 잘 요약된 기록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첫째로 역대기는 족보들로 가득한 죽은 사람드의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역대기를 기록할 당시에 역대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원래 독자들에게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마른 뼈들처럼 보였을 것이다. 역대기가 주전 4세기에 기록되었다면 역대기에 기록된 역사는 이미 오래 전 옛날 스토리인 셈이다. 주로 바벨론 포로 이전의 유다 역사를 담고 있는 역대기는 바베론 포로라는 거대한 심연을 사이에 두고 첫 독자와 마주 앉아 있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역대기 기자와 왜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역대기 기자는 소생되어야 할 마른 뼈들은 역대기 속의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역대기를 읽은 독자들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진정한 생명의 바람을 필요로 하는 마른 뼈들은 당시에 역대기를 읽던 독자들이었으며, 또한 우리들이었다.

 

  둘째로 역대기의 환상적으로 보이는 숫자나 과장을 근거로 역대기의 신빙성을 의심해서는 안된다. 역대기의 숫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학자들은 원래 1,000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엘레프"가 때로 1,000명보다 작은 전투 단위 부대를 가리킬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116만명이나 된다고 기록된 여호사밧의 군대는 총 1,160부대가 되어 어느 정도 그 숫자를 경감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한 부대를 100명이나 50명으로 보더라도 예루살렘에 거주한 여호사밧의 군대는 58,000명, 또는 110,000명이나 된다. 사실상 이것도 많은 숫자이다.

 

그러므로 멘덴할(Mendenhall)은 1,000을 가리키는 "엘레프"가 5-14명의 부대 단위를 가리킨다고 주장하여 숫자를 크게 감소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숫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대기 저자는 숫자를 사용해서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숫자를 줄이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러나 항상 역대기의 숫자가 사무엘-열왕기의 숫자보다 큰 것은 아니다. 양자의 숫자가 명백하게 불일치하는 17번의 경우에서 5번은 역대기의 숫자가 낮다. 역대기의 숫자는 어림으로 잡은 수자일 수도 있고, 상징적인 숫자일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세라의 100만 군대는 단순히 많은 숫자의 군대를 의미할 수도 있다.

 

 따라서 숫자가 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역대기의 신빙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셋째로 역대기는 단순히 사무엘-열왕기의 재탕이 아니다. 우선 사무엘-열왕기와 동일한 부분에서도 그대로 복제하고 있지 않다. 뒤에 부록에서 자세히 살피겠지만, 역대기 기자는 "조화, 첨가와 보충, 생략, 모형론" 등을 사용해서 사무엘-열왕기를 주해함으로 이전의 성경을 자신의 시대에 살아있게 만든 해석자였다. 이러한 점에서 역대기는 이전의 정경 자료를 이용할 때에도 나름대로의 신학적 관점을 드러낸 탁월한 주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나머지 사무엘-열왕기와 동일하지 않은 50%의 자료는 역대기 기자가 스스로 첨가한 것이다.

 

역대기 저자는 독자적으로 첨가한 50%의 새로운 내용과 이전의 자료를 적절한 방법으로 첨삭함으로 그 내용을 풍성하게 하고 잇다. 사실상 역대기 기자는 인류의 최초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포괄적인 안목을 가지고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역대기 저자는 이렇게 포괄적인 자료들 중에서 수많은 자료들을 생략하고 원하는 일부 자료를 선택했다. 사무엘-열왕기 시대와 동일한 시기를 다룰 때에도 그 책들을 참고하면서 자유롭게 자료를 첨삭했을 것이다. 따라서 역대기를 단순히 사무엘-열왕기를 보충한 것으로 생각해 온 과거의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역대기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구약 역사서의 전체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마가복음과 요한복음만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려는 것과 같다. 이러한 시도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이스라엘의 역사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역대기는 여호수아-열왕기의 책들이 다루는 시대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른 시각에서 조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들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대기를 제데로 읽어야만 한다.
 

1.5 설교로서의 역대기

  그 동안 교회 역사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역대기는 사무엘-열왕기를 보충하는 부록 역사나, 사무엘-열왕기와는 다른 관점으로 쓴 대안 역사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물론 역대기 기자의 역사적 관점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가 명시적으로 32개의 출처 자료를 언급한 점은 그의 역사적 관심사가 적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역사적 관심보다는 하나님의 인애를 믿고 신앙으로 돌아올 곳을 호소하는 설교적 관심을 더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물론 역대기를 설교로 규정한다고 해서, 이것이 레위인들의 설교한 것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 단지 역대기는 단순한 역사 기록이나 신학적 에세이가 아니라, 교훈적 성격, 즉 케리그마로서의 셩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설교로 부르는 것이다. 이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은 부록을 참고하라. 구약 시기에 마지막으로 등장한 역대기는 이전 구약 책들에서 발전된 모든 신학 사상들이 거의 다 나타난다. 시몬 드프리스(Simon DeVries)는 역대기를 "모든 성경에서 가장 풍성한 영성의 광산"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그가 이렇게 주장했는지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