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통일은 곧 북진통일이다!
2008. 4. 23.
정창인(unifykorea.net/자유통일포럼 대표)
자유통일은 대한민국이 주도하여 북한동포를 해방하고 자유민주체제 하에 북한을 흡수통일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북한의 김정일 공산군사독재체제를 무너뜨리고 한국의 자유민주체제를 북한 지역으로 확대하여 실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유의 북진, 즉 자유의 북한지역에로의 확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유통일은 북진통일을 의미한다. 자유의 북진을 의미하며 자유민주체제의 북진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남진하는 세력은 다 망했다. 고구려가 남진하다가 망했고 백제도 남진하다가 망했다. 북한도 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다만 김일성/김정일의 독재가 너무도 잔인하여 북한 주민이 움직일 틈이 없고 한국이 북으로 밀고 올라갈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기회는 점점 다가오고 있다. 아무리 김정일이 악랄하게 정권을 유지하고자 하나 국제사회와 고립된 상태에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불원간 김정일 체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으며 자유는 북진할 것이다.
북진통일은 국부 이승만 대통령의 전략이자 목표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소련의 괴뢰 정권이 북한에 수립되는 순간부터 이들을 무력으로 격멸하지 않고는 통일을 성취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소련은 오래 전부터 부동항을 얻기 위해 한반도 전역 또는 일부를 획득하고자 하였고 그 목적으로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에 참전하여 38선 이북을 점령하였다. 따라서 소련이 순순히 물러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소련이 김일성을 무장시켜 남침준비를 하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군을 최소한 방어능력을 갖출 정도만이라도 무장하기를 원했으나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경고와 요구를 무시하였다. 1949년 5월 무쵸 대사가 한국에 잔류하고 있던 15,000명의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대한안보공약을 요구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주둔하거나 철수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나는 남한에 대한 공격을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트루먼 대통령의 성명서를 요청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트루면 대통령의 성명서는 없었고 오히려 1950년 1월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한국이 미국의 아시아 방위선 밖에 위치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미국은 또 다시 이승만 대통령을 배신하고 한국을 포기하였다.
그 해 3월 이승만 대통령은 비망록에 이렇게 적고 있다. “북쪽의 적이 아무 때고 우세한 전력을 동원해 남침을 감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가 속수무책이라는 점을 한 번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대공포나 항공기는 물론 탄약도 없다. ... 아직까지 모스크바가 북한에게 남침의 ‘청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는 것은 공산도당과의 타협을 반대하는 우리 국민들의 결의와 나의 확고한 반공정책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보다 우수한 무기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왔다. ... 우리가 바라는 것은 막강한 육군도, 막강한 공군도, 막강한 어느 것도 아니다. 단지 각 군이 방위에 필요한 만큼의 전력을 갖추는 것이다. ...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국무부는 현재의 미국 방위선 개념을 바꾸어 한국을 포함시켜야 한다. ...”
미국의 무관심과 이승만 대통령의 좌절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에 의한 전면적 남침이 개시되었다. 국군의 능력을 잘 알고 있는 대통령이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신성모 국방장관에게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전력을 다해 저항할 것을 명령한다. 거의 무방비인데다 외국의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절박한 상태에서 침략군을 격퇴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항복이 아닌 저항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후에 신성모 장관이 적의 첩자였다는 혐의가 제기된 것을 감안한다면 한국군이 패주하면서도 공산군을 저지하고 격퇴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이승만 대통령과 국민의 확고한 반공정신 덕분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미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공산 전체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자유인은 항복하지 않는다.”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군의 남하가 저지되기 전부터 분단 조국의 조속한 통일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었다. 1950년 7월 19일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낸다. “... 북한 주민도 남한 사람과 같은 동포입니다. 외국에서 훈련받고 외세의 지시를 받는 소수의 공산주의자들을 제외한 북한 주민 모두는 자신들이 태어난 땅에 충성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번 전쟁은 남북 간의 분쟁이 아니라, 어쩌다 우리 국토의 반을 지배하게 된 몇몇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이 어디에 살든 절대다수 한국 국민들 간의 싸움입니다. ... 한국국민과 그들의 강력한 우방이 치른 위대한 희생의 결과가 통일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할 일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저항 결의와 통일에 대한 열망이 미국을 감복시키고 미국의 주선으로 유엔군이 편성되어 공산군을 격퇴하고 급기야 북한으로 진격하게 되었다. 이 기회에 공산세력을 몰아내고 통일을 성취하여야 한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결의는 대단하였다. 그러나 겁쟁이 미국 대통령은 통일이 아닌 원상회복만을 추구하고 있었다. 미국은 중공군을 격퇴시키기 위해 만주지역에 원폭을 투하하자고 주장한 맥아더 장군을 해임하고 일선지휘관에게 이기지도 말고 지지도 말라는 이상한 지시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통일을 포기한 휴전에 반대하였으며 그 결의를 표시하기 위해 반공포로를 석방하고 휴전협정 서명을 거부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쟁이 뚜렷한 결의만 있었더라면 이길 수 있었고, 아시아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승리했어야 할 전쟁이지만 미국의 3차 대전에 대한 공포심으로 인해 연합군이 패배한 정쟁이라고 생각하였다.
정전협정이 성립된 이후에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 의지는 더 강해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분단을 ‘적색(赤色) 제국주의(帝國主義)’가 북한을 강점해 생긴 문제로 보았으며, 북한을 해방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북진통일론을 내세웠다. 공산독재진영과 자유민주진영의 공존은 불가능하고 궁극적으로 전면전쟁이 불가피하므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예방전쟁(preventive war)’을 치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론의 핵심이다. 그래서 미국은 휴전 이후 공산진영의 전쟁 재개뿐 아니라 한국의 전쟁 개시 가능성에도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한미동맹은 한국을 북한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도 하였지만 역설적으로 한국의 북진을 막아 김일성의 공산독재정권이 오히려 북진의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독재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한미동맹의 역설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7월 미국을 방문하여 무력에 의한 북진통일을 호소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독재진영과 자유민주진영 간의 제3차 세계대전은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나의 견해 차이는 제3차 세계대전을 지금 하느냐, 아니면 앞으로 미루느냐 하는 점에 국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극동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반격전을 전개하자고 주장하면서 미국이 해군력과 공군력만 지원한다면 아시아 지역의 군대만으로 북한을 회복하고 나아가 중국 본토를 회복할 수 있다고 장담하였다.
그러나 ‘평화’무드에 빠진 미국의 여론은 이승만 대통령의 주장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휴전이 기정사실화되고 국제정세가 평화공존이 정착되는 방향으로 흐르자 북진통일론은 안팎에서 도전받게 된다. 한국에서도 북한의 대남전략인 평화통일론을 주장하는 정치인이 나타나게 되었고 그 이유로 조봉암이 사형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4.19학생데모로 물러나게 되자 그와 함께 북진통일론도 사라지게 되었다. 만약에 조봉암이 살아있었다면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이후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잡게 되어 공산통일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우리가 지난 10년간 친북좌파정권이 들어서게 된 것도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한 공산주의자를 처치하지 못한 것이 계기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여간 자유통일은 북진통일을 전제로 한다. 건국 60주년이 되는 이때에 이르러서도 아직 북진통일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이승만 대통령의 정확한 상황판단과 미국의 현실안주주의가 아직도 대척점에 존재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의 확산은 역사의 대세요 자유인의 결의요 의무다. 자유인은 항복하지 않는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발언은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명언이다. 이런 이유로 이승만 대통령이 임종시 한국 국민에게 남긴 유언이 신약성경의 갈라디아서 5장 1절의 말씀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러나 오늘 날 한국사회는 김정일의 ‘종의 멍에’를 진 사람들이 평화주의자로 위장하고 한국을 김정일에게 갖다 바치기 위해 활동하는 반역자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은 역사발전을 거역하는 반동분자들이요 자유의 확산을 방해하는 악의 세력이다. 우리는 이들의 악랄한 공작을 물리치고 자유를 북한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그래서 북한동포를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켜 그들도 우리와 동일한 자유를 향유토록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자유인의 사명이다. 자유통일, 그것은 곧 북진통일과 같은 의미다. 자유가 북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국군이 북으로 전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 이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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