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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 장. 승 리 - 부활의 내면적 의미

Joyfule 2007. 10. 16. 00:13

제 20 장. 승 리

4. 부활의 내면적 의미

우리는 이 장에서 부활의 사실성과 이 사실이 처음 알려지게 했던 부활하신 주님의 나타나심을 취급해 왔다. 이제 우리는 최종적으로 이 사실의 내면적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분명히 이와 같은 사건은 제자들이나 교회 뿐만 아니라 전 세게에 대한 어떤 결과 또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예수님의 부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부활은 그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입증이었다. 제자들이나 가서 부활하신 주님을 전파하며 선포할 때에 그들은 의미 심장하게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를 사용하여 그 사건을 묘사하였다. 그들은 꼭 [그가 부활하셨다]가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켜지셨다]고 말했다. 이것은 그들이 깊은 영적 통찰력으로 그 일어나 사건이 바로 하나님의 행위이며 하나님의 오른팔이 그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행하신 일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행2;24,32,3:15,4:10,롬6:49,고전15;15).흉악범의 죽음을 당하신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은 정통파 유대인의 생각에는 충격적일 뿐 아니라 실제로 참람한 것이었다. 예수님에 대해 은밀한 기대를 가졌던 많은 경건한 사람들도 틀림없이 십자가 형벌로 인해 그의 거짓됨이 드러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부활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품어왔던 가장 고귀하고 대담한 희망에 대한 하나님의 확증과 예수님의 메시야 권에 대한 하나님의 인치심, 그리고 그의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입증이 나타났다.

 

부활은 더 나아가서 의에 대한 입증이었다. 대담하고 용감하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건부를 선과 진리,그리고 사랑의 절대적 타당성에 거셨다. 이것들의 중요성을 그는 항상 말씀하셨다. 이것들을 위해 그는 [자기 헌신]의 마지막 한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생을 바치셨으며 이것들에 대한 믿음을 위해 그는 기꺼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만일 무덤에 머물러 계셨다면 이 세상은 도덕적으로 혼란하며 善이란 한낱 신기루이며 도의심이란 해로운 망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날 새벽 온 우주가 하나의 위대한 행도에 의해 고상하고 이기심 없는 생활 방식을 보증하고 확인하였다. 이제는 우주자체가 선한 싸움을 싸우는 인간 편에 있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셨으며 이로써 의가 입증되었다.

 

부활은 영생에 대한 보증이었다. 비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에 의해 감동을 받으나 가장 감명을 받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죽음에 대한 경멸이다. 그러나 사망의 왕에게서 그 권세를 박탈하신 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였다.[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요14:2-3). 만일 죽음이 이러한 것이라면 두려워 할 여지가 어디에 있겠는가 사망에 대한 예수님의 승리는 그를 믿는 자들의 승리를 포함하고 있었다. [내가 살았으므로 너희도 살겠음이라](요14:19). 부활하신 날 아침은 영생을 밝히 드러낸 아침이었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사망이 패배하여 넘어진 것을 보면서 시편 기자와 함께 [하나님이 즐거이 부르는 중에 올라 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시47:5)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끝으로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살아계심을 의미한다. 부활하신 후 말할 수 없이 즐거웠던 사십일간이 끝나고 예수님의 육체적 현현이 그쳤을 때에도 제자들은 그들이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매일 예수님 자신의 말씀이 그들의 체험 속에서 실증되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28:20).그들의 파란곡절 많은 모든 봉사활동을 통해서 그들을 버티어 준 것은 사라지지 않는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적 임재와 매일매일의 교제였다. 사망이 난폭하게 닥쳐 오는 것을 그들이 보았을 때에 그들을 붙잡아 준 것은 예수님의 손이었다. 그들의 체험만이 유일하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제자들이 살았던 시대 이레로 수많은 남녀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이야기해 왔다.이것은 이적이 아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면 즉 그가 지금도 살아 계셨다면 그의 친구들이 종종 그를 대면하여 만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러한 교제는 부활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어떤 날 [매튜 아놀드](는 (mattew arnold)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오, 그 위대했던 시대에 살았더라면 그 영광이 새로이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며 나의 황홀한 영혼을 사로 잡았을 것을! 이제 그는 죽었다. 그 오랜 동안을 [시리아]의 쓸쓸한 마을에 그는 묻혀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의 무덤 위를 [시리아]의 별들만이 반짝이는 눈으로 내려다 본다. [아놀드]는 잘못 알았다. 그는 전혀 결정적으로 잘못 알았다. 왜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는가? 그리스도는 살아계신다. [버밍험]의 위대한 설교자였던 故[데일]박사는 어느 날 그가 부활주일의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 어떻게 부활의 사실성이 이전에 결코 그랬떤 것이 없었던 만큼 강렬하게 그에게 엄습해 왔는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살아계신다!] 라고 나는 속으로 말했다. [그는 살아계신다!]그리고는 잠간 있다가 다시 말했다. [그는 살아계신다! ]잠깐 후에 다시 말했다. [그는 살아계신다!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처럼 실제로 살아계실까?]나는 일어나 걸으면서 되풀이 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다!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다!]맨처음에 그 사실은 이상하고 그의 진실이 아닌 것처럼 영광의 광채처럼 나를 휩쌌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천의 사람들에게 이 사실이 단순한 이론이나 불확실한 소문이 아니라 확증된 불가침의 체험이 되고 있다.만일 그들이 한때 패배했던 그곳에서 승리의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부활하신 아침에 동산의 꽃밭을 거니시던 부활하신 주님을 그들이 발견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