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장. 생명의 주
1.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과 미완성 사역
이제 우리는 이야기의 끝 부분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의 끝은 또 하나의 시작이다. 이 이야기를 기록한 복음서 기자들은 이 사실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다. 또한 복음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끝내면서 거기에다가 [끝(Finis)]하고 쓸 생각은 결코 그들에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펜을 놓고 복음서를 끝맺으면서 그들이 쓴 것은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수 없는 세대와 시대를 통해 계속되게 되어있는 이야기의 첫 부분 제1권이라고 생각했다.
그들 중 하나인 누가는 후일 다시 펜을 들어 제2권을 세상에 내어 놓았다. 그리고 사도들의 행전이라고 부른 제2권의 서문에서 그의 처음 기록에 대해 언급하기를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 부터... 의 길을 기록하였노라](행1:1-2)고 썼다. 왜냐하면 누가는 그가 이미 그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말했을지라도 그 뒤에 따를 훨씬 더 많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지상에서의 예수님 사업은 그가그 아버지께로 돌아가셨을 때 끝났다.
[그의 모든 일이 끝났노라]고 우리는 즐거이 찬송하네 [예수께서 승천하셨네! 우리 왕께 영광]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라고 말했다(롬6:9).이러한 모든 것은 끝났다. 지상에서의 봉사, 겟세마네의 고통, 체포와 재판, 골고다로 가는 고통의 길,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이러한 것들은 모두 끝났으며,결코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것들은 왔다가 사라졌다.
그것들은 한번, 다만 한번 일어났다. 죄의 완전한 댓가가 치루어졌다. 구속적 사랑의 계시는 완성되었으며 끝났다. 아무 것도 미완성으로 남은 것은 없었다. 아무 것도 덧붙여 질 것이 없었다. 우리는 결코 예수님보다 더 나아가기를 바랄 필요가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어쨌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갈보리에서,빈 무덤에서,그리고 승천에서 그 절정과 완성과 면류관을 발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의 전부는 아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역사적 사실의 흔들리지 않는 반석주위에 단단히 그 뿌리를 감은채 역사 속에 안전하고 확고하게 뿌리박고 있는 반면 복음의 그리스도는 단순한 역사상의 인물 이상이히기 때문이다.
다메섹으로 가는 [다소]의 사울을 붙잡아 말에서 끌어 내려 땅바닥에 꿇어 앉히고, 그의 생애를 뒤바꾸어 놓았던 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회고가 아니었다. 기독교의 메시지를 마치 요원의 불길처럼 온 땅에 퍼지게 했던 것은 지나간 추억이 아니었다. 인간으로 하여금 오순절의 제자들이 타올랐던 것처럼 찬송하게 하며[프란시스 파]의 수도사들이 찬송했던 것처럼 찬송하게 하고 [카비란터]의 순교자들이 죽었던 것처럼 순교하게 했던 것은 고귀한 모본에 대한 회상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첫번째 기록인 복음서의 뒤를 수백권의 기록이 뒤따랐다. 실제로 현재에도 예수님께서 잃은 자를 찾으시면서, 상한 마음을 싸매시고,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시면서 생의 혼잡한 거리를 지나다시시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기록되고 있다. 갈보리의 수난이나 부활의 아침이 지나간 때에도 그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그 이야기는 다만 시작하였을 뿐이다.
최초의 제자들은 이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이제 그들이 지금 알고 있는대로의 예수님을 [온 세상의 왕좌]보다 낮은 자리에 둔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생의 통치자와 주인이 되셔야 함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골고다의 수치]로부터 삼백년이 되기도 전에 가이사을 바쳤던 것이다. 외견상으로 볼 때 사랑의 무기 외에는 어떤 무기도 갖지 못한 이 소수의 사람들이 무력이란 무기를 가지고 또한 그것을 쓰려고 작정한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이들이 물질주의와 세속주의 즉 바울이 말하는 [정사와 권세], 그리고 이 세상의 견고한 이기주의의 기득권에 대항하여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이들이 전대미문의 꿈을 그 눈길에 담고서 처음 발걸음을 내디뎠을 때에 세상은 이들을 그저 경멸하여 비웃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비웃음과 결명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계속 굳굳하게 마을에서 마을로 나라에서 나라로 나아가 드디어 로마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을 때,세상은 이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이들의 길을 가로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때즘에는 타오르는 불이나 고문대,또는 맹렬한 모욕도 모두가 소용없었다. 그 꿈이 승리하였으며 세상은 그 발아래 굴복하였다. 이것은 이들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이라고 언제나 이들은 말했다. 그것은 그 첫권이 베들레헴과 갈릴리 그리고 갈보리의 이야기를 담았던 전기의 계속이었다. 여전히 지금도 행동하시는 그리스도, 강한데서 강한데로 나아가는 그리스도 살아 계셔서 이 지상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이었다.
이들이 옳았다. 이 사람들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만이 이들이 보여준 힘을 설명할 수 있다. 여러 차원에서 그 힘은 스스로를 나타내 보였다. 먼저 신체적 차원에서의 힘으로 나타났다.새롭고 상쾌한 기운이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와 그들로 하여금 열심과 생동하는 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였을 일들을 이루어 내게 하였다. 그 다음 심적차원에서의 힘으로 나타났다. 그리스도를 최초로 따랐던 이들중 다수는 교양이 없고 무식한 자들이었런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이 이제껏 그 유례를 보지 못했던 독창력과 본질에 대한 파악력,결정의 솔직함을이들에게 주게된 어떤 일이 일어났다.
또한 그 힘도 도덕적 차원에서의 힘으로 나타났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인간을 삼키며 멸망시키는 정욕에서부터 구함을 받았다. 어떤 이들은 맹렬하고 끈질긴 유혹과 싸워야 했으며 어떤 이들은 부패의 소굴이었던 도시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좁은 길을 흰옷을 입고 더럽히지 않은채 바로 예수님의 정결함과 같은 정결함을 지니고서 걸어갔다. 또한 그힘은 영적 차원에서의 힘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었고 듣는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으며 능력있는 은헤의 역사가 나타났다. 그들은 일순간이라도 이 모든 힘이 그들에게서 나온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힘에 대한 그들의 설명은 즉시 믿을 수 없을만큼 단순하고 대담한 것이었다. 그 힘은 그들 속에 계신 그리스도였다. 그것은 그때에도 쓰여지고 있던 새로운 복음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에 있어서 새롭고 놀라운 국면이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그들은 어떠한 것도 그들을 좌절시킬 수 없으며 그들의 모험을 패배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의 기치를 높이 들고 하나님의 힘으로 전진하여 진리의 복음 빛이 온세상에 비치게 하리 슬픔과 죄와 더불어 싸워 그 사로잡힌 자를 자유케 하여 큰 물이 바다를 덮듯이 가득하게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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