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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비키·랜들 페더슨, 청교도를 만나다

Joyfule 2014. 7. 8. 06:28

 

 

 

조엘 비키·랜들 페더슨,
청교도를 만나다(청교도인물&명저 백과사전), 부흥과 개혁사


서문에서


청교도들은 빛 가운데 불타오르는 빛의 사람들이었다. 검은 성 바돌로뮤의 날의 조치 때문에 쫓겨나 대로와 울타리와 헛간과 들에서조차 설교할 권리를 박탈당했을 때, 청교도들은 여전히 말씀의 권위를 가진 사람들로서 특별한 방식으로 글을 쓰고 설교했다. 지금은 그들 모두가 이 세상에 없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글을 통해 말하고 있다. 이 시간에도 특별한 기름부으심이 그들을 따라다니고 있다. 우리는 청교도들과는 반대되는 현대의 경향과 그 작품들이 화려하고 번지르르한 기교 혹은 책략과는 무관하게 스스로 약해져서 소멸될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런 경향들은 성경의 규준에 가장 근접하기 위해 그 이해력을 말씀에 열어 놓고 분별하기 위해 애쓴 청교도들을 결국 두 손 들고 높이며, 그렇게 상반되게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청교도와 그 작품들은 살아남아 번성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 조지 휫필드, <전집>, 4:306-307

 

조지 휫필드가 예측한대로 “훌륭한 옛 청교도 문헌들”에 대한 요청은 19세기까지 세대를 이어 강한 경향으로 지속되었다. 청교도들에 대한 이런 관심은 그들의 작품들의 표준적인 편집판을 내놓은 알렉산더 그로사트와 여러 인물들의 노력에서 정점에 달했다.

 

그러나 19세기의 마지막 즈음에 전혀 다른 사상적 흐름이 대서양의 양편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청교도들의 칼빈주의는 기독교 사상에 있어 낡은 체계로 여겨졌으며, 청교도주의의 심장이자 핵인 성경에 최고의 권위를 두는 시각은 전혀 다른 관점으로 바뀌었다. 이런 상이한 관점들은 사실상 전적인 불신앙이고 배교인 자신들의 정체를 위장한 채, 기독교가 보다 학문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고 외쳤다.

 

“훌륭한 옛 청교도의 작품들”에 대한 요청은 잦아들어 갔고, 북미와 영국의 출판사에서 청교도 작품들에 대한 출판은 멈추었다. 청교도 작품들이 쓰레기통에 버려지거나 폐기물 수집을 위해 팔리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청교도 작품들은 그 영향력이 쇠퇴하여 읽히지 않아 도서관 서재에 꽂혀져 방치되었고, 중고 서점과 진열대에서 헐값으로도 팔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때에 하나님의 손길로, 런던에서 로이드 존스 박사의 사역이 청교도 작품들에 대한 필요를 재생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수시로 자신의 설교에서 청교도 작품들을 언급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 내용의 출처를 궁금해 하도록 했다. 로이드 존스는 그들을 에반젤리컬 도서관(런던 소재)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청교도 작품의 재인쇄본이 발간될 때까지 1950년부터 콘퍼런스를 열어 이를 수년 간 주재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청교도 작품들을 더욱 많이 접할 수 있는 나날을 열망하게 되었다.

 

1950년대 후반에 진리의 깃발사가 선두에 서서 청교도 작품의 새로운 재인쇄본을 내놓으며 상황은 극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이에 “훌륭한 옛 청교도의 작품들”의 새로운 판본에 대한 요구는 늘어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청교도 문헌의 발간은 확대되기 시작해서 이들의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거의 누구나 이미 재출판본을 사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 안내서는 1956년 이래 재인쇄되고 출판되었던 청교도 저자들의 생애에 대한 간략한 기술과 그 작품들을 소개한다.

 

청교도주의의 정의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 용어를 열광주의에 가까우면서 동시에 우울하고 율법적인 기독교의 상표로 이름 붙여 오용하고 있다. 이런 전형적인 사용의 많은 부분이 19세기에 존재하던 반 청교도적 정서의 산물이다. 청교도라는 용어는 1560년대의 영국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처음 유래되었다. 이들은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 아래에서의 개혁이 불완전하다고 판단하고 더 심화된 ‘정화’를 요구한 사람들이었다. 이 용어에 대한 부정적 어감의 기원은 그 단어의 유래가 중세의 이단적 사상인 카타리파를 연상시키는 명칭인 라틴어 카타루스 혹은 카타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종종 “청교도주의 아버지 혹은 원조”라고 불리는 윌리엄 파킨스에게 있어서 청교도는 완전주의적 성향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잘못된 ‘사악한 용어’였다.

 

레너드 트린테루드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16세기 내내 이 용어는 내용을 담은 명사라기보다는 경멸적 형용사로 훨씬 많이 사용되었으며, 어떤 방면으로 그 용어가 적용되어 쓰이든 모욕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청교도들의 다섯 가지 주요 관심사

 

1 청교도주의는 성경을 탐구해서 그 내용을 삶의 전 영역에 적용하는 데 핵심이 있다.

그들은 신앙고백적이고 신학적인 삶을 살기를 원했으며 기독교적 학문 연구의 노력과 헌신에 크게 힘을 기울였다.

 

2 청교도들은 신학을 삼위일체적 특징에 그 주안점을 두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 그리고 죄인의 삶에 역사하는 성령의 적용적 사역을 선포하는 데 일관된 노력을 쏟았다. 그리스도인의 체험과 관련된 청교도들의 깊은 관심과 매혹은 결코 체험 자체에 관심을 지나치게 두는 것이 아니라 청교도들 자신이 주님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온전히 돌릴 수 있도록 자신 들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흔적을 발견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3 종교개혁자들과 공통적으로 청교도들은 교회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믿었다.

교회의 예배가 성경적 믿음을 신실하게 구현한 것인 동시에 세심한 작업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아울러 간명하고 진지한 설교와 예전적 개혁과 영적인 사랑과 유대감에 중점을 둔 운동이었다.

 

4 국가를 향한 의무와 힘, 왕의 권리와 의회, 시민과 신하 정부의 관계 등의 지침을 얻기 위해 성경에서 그 답을 구하였다.

 

5 청교도들은 각 사람의 총체적 회심에 주요 관심을 두었다.

그리스도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라고 말씀하신 것을 믿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복음을 설교하는 데 탁월했으며, 양심을 탐구하고, 죄인을 일깨우며, 그로 하여금 회개와 믿음에 이르도록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해 애썼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영적 측면의 내적 생활을 함에 있어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며, 이생에 있어서 가정 생활과 교회, 일터와 사회 등, 관계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를 찾아내 세심하게 기술했다.

 

제임스 페커는 청교도주의를 이렇게 요약했다. “청교도주의는 국가적 및 개인적인 영적 갱신에 대한 비전의 실행을 추구하는 복음적인 성화 운동이었는데, 이 운동은 교회와 국가, 가정의 범주, 교육 복음 전도, 경제적 영역, 개인의 제자됨, 헌신, 목회적 돌봄과 역량이 모두 포함된다.”

 

피터 루이스는 청교도주의가 다음의 세 가지 필요성에 의해 성장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1) 성경적 설교와 정통적 개혁주의 교리의 가르침에 대한 필요성

2) 믿음과 신자의 삶에 있어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는 성경적이고 개인적인 경건의 필요성

3) 그분의 말씀에 기술된 삼위일체로서의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도록

예전과 의상 및 교회 정치 체제를 성경적 단순성에 맞게 회복시켜야 할 필요성.

 

이러한 필요성들이 바탕이 되어 교리적 측면에서 청교도주의는 강력한 칼빈주의를 표방했다. 경험적 측면에서는 따뜻하고 커다란 교화력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복음적 측면에서는 힘을 가졌지만 여전히 부드러웠고 교회론적 측면에서는 하나님 중심적이며 예배를 최우선시했다. 정치적으로는 왕과 의회와 국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성경적이고 균형 잡힌 양심에 구속되는 삶의 태도를 표방했다.

  

청교도들의 작품을 읽음을 통해 어떤 유익을 얻을 것인가

 

청교도의 작품들은 성령의 복주심과 더불어 기독교인의 삶의 풍성함으로 여러분을 인도할 것이다. 아울러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와 평안을 제공하고 그분을 닮는 길로 인도하며, 구원의 충만한 확신을 가져다 줄 것이다. 청교도 문헌의 여섯 가지 특징을 기술한다.

 

1 청교도들은 성경으로 삶을 형성했다.

그들은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으로 살며 호흡하면서 말씀에 수반되는 성령의 능력을 향유했다. 그들은 성경 66권을 은혜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진 성령의 서제로 생각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청교도들에게 아버지로서 말씀하시고, 그들이 영원토록 신뢰할 수 있는 진리를 주시는 보고(寶庫)로 성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성경을 자신들의 마음과 지성을 새롭게 하며 삶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권능의 숨결이 담겨 있는 존재로 이해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고 들으며 노래하면서 다른 모든 사람도 그렇게 살도록 격려했다. 청교도 리처드 그린햄은 성경을 읽는 여덟 가지 방법으로 부지런함, 지혜, 준비, 숙고, 협의와 나눔, 믿음, 실천 그리고 기도를 제시했다. 토머스 왓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방법에 대한 지침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말했다. “거룩한 소욕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지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가갈 것, 주의를 기울이며 말씀 아래 앉을 것, 온유함으로 말씀을 받을 것, 믿음과 말씀을 화합시킬 것, 말씀을 담은 채로 그것을 놓고 기도할 것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말씀에 대해 전할 것”.

 

청교도들은 신자들이 자신의 믿음과 실천에 있어 말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리처드 백스터의 <그리스도인의 지침>은 청교도들이 어떻게 성경을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 신뢰할 만한 안내서로 삼았는지를 보여 준다. 헨리 스미스는 말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엄수해야 할 규칙처럼 놓아 두고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오직 신뢰함으로 받아들이고, 성경이 규정하는 것만을 사랑해야 하며, 성경이 금지하는 것만을 미워하고 성경이 명하는 것만을 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청교도들의 글을 규칙적으로 읽는다면, 그들의 성경을 향한 관심과 집중에 곧 영향을 받아 동일한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청교도들의 성경 주석이 결코 주해에 있어서 최종적인 것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은 성경에 메시지에 어떻게 전심으로 충실함을 다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그들처럼 당신도 다음과 같은 존 플라벨의 말에 동의하며 살아 있는 책의 신자가 될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삶에 있어서 최선의 방식과 고난을 대처하는 가장 고상한 길과 죽음을 맞는 가장 평안한 방법을 가르쳐 준다.”

 

2 청교도들은 교리와 실천을 완벽히 결합시켰다.

그들은 지성에 대해 설명하고, 양심의 소리에 직면하도록 이끌며, 마음에 호소함을 통해 이런 일을 해냈다.

 

* 지성에 대해 설명함. 청교도들은 지성과 마음을 서로 상충하는 것으로 여기는 구조를 거부하고, 지식은 성령이 중생의 씨앗을 심는 토양이라고 가르쳤다. 그들은 지성을 신앙이 머무는 전당으로 이해했다. 존 프레스턴은 말했다. “회심에 있어서 이성은 고양되기 마련이다.” 코튼 매더도 말했다. “무지함은 경건의 어머니가 아니라 이단의 어머니일 뿐이다.”

청교도들은 지성이 없는 기독교는 뼈가 없는 연체동물과 같다고 생각했다. 반지성적인 복음은 빠른 속도로 “필요성을 느끼는 것”을 채우는 것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는 텅 빈 혹은 형태 없는 복음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안타깝고도 비극적인 사실은 지성에 대해 신자와 불신자간에 차이가 없다면 그들의 삶에 있어서도 거의 차이가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청교도 문헌은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훌륭한 해결책이다.

 

* 양심의 소리에 직면함. 청교도들은 구체적인 죄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는 것, 즉 죄에 대한 각성을 일으키는 질문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탁월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 막대기를 들고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죄인이 숨어 있는 덤불을 치고 헤쳐 나아가 그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고 서도록 해야 한다.”

 

경건 서적을 읽는 것은 이런 죄에 대한 직면을 이끌어 내는 것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위로와 평안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양심에 찔림을 받아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지 아니하면 영적인 성장을 거의 경험하지 못한다. 우리는 아담과 같이 수풀 속에 숨으려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불려 나아가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기”(히4:13) 위해서는 매일 도움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도 청교도들만큼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없다.

 

* 마음의 문제를 다룸. 오늘날 우리에게 청교도들이 그렇게 해주는 것만큼 견고한 성경적 본질과 지성의 양식을 공급하며 정서적 따뜻함으로 마음을 감동시키는 책을 찾는 것은 거의 어렵다. 청교도들은 지성으로 논증을 전개해 나아갔고, 양심의 소리에 직면토록 해주었으며, 마음의 작용에 호소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사랑, 그리고 독자들의 영혼에 대한 사랑에 기초해서 글을 썼다. 아울러 이들은 그리스도를 그분의 사랑스러움 안에서 설명했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더 잘 알게 되기를 열망하며 전적으로 그분을 위한 삶을 살도록 결심하고 나아가도록 이끌었다.

 

3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에 집중적 관심을 두었다.

토마스 에담스, “그리스도는 성경 전체에서 예언되고 예표되었으며 예시되고 보여졌으며 입증된 요점이자 모든 것이다. 성경의 거의 모든 장과 절은 어린 예수의 강보와 같은 것이다.” 아이작 암브로스, “그리스도를 성경 전체의 본질이자 정수이며 영혼인 동시에 목적으로 여기라,”

 

청교도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했고 그분의 아름다움에 대해 많은 글을 남겼다. 새뮤얼 러더퍼드, “낙원의 수많은 나라들과 에덴동산의 아름다움을 모아 그분에게 돌리라. 모든 나무와 꽃들과 향기와 색깔과 풍미와 기쁨과 사랑스러움과 달콤함을 하나로 모으라. 오, 그러할지라도 그것들이 과연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 것이겠는가? 그것들은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가장 사랑받으실 그리스도에 비하면 바다 전체와 강과 호수들 그리고 샘에 내리는 비 한 방울에 불과한 것이다.” 토마스 굿윈, “만일 그리스도가 없다면 천국은 내게 지옥일 것이다.”

 

그리스도를 더욱 잘 알고 그분을 더욱 충만히 사랑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청교도 문헌을 읽는 일에 당신 자신을 깊이 몰입시키도록 하라. 그리고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신 길을 따라 그 일들이 당신의 성화에 기여하도록 성령님께 구하라.

 

4 청교도들은 시련과 시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우리는 청교도들로부터 하나님께서 우리가 스스로 겸손해지도록 만들기 위해(신8:2), 죄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습1:12)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아오도록 이끌기 위해(호5:15) 시련을 허락하신다고 배웠다. 로버트 레이튼, “환란과 고통은 천국이 그 보석을 닦아서 빛나도록 다듬기 위한 다이아몬드 가루다.” 청교도들은 우리를 하나님의 의와 거룩의 참여자가 되도록 이끌기 위해 그분의 시련의 막대기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을 어떻게 더욱 온전하게 새기는 수단이 되는지를 보여준다(히12:10-11).

 

만일 당신이 현재 시련을 겪고 있다면, 윌리엄 브리지의 <침체된 자를 위한 격려>와 토머스 브룩스의 <고통 속에서도 잠잠히 있는 그리스도인> 및 리처드 십스의 <꺼져가는 심지와 상한 갈대의 회복>을 읽도록 하라. 이 작품들은 각 시련들이 어떻게 당신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믿음으로 걷게 하며 이 세상에서 초연할 수 있도록 하는지를 보여 준다. 제러마이어 버로스의 <그리스도인의 자족의 커다란 가치>는 시련을 통해서 자족함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5 청교도들은 두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리처드 백스터의 <성도의 영원한 안식>(김기찬역,크리스찬다이제스트,1996)은 천국을 향한 소망이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통제하며 에너지를 불어넣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상당한 분량(영어로 800쪽이 넘는)에도 불구하고 이 고전은 청교도들의 가정에서 온 가족의 필독서가 되었다. 한편 우화적인 기법으로 동일한 진리를 담고 있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인기 면에서 유일하게 백스터의 책을 앞질렀다.

 

청교도들은 우리가 이 땅에서의 순례의 길에서 시종일관 “우리의 눈 속에” 천국을 지녀야만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 대한 동시적 관점, 즉 신약 성경이 말하는 ‘지금(이미)/아직’의 동력적 구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이 땅에서 우리의 지성이 삶을 안내하고 형성하기 이전에 먼저 천국을 향한 “영광의 소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영원을 향한 빛 가운데 사는 삶은 철저한 자기부인을 요청한다. 청교도들은 이런 천국의 기쁨을 아는 것이 결국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이 땅에서 사는 가운데 견뎌야 할 어떠한 손실과 십자가를 지는 일이라도 훗날 보상받을 근거가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또한 청교도들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데 있어 첫 단계라고 가르쳤다.

 

6 청교도들은 참된 영성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들은 성경의 권위, 성경적 복음 전도, 교회의 개혁, 율법의 영적인 면, 내재하는 죄에 대한 영적 투쟁, 하나님을 향한 자녀로서의 경외, 묵상의 기술 그리고 지옥의 무서움과 천국의 영광에 대해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므로 경건을 목적으로 청교도 문헌을 읽고 그들의 영성을 따르며 배울 수 있도록 기도하라.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해 보자. 우리는 과연 청교도들처럼 삼위 하나님을 영화로이 높이기를 갈망하는가? 우리는 과연 성경적 진리와 그 안에 담긴 뜨거운 불길에 의해 범사에 동기부여를 받고 있는가? 우리도 회심의 필수성과 그리스도의 의에 의해 옷 입는 것에 대한 청교도들의 견해를 온전히 지니고 있는가? 청교도들이 그리스도를 따랐던 것처럼 우리도 그들의 길을 따르고 있는가?

 

이 책의 기원은 1980년대에 진리의 깃발사의 “청교도 작품을 만나 보라!”라는 제목의 연재 논문에서 시작되었다. 이 논문들은 1950년부터 1985년까지 재인쇄된 청교도 문헌을 다루었다. 그로부터 10년후 “청교도 문헌 속에 담긴 최고의 내용을 읽는 것”(현대문헌목록)에 1986년부터 1996년까지 재인쇄된 청교도 문헌들을 설명한 내용이 실렸다. 그리고 지금의 이 책은 이 자료들을 확대시켜서 1956년부터 2005년까지의 반세기에 이르는 시간 동안 재인쇄되고 출판된 청교도 작품들을 모두 다룬다. 이를 모두 합하면 75개의 출판사에서 낸 7백권에 이르는 작품과 150여명의 청교도들의 전기를 포함하게 된다.

 

그리고, 청교도들의 수천 권의 작품이 1950년대 이후 재인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책에 소개되지 못했다는 점이 주목되어야 한다.

 

청교도개혁신학교(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학생들은 이 책을 만드는 오랜 기간의 수고를 견디게 해 줄 주요한 자극을 준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청교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신학생들도 이들의 세대를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경건하고 능력있는 목회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마지막으로 오직 은혜에 의해 이 청교도적 지성과 마음을 가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와 네델란드의 선조들을 통해 풍성하게 우리에게 양식을 공급하신 우리 하나님과 구주께 감사를 드린다. 여러분이 청교도들의 삶과 그들의 책을 숙독해 나아감에 따라, 다음과 같은 제임스 패커의 평가에 동의하게 될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이상과 비전이 약해지고 실패하며 참 가치가 부패해 버린 때에, 청교도들은 우리로 하여금 두 요소에 대해 철저한 헌신과 행동을 쏟아내게 한 소망의 등대이자 횃불같은 존재들이었다.”

 

J. C. 라일의 서문 중에서,

 

청교도들은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절대 다수는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의 졸업생들이었다. 청교도들의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지식과 설교자이자 주석가로, 작가와 비평가로서의 능력은 당대 최고였다. 청교도들의 작품은 잘 구비된 모든 신학 도서관의 서가에서 여전히 말씀을 전하고 있다. 그들의 주석과 강해와 실천적, 결의론적 그리고 경험적 신학에 대한 논문들을 17세기 당시 논적들의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하고 뛰어나다.

 

하나의 조직체인 청교도들은 역사상 존재했던 어느 계층의 영국인들보다도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전 국가적인 특징을 고양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그들은 시민적 자유를 사랑했고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면 죽음을 불사했다. 의회에서는 강하고 단호했으며 투쟁과 갈등의 장 속에서도 그러했다. 청교도들은 영국 내에서도 연합된 불굴의 공동체였으며 유럽 전역이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그토록 경외하되 사람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아울러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조국으로부터 받아야만 할 영예를 결코 받아 누렸던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영국 청교도의 간략한 역사 중에서

 

거의 2천 명의 목사들(전체 목사 가운데 1/5)이 1662년, 8월 24일, 성 바돌로뮤의 날에 <통일령>의 요구에 대한 수용을 거부하고 주교 제도 아래서 받게된 자신의 교구를 거절했다. 1664년에는 비국고도들이 집 밖에서 설교하거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금지하는 <비밀집회 금지령>이 시행되었고, 1665년에는 <5마일 퇴거령>을 시행하여 거절한 목사들이 과거의 교구나 어느 도시 또는 지역의 5마일 이내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시켰다.

 

비록 청교도들이 강단이나 대학에서 설교하는 것은 금지당했다고 해도, 억압 정책이 청교도들의 펜을 침묵시킬 수는 없었다. 1662년 이후로 박해의 그늘 아래에서도 청교도들은 참으로 주옥같은 경건서와 신학 책을 출판했다. 슬프게도 대다수 청교도 지도자들이 1689년 <관용령>이 시행되기 전, 윌리엄 왕과 메리 여왕 통치 아래에서 박해 때문에 죽었다. 존 번연, 토머스 굿윈, 존 오웬 등을 비롯한 수많은 청교도가 죽은 뒤에도 교회 경내의 뜰에 장사되지 못하고, 런던의 번힐 필드에 있는 비국교도 특별 묘지에 장사되었다. 1600년대 말엽, 영국 교회를 개혁하려는 수많은 청교도들의 열정에 굴복하여 영국 정부는 국교를 반대하는 비국교도 교파들의 존재를 합법적으로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