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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신앙(청교도들은 누구이며 무엇이며 청교도 신앙은 어떠한 것인가?)

Joyfule 2014. 7. 6. 04:20

 

 

 

 

청교도 신앙(청교도들은 누구이며 무엇이며 청교도 신앙은 어떠한 것인가?)

 


청교도들의 소명관은 사람에게 임무를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의식의 구현으로서의 일, 자기 직무에 만족함, 그리고 자기 천직에 충실을 기함 등 여러 개념과 종횡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존 코튼의 권면에 훌륭하게 녹아 들어 있다.

"그대의 소명으로 하나님을 섬기라. 당당하고 충성되게, 또한 천국 시민의 심정으로 그것을 행하라."


청교도 이론에 의하면, 노동의 보상은 영적이고 도덕적인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회에 유익을 주는 일이었다. 리처드 스틸은 이 점을 적절하게 지적했다. "당신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있다. 틀림없이 그분은 당신 마음이 흡족하도록 상을 내리실 분이다." 그리고 그 상급이 도덕적이고 영적이라는 점은 청교도들의 언급을 통해서 깨끗하게 드러난다.

윌리엄 퍼킨즈는 이렇게 주장했다.
"삶의 근본적인 목적은...... 사명으로 받은 일을 통해 사람들에게 봉사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르심을 좇아 노동해서는 안 되는가?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삶의 한계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삶의 진정한 목적은 사람에게 봉사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에 있다."


청교도들은 노동의 목적을 영적이고 도덕적인 데 둠과 아울러 다음과 같은 목표들이 직업 선택을 좌우하는 요인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적 귀결을 내렸다.


리처드 백스터의 말이다.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길 수 있는 직업 또는 사명을 택하라.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거나 영예를 얻을 수 있는 직업이나 사명을 선택하지 말라. 가장 많이 선을 행할 수 있고 가장 덜 죄 짓는 쪽을 택하라."
청교도 윤리에서 일의 가치는 거의 전적으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동기에 달려 있었다. 그들의 노동관과 관련하여 청교도들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중용을 이루는 일이다. 그들은 이론적으로 일면 게으름 또는 태만함, 그리고 다른 일면으로 일에 대한 과욕 사이에서 중도를 취하려고 애썼다.


청교도들이 게으름을 비난한 태도는 근면한 노동을 높이 평가하는 태도와 맞물려 있다. 그러나 그것은 노동이 본래 고귀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수단이기 때문에 그랬다.
청교도들이 게으름에 대해 나타낸 극도의 불쾌감과 노동에 대한 칭송의 일부는, 노동이 창조 제도이기 때문에 인간의 행복에 필수적이라는 믿음에서 나왔다.
노동을 소명으로뿐 아니라 창조 질서로 본 청교도들은 일이 하나님에 대한 응답이며 또한 그 자체로 고귀한 것이라고 인식했다.
청교도의 신앙은 성스러움의 가장 두드러진 율법과 은총의 놀라운 결합이었다. 삶의 모든 분야가 하나님의 영향과 그의 말씀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매일매일의 생활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서두르지 않는 삶이었다.


청교도들은 유우머의 감각을 지니고 있었고, 또한 하나님께 대한 영적 헌신의 깊은 지각을 소유한 다채로운 사람들이었다.
청교도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께 먼저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이고 또한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란 가장 좋은 남편과 아내, 부모, 자녀, 주인 그리고 종이 되어야 하며 그 결과 하나님께 대한 교리가 모욕을 당하지 않고 영화롭게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교리가 자기들의 신앙을 고양시켰다면 죄악은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죄에 대한 경향성은 물론이고 총괄적으로 타락한 인간성의 악에 대한 가능성을 알고 질병 중의 질병이며 모든 사람의 병의 근원인 죄를 밝혀 내는데 그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청교도들의 헌신적인 생활은 기독교 신앙의 표본이 된다. 청교도들은 교리의 순수성에 대하여 엄격한 입장을 취하였으며 청교도 성직자들은 그들의 양떼들을 다정하게 푸른 목장으로 이끌어 주었다.
청교도 목사인 리챠드 그린햄과 그의 사위 존 다드 목사는 “복음은 무지한 영혼들에게도 그들 자신들의 어휘와 표현으로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의 말씀이다”라고 하였다. 청교도들은 하나님과 진리를 사랑하였다. 청교도들은 결코 바리새인들이 아니었다. 청교도들은 영적 신앙에 신실하였는데 그것은 그들이 성경적 교리를 실행한 결과였다.


청교도들의 헌신적인 생활에 대한 열쇠는 훈련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어떤 운명(運命)에 내어맡기는 생활이 아니라 철저히 훈련된 신앙생활이어야만 한다. 청교도들의 마음 중심에는 절대적으로 권위있는 성경말씀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청교도들의 생활을 지배하시고 훈련시키셨다.


청교도 토마스 크랜머는 “성경책은 가장 값비싼 진주요, 지구상에 남아있는 가장 거룩한 유물이다.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청교도들의 관심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강조점을 포함하였다. 도덕적 율법은 훈련된 성도들에게서 그 권위를 발휘하며 또한 그것은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은총과 자비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따라서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인이란 도덕적 율법을 지킬 아무 의무도 없다고 주장하는 도덕폐기론을 강력히 반대하였다.
청교도들은 율법의 실제적 적용을 강조하였다. 즉 죄를 견제하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며 성도들의 행위를 이끌어 주었다. 이점에서 청교도들은 칼빈의 가르침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칼빈은 “율법은 죄인이 그의 커다란 실패와 궁핍함을 깨닫도록 하며 또한 성도들이 거룩함과 정직함을 얻기 위해 싸워나가는 것을 격려하기 위해서 설교되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청교도들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될 수 있으면 그들은 바로 세상적으로 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가능한한 경건되게 살려고 하였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청교도들은 성경을 볼 수 있는 평신도들의 권리를 중요시했다. 청교도들은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 말씀이라고 믿었기에 오직 성경만을 최종적인 권위로 삼았다. 토마스 왓슨은 "당신이 읽고 있는 성경 한 줄 한 줄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존 오웬은 "성경의 권위는...... 그 신적 기원에 있다...... 성경은 성경을 쓰신 분 때문에 권위를 갖는다"고 말했다. 존 오웬은 성경이 "하나님의 뜻과 심정을 한치 오차도 없이, 또 아무런 오류도 없이 보여 주는 계시"라고 말했다.


청교도들은 성경의 권위를 말할 때 그것을 구원에 관련된 문제로 제한하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개방해 두었다. 리챠드 십스는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어떤 규준도 얻을 수 없다. 단지 성경이 제공하는 일반적인 규준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규준은 모범에 의해서 보강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천적인 지식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말해서 청교도들이 성경 권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는 그들이 성경을 어떻게 적용했는가를 보면 된다. 그들은 경제, 정부, 가정, 교회, 인생, 성, 자연, 교육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모든 문제에 성경 본문과 성경의 모범을 끌어댔다. 청교도들은 제한된 무오설을 수용했는가 아니면 전적인 무오설을 수용했는가? 그들의 이론뿐 아니라 그들의 구체적인 삶을 볼 때 그들이 성경을 삶 전체를 위한 규준으로 삼았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