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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신앙(청교도들은 누구이며 무엇이며 청교도 신앙은 어떠한 것인가?)

Joyfule 2014. 7. 7. 04:49

 

 

 

 

청교도 신앙(청교도들은 누구이며 무엇이며 청교도 신앙은 어떠한 것인가?)


청교도들에게 성경은 교훈과 신학을 가르치는 책이었지만, 반드시 그 정도에 머무는 책은 아니었다. 성경은 효험 있는 책이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을 감동시키고 감화하는 비범한 효능을 가진 책이었다.
청교도들이 성경을 대한 기본 자세는 성경이 항구적으로 적합하고 모든 세대에 대해서 새로운 책이라고 믿는 자세였다.

 

윌리엄 에임즈는 이렇게 쓴다.
“성경의 여러 부분이 특별한 사건을 다루고, 특별한 사람들을 겨냥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그것들이 마치 직접적으로 그들을 대상으로 쓴 것이기나 한 듯, 오는 모든 세대의 신실한 백성들에게 똑같은 교훈이 되게 하시려 하는데 있다.”
암브로스는 성경의 내용이 “다른 사람들과 나 자신의 삶에서 매일 입증되고 있다”라고 말했고, 토머스 구지는 성경의 명령과 경고에 관해 언급하면서 “그 명령과 경고를 마치 하나님께서 그대 이름을 부르면서 내리시는 것처럼 받으라”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성경 역사에 투영시켜서 읽었다.


성경이 그들의 상황을 향해 말씀한다고 확신한 청교도들은 매일 성경을 읽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존 프레스톤은 “풍성한 은혜 가운데 거하려면……성경을 연구하고 착념하며, 주야로 묵상하라”고 권면하는데, 이 권면은 모든 청교도들을 향한 것이다. 리처드 그린햄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읽고 들으며 그것에 관해 토의하라”고 충고했다.


청교도들은 성경 읽기가 마술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았다. 성경을 읽는다고 해서 어떤 결과가 자동적으로 생기지는 않는다. 이것은 대지가 비를 빨아들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모든 것은 각 개인이 그 말씀에 얼마나 착심하고 반응하느냐에 달렸다. 청교도들은 성경 읽기를 마치 도약판 같은 것으로 보았다. 도약이 있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의 내용을 의지적으로 인정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존 번연은 “사람의 심령과 성경이……서로를 포옹해야 한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달콤한 의존과 동의가 일어나야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지적 동의는 청교도들의 목표가 아니었다.


청교도들이 성경을 행위의 근본으로 보게 된 원인은 성경이 개인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 까닭이다. 로버트 해리스는 “성경을 세심하게 읽어야 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듣고 우리 마음에 정성을 다해 간직해야 한다. 또한 그것을 적용하려고 할 때에는 우리 양심의 저 깊은 곳에까지 적용해야 한다. 그러면 성경은 우리의 마음을 능히 고친다”라고 말했다. 코넬리우스 버지스는 이렇게 썼다.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성경에서 놀라운 보호와 구원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 일어난 일을 보고 그저 놀라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사를 읽으면서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 같은 보호와 구원을 지금도 베푸신다는 사실이다.”
인크리스 매더는 성경이 “마음에 감추어 둔 은밀한 생각까지도 추적한다”라고 썼고, 헨리 루킨은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성경에 나오는 명령이나 금령(禁令)을 읽을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마치 하나님께서 그 명령들을 우리에게 내리셨고, 우리를 향해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며 하늘에서 각별한 메시지를 주신 것인 양 적용해야 한다.”

청교도들은 성경을 정적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동적으로 대했기 때문에, 성경의 능력을 철두 철미 신봉했다. 에드워드 레이놀즈는 “바위와 같이 굳고 완악한 사람이라도, 말씀은 그것을 깨부술 수 있는 망치이다. 사람이 아무리 찌르는 가시와 찔레 같더라도, 말씀은 그것을 단숨에 삼켜버릴 수 있는 불이다”라고 말했다. 조지 길레스피는 성경이 가지고 있는 “양심에 도전하는 불가항력적인 힘”에 대해 말했고, 니콜라스 우달은 성경을 “하나님 말씀의 소멸하는 불”이라 불렀다. 굿윈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 능력이 과시되는 광경을 목도하고 경험했다. 이 능력으로 말하자면 마치 불과 같고 구름 속에서 번쩍이는 번개와 같이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성경의 능력이다. 이 능력은 마음과 영혼을 새롭게 하고 민첩하게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켜 세우는 능력이다.”


마틴 루터가 법정에 서서 “말씀이 나를 에워싸고 있다”고 했는데, 영국인들에도 그와 비슷한 신앙 위인이 있었다. 그는 1555년에 재판정에 선 존 로저스이다. 이단 심문소에서 열린 로저스의 재판에서 메리 여왕의 재상(宰相)이기도 했던 스티븐 가디너 주교는 “천만에. 그대는 성경으로 아무것도 입증할 수 없다. 성경은 침묵하는 책이다. 다만 살아 있는 주해가를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저스는 여기에 대해 “아니올시다. 성경은 엄연히 살아 역사합니다”하고 담대히 대답했다. 그리고 이 대답은 2세기 동안 청교도들의 불문율과 같은 구호가 되었다.


청교도들은 성경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함으로써 누구나 성경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그들은 성경을 삶의 모든 영역에 빛과 지침을 주는 소중한 책으로 여겼다. 게다가 그들에게 성경은 살아 있는 책이요 사람의 행동과 운명에 독특하고도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책이었다.
한편 청교도들은 지금도 유효한 성경 해석의 원리를 유산으로 남겼다. 풍유적 해석을 거부하고 일상적인 의미를 강조한 점, 진리를 구하는 모든 진실한 구도자들에게 주시는 성령님의 조명을 믿고 의지한 점, 본문의 문맥에 유의한 점, 성경의 통일성을 믿은 점, 율법과 복음을 성경의 양대 주제로 인식하고 부각한 점, 그리고 성경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인 국면에 민감하게 반응한 점 등이 그들이 남긴 유산이다.


청교도들에게 성경은 무엇인가? 제네바 성경 서문에 나오는 글이 적절한 답변이 되리라 믿는다. “성경은 우리가 갈 길을 비추는 빛이요 하늘 나라로 들어가는 열쇠이고 환난 당할 때 위로이며, 사탄을 대적하는 방패요 검이고 모든 지혜의 보고요 하나님의 얼굴이 비치는 거울이며, 그분의 은혜를 웅변하는 간증이고 우리 영혼을 살찌우는 유일한 양식이요 영양이다.”
청교도들은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의 사람이 되어 야 함을 역설했다. 토마스 구드윈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씀을 기록하신 분은 바로 성령이였다. … 그러므로 … 이 하늘의 공적 비 서의 도우심이 없다면 인간의 또는 인간들 자신의 이해력으로는 성경을 이해 할 수 없다. … 그 분이 홀로 그 밭에 지식의 보화들을 숨기셨으므로 그분만 이 그 보화들이 어디 있는지를 아신다. 그러므로 기도로 하나님의 가슴을 열 고 하나님의 연구실을 열어 하나님의 모든 원고들과 문서들로 나아갈 수 있는 지식의 열쇠를 얻는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유익인가!
보다 덜 아기자기하지만 보다 더 명확하게 존 오웬은 같은 주장을 한다. "나는 …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일반 원리로 확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성령의 신령한 도우심을 얻기 위한 계속적이며 열렬한 기도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생각에 대한 지식을 얻음에 있어 절대 필요 불가결한 수단이다.
이 지식이 없이는 다른 모든 것들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려고 하는 사람은 경건하고 겸손하고 기도하고 가르침을 잘 받고 순종하는 심령의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그의 정신이 관념들로 빈틈없이 채워졌을지라도 그는 영적 실재들의 깨달음에 절대로 이르지 못할 것이다.
청교도들은 해석하고자 하는 구절이나 본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의 질문을 하였다.

1. 이 말씀은 실제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2. 다른 성경은 이 본문의 설명 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3. 이 본문은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과 관련해 서 인간에 대해 어떤 진리들을 가르치는가?

4. 이 진리들은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역사와 어떻게 관련되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진리들의 설명에 어떤 도움을 주는가?

 

5. 이 진리들은 어떤 경험들을 묘사하거나 서술하거나, 또는 창조하거나 고치고자 하는가?

이 진리들은 어떤 실제적 목적을 위해 성경에 존재하는가?

6. 이 진리들은 우리의 실제적 상황에서 어떻게 나 자신과 타인들에게 적용되는가?

이 진리들은 현재의 어떤 인간의 상태에 대해 말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믿고 행하라고 말하고 있는가?


사무엘 러더포드는 “신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합리적인 사람이다. 믿음으로 만사를 행하는 이가 건전한 이성이 빛으로 만사를 행하는 이다”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영국 청교도 설교가 리처드 로저스가 에섹스 주 웨설스필드에서 강론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했다. “로저스 선생님, 저는 선생님과 선생님 주변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너무 빈틈이 없으십니다.” 그러자 로저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그러십니까, 전 한치도 빈틈이 없으신 하나님을 섬깁니다.”


코튼 매더의 일기에서는 이런 유의 글이 눈에 띤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자기를 낮춰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를 비하하고 혐오하는 사고를 해나가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부단히 자기를 미워함으로써, 또 그를 둘러싼 역겨운 환경에 대해 민감해짐으로써 하늘나라에 합당한 행동을 취한다.”
청교도들은 성경이 믿음과 행위의 최종적인 권위라고 했다. “청교도는 성경이 하나님께서 주신……믿음의……완벽하고 온전한 준칙(準則)으로 본다. 그들의 목표는 종교, 국가, 그리고 개인의 삶을 개혁하는 것이었다.

참고서적 : 박영호 지음, 청교도 신앙, 기독교문서선교회
리랜드 라이큰 지음, 청교도 이 세상의 성자들, 생명의말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