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부터 조나단 에드워드까지 2.
3. 알미니우스(Jakob Arminius)
야곱 알미니우스는 1560년대 네덜란드 오우데봐터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네바 대학에서 칼빈의 제자인 데오도르 베자 아래에서 수학하였다. 그가 암스텔담으로 돌아와 목회하는 기간 중 1589년 쿠른헤르트의 논박에 대하여 칼빈의 예정론을 변호하도록 부탁 받았다. 상대의 논거를 신중히 살펴보던 알미니우스는 자신도 쿠른헤르트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던 중 알미니우스는 라이덴 대학의 교수가 되고 끝없는 논쟁을 일으키게 된다. 알미니우스는 그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데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예정론에 관한 그의 입장을 1608 년에 출판된 <의견선언>에서 분명히 밝혔다. 그의 주장은
첫째,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한 중보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임명하기로 작정하셨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한 모든 자를 용납하시며 구원하기로 작정하시고 그리고 완고한 불신자를 거절하기로 작정하셨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회개하고 믿을 수 있는 길을 예비하기 위해, 회개하고 믿는 자를 위하여 필요한 수단을 제공하시기로 작정하셨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한 개인들의 구원을 작정하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저들이 끝까지 믿고 참을 것을 예견하셨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알미니우스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되어 있지만, 그 은혜란 그것에 대한 사람의 수락 여부에 따라 주어진다.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의 구원을 가능케 할 뿐이지, 결정적이게는 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은혜의 시간에 마음 문을 열어야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마음 문을 열지 않으면 은혜를 받지 못한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알미니우스는 어거스틴과 칼빈이 말한 하나님 의 ‘무조건적인 선택’을 거부한 것이다. 즉, 하나님은 인간에게 예견된 공로와 관계없이 구원을 위해 인간을 선택하셨다는 사상을 부정했다. 이에 비해 칼빈과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로 작정하시면 그것을 거절할 수 없다고 했다. 즉, 하나님의 은혜는 ‘불가항력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기로 작정 하시면 누구도 그 은혜를 받는 것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그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쾌히 그 길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아름다운 소녀를 보며 마음에 일어나는 사랑의 마음은 불가항력적인 것이고, 그 반응은 기쁜 마음이며 사랑스러운 마음이다. 칼빈과 어기스틴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분을 택한 것이고, 알미니우스는 하나님 이 은혜를 내릴 때 우리가 반응해야만 구원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곧 알미니우스주의와 칼빈주의의 경계령이다. 즉, 정통주의와 알미니우스의 경제령은 ‘불가항력적 은혜’이다. 알미니우스는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어냈다. 1610년에 46명의 알미니우스 목사들이 다섯가지의 ‘항론’이라는 신앙고백서를 제시했다. 그 요점은 다음과 같다.
4. 알미니안 5대 교리
1) 조건적 선택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 관해 믿고 ‘끝까지 견디는’ 모든 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기로 선택하셨다. 즉, 조건적 선택을 믿는다. 하나님은 개인의 신앙과 불신앙의 예지(누가 신앙을 가질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다는 것이다. 즉, 시작이 인간이다)에 근거해 선택과 유기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곧 하나님은 믿는 자를 선택하신다.
2) 보편적 속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십자가 상에 죽으심으로 만인을 위한 사죄를 획득하셨으나, 단지 믿는 자들만이 거기에 참여한다.
3) 인간의 무능력을 믿는다
타락한 인간의 자유의지는 진실로 선한 것은 어느 것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는 참으로 선한 그것을 행하기 위해서 하나님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시 새롭게 출생될 필요가 있다.
4) 항력적 은혜
우리는 하나님의 선행(先行)하시는, 깨우치시는, 계속되는, 우리와 협력하시는, 그분의 은혜가 없이는 어떤 선(善)도 행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은혜는 불가항력적인 것은 아니다. 즉, 그 은혜를 거부할 수 있다.
5) 은총으로부터의 타락 가능성을 믿는다
참된 신자는 은혜로 끝까지 견딜 수 있게 되며, 구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태나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상실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이 은혜란 불확실한 것이다.
'━━ 영성을 위한 ━━ > 신앙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안이상촌과 김용기 (0) | 2018.02.17 |
---|---|
종교개혁부터 조나단 에드워드까지3. (0) | 2018.02.16 |
종교개혁부터 조나단 에드워드까지 1. (0) | 2018.02.14 |
조지 셰어(Goerge Beverly Shea) (0) | 2018.02.13 |
중국 최초의 선교사,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 (0) | 2018.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