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부터 조나단 에드워드까지3.
5. 도르트회의(1618~ 1619)
알미니우스의 가르침으로 네덜란드는 내분에 휩싸이게 되고 전쟁의 위험까지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도르트에서 회의가 소집되었는데 이 회의는 한 국가만의 회의가 아니였다. 대표단이 영국, 독일, 개혁파 지역, 스위스, 제네바(당시 스위스에 속하지 않았었다)에서 참석하러 왔다. 이 회의에서 ‘항론’(알미니안의 주장)은 만장일치로 기각 당하였고, 모든 회원은 도르트 신경에 서명하였다. 도로트 회의의 신경을 바탕으로 칼빈주의 5대 강령이 만들어졌다. 이를 기억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TULIP라고 한다.
1) 전적부패 (T/ Total depravity)
사람이 더 이상 타락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부패했다는 의미가 아니고, 전적부패라는 표현은 사람의 모든 면이 타락으로 인해 영향 받았으며,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결코 하나님께로 향하게 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2) 무조건적 선택(U/ Unconditional election)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택한다. 이는 어거스틴적 칼빈주의 전통과 알미니우스주의와의 논쟁에서 근본적인 분수령이다.
3) 제한속죄(L/ Limited Monement)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만인의 모든 죄를 속죄하기 에 충분한 것이지만 그분이 오신 것은 단순히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허락하신 택함 받은 사람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이다.
4) 불가항력적 은혜(I/ Irresistible grace)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된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할 수 밖에 없도록 역사하신다. 이 은혜의 효과는 의지를 분쇄하는데 있지 않고, 기꺼이 응답하게 하도록 고무시키는데 있다.
5) 성도의 견인(P/ Persevernce of the saints)
진실로 회개한 자들은 분명히 구원받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질 때에도 하나님께서 끝까지 인내하시기 때문이다.
6. 조나단 에드워즈
18세기 미국 교회의 영적 상태는 청교도 선조들의 신앙 유산을 상실하고 점차적으로 인본주의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다. 설교는 윤리적인 것이며, 형식적이며, 도덕적이며, 생명력이 없었다. 청교도의 유산은 사라지고 너무 오랫동안 개혁 교회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가 활동하던 18세기 초의 영국과 뉴잉글랜드 지역에서는 칼빈주의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취급당하였다. 미국의 유능한 젊은이들은 많은 경우 펠라기우스를 따르는 듯하였다. 반(反)칼빈주의자이자 국교회 설교자인 존 틸롯슨의 말들을 지지하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거듭남의 경험도 거의 사라지고, 심지어 거듭남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한 것인가를 의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때 하나님께서는 마른 땅에 소나기를 내려줄 사람을 보내셨는데 그가 조나단 에드워즈이다. 그는 철저히 칼빈 신학으로 무장하고 매우 분명하고 강렬한 성령님과의 만남을 체험한 신앙을 바탕으로 매마른 미국 교회에 단비를 쏟아 냈다. 에드워즈는 외조부 솔로몬 스토다드의 뒤를 이어 노스햄프턴에서 목사직을 맡게 된다. 그는 자신과 다른 사람이 중생하였느냐하는 문제에 사로 잡혀 있었다. 에드워즈의 생각에는 이 중생의 문제야 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자기 자신을 생각해 보니 태어날 때부터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반역자적 기질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노력하여도 그 반역자의 기질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 이 자신의 반역하는 마음을 바꾸어 주셔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반역자적 기질이 바뀌지 않는 이상 성도들은 자기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지, 자기 기만적인 위선에 빠진 것인지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중생의 효과가 인간 편에서의 노력으로 가능하다고 하는 알미니안적 생각들이 뉴잉글랜드에 편만하게 퍼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정통 신앙인 어거스틴과 칼빈의 신학으로 무장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천명하였다. 그는 인간의 업적과 노력을 강조하는 알미니안 신학이 강단의 위기를 가져온다고 확신하였다. 1734년에 선포된 ‘이신칭의 설교’와 일련의 연속된 설교들을 통해서 주님의 영광된 빛과 의도를 드러내고 무수한 영혼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였다. 이때 노스햄프턴 일대에 부흥이 일어났으며, 부흥의 원동력은 알미니안주의를 반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이후 1738년 고린도전서 13장 강해설교를 하였으며, 36세 되던 해의 1739년 3월부터 8월까지『구속 사역의 역사 A History of the Work of Redemption』을 연속 설교하였다. 철저히 개혁주의적 관점의 구원론적 설교로 진행되므로 당시 뉴잉글랜드 지역의 주류를 이루었던 알미니안이나 이신론 등 불건전한 신앙에 도전하였다. 드디어 1740년 조지 휘필드가 뉴잉글랜드 지역에 순회설교를 하면서 에드워즈와 협력하였고 드디어 제1차 대각성운동이 시작되었다. 미국 교회의 대각성이 정통 신학으로 무장한 에드워즈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제1차 대각성운동은 짧은 시간에 뉴잉글랜드를 시작으로 동부의 13개 주를 휩쓸었다. 이 사건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기독교계를 바꾼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설교로 심판의 두려움을 전했다. ‘여러분이 처해있는 위험을 아십니까? 그것은 분노의 불길로 가득찬 분노의 용광로요, 밑바닥이 없는 지옥입니다!’ 그는 단호한 설교자로, ‘지옥불 설교자(hell-fire preacher)’ 혹은 ‘유황불 설교자(창 19:24, 계 19:20)’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는 말씀과 성령의 권능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믿었다. 에드워즈 목사는 빼어난 지성에 독창적인 사고를 가진 지식인이었지만, 언제나 영성으로 지성을 통제하게끔 했다. 그에게 있어 참된 경건과 거룩이란 머리(head)보다는 가슴(heart)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는 치밀한 이론과 뜨거운 가슴으로 무장된 것이었다. 미국의 1차 대각성운동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불을 지폈으며 조지 휘필드가 가세함으로 활활 타올랐다.
"청교도들을 알프스 산맥에 비유하고 루터나 칼빈을 히말라야 산맥에 비유한다면 조나단 에드워즈는 에베레스트 산에 비유하고 싶은 시험을 받곤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에드워즈는 언제나 사도 바울을 가장 닮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로이드 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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