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知)와 사랑45. - Herman Hesse.
옮긴이: 최달식
펴낸곳: 교육문화연구회
리디아가 말했다.
"골드문트, 당신이 어떻게 될지 나는 알고 싶어요.
나는 그런 생각을 자주 해요. 정상적인 편안한 생활은 하지 않겠지요?
아, 당신이 제발 행복하게 지내시기를!
당신은 틀림없이 시인이 될 거라고, 환상과 꿈을 가지고
그것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시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아, 당신은 온 세상을 헤매 다닐 테지요.
그리고 모든 여자가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그래도 당신은 외로울 거예요.
차라리 수도원의 친구들한테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당신이 늘 말씀하시는 친구한테로!
나는 당신이 쓸쓸히 숲속에서 죽어가지 않도록 당신을 위해 기도드릴 거예요."
리디아는 이런 진지한 말을 하다가도 이내 큰 소리로 웃으면서 농담을 하거나
그와 함께 늦가을의 들판으로 말을 몰고 나가 그에게 재미있는 수수께끼를 내며
시든 잎과 윤기나는 도토리를 그에게 집어던지곤 했다
골드문트의 마음은 하염없는 슬픔으로, 넘치는 사랑으로 혼란스러웠다.
겨울 바람이 지붕을 흔들며 다가왔다.
잠들기 전에 오랜 시간을 그런 감정에 휩싸이는 것이 벌써 습관이 되어 있었다.
매일 밤의 습관대로 그는 나지막한 소리로 마리아의 노래를 불렀다.
당신은 정녕 아름다워라, 마리아여
더러운 흔적은 가슴속에 없어라
당신은 정녕 이스라엘 땅의 기쁨,
죄 많은 자들의 어머니여라!
노래는 그의 영혼의 한가운데로 가라앉았다.
밖에서는 바람이 불화와 방랑의 노래를, 숲의 노래를,
가을의 노래를, 유랑자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리디아와 나르치스를, 어머니를 생각했다.
그의 가슴은 불안으로 답답해 졌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어둠 속에 하얀 잠옷을 입은 모습이 나타났다.
리디아가 소리없이 맨발로 걸어와서 가만히 문을 닫고 그의 침대에 앉았다.
"리디아 나의 사슴, 나의 하얀 꽃, 리디아, 어쩐 일이지?"
"당신한테 왔죠. 골트헤르츠, 나의 골드문트가 침대에서 자는 모습을 보려구요.
내 황금의 심장."
리디아는 그의 곁에서 바싹 다가와서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가만히 드러누웠다.
그가 마음대로 키스하는 것도 막지 않았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그의 두 손이
리디아의 몸을 마음껏 애무하는 것도 막지 않았으나 그 이상은 허락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는 그의 두 눈을 부드럽게 뿌리치고 그의 눈에 키스한 다음 조용히 사라졌다.
문이 덜커덩 소리를 내고 처마가 바람을 받아 가볍게 흔들리는 소리를 냈다.
모든 것이 마법에 걸린 듯 비밀과 불안과 약속과 위험에 가득 차 있었다.
골드문트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불안에 싸인 채 잠이 들었다가 깨어 보니 베개는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며칠 후 그녀는 감미롭고 흰 유령처럼 나타나서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의 옆에 드러누웠다.
그의 팔에 안기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이야기할 것이, 호소할 것이 너무나 많다고.
그는 다정하게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의 왼팔에 위에 눕히고 오른손으로는 그녀의 무릎을 만지작거렸다.
"골드문트."
리디아는 그의 볼에 입술을 대고 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제 두 번 다시 당신하고 같이 있을 수 없게 되어 무척 슬퍼요.
우리들의 아늑한 행복과 비밀은 이제 더 이상 계속 될 수 없어요.
율리에가 의심을 하고 있어요. 얼마 안 가서 나한테 고백하라고 강요할 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아버지가 눈치챌지도 모르구요.
당신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 사실이 발각되면 나의 사랑과 당신의 리디아는 혼날 거예요.
두 눈은 눈물로 부어오르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목이 나무에 매달려
바람에 나부끼는 걸 보게 될 테죠.
아, 당신, 차리라 달아나요.
차라리 지금 빨리 달아나요. 아버지가 당신을 묶고 목을 매달지 않게.
전에도 그런 것을 보았어요. 도둑이었지요.
당신이 그런 모습이 되는 것은 도저히 볼 수 없어요.
이봐요, 차라리 달아나 나를 잊어요. 당신이 죽지 않도록.
당신의 파란눈이 새들이 쪼지 않도록! 아니,
아니, 그리운 님. 가서는 안돼요....
아, 당신이 나를 버려 두고 가면 나 어쩌면 좋아요."
"리디아, 나하고 함께 도망치지 않겠어? 세상은 넓으니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리디아는 탄식했다.
"당신하고 같이 온 세상을 돌아다닌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요. 숲속에서 잠을 자거나, 천사가 되거나,
지푸라기를 머리카락에 붙게 하는 그런 짓은 못해요.
아버지께 수치를 줄 수는 없어요.... 아니, 그런 말은 그만해요.
공상이 아니에요. 난 할 수 없어요!
난 더러운 쟁반에 든 것을 먹지도 못하거니와 문둥병 환자의 침대에서 잠잘 수도 없어요.
아, 우리한테는 좋은 것은 아름다운 것은 모두다 금지되어 있어요.
우리 두 사람은 고통만을 받기 위해 태어났어요. 가엾은 내 사랑!
결국 나는 당신의 비참한 모습을 봐야만 할 거예요.
그리고 나는 감금되어서 수도원으로 보내지게 될 테지요.
이봐요, 나한테서 떠나 집시나 농부의 아낙 곁에서 주무세요. 네?
아, 가요, 가요! 잡혀서 매달리기 전에 가요!
우리는 절대 행복하지 못할 거예요, 결코!"
그는 살며시 리디아의 무릎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그녀의 음부를 부드럽게 만지면서 부탁했다.
"나의 꽃봉오리여!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어요. 왜 안되겠소?"
리디아는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손을 가볍게 뿌리치면서 살짝 비켜났다.
"안 돼, 안 돼요. 그런 일은 허락할 수는 없어요.
당신 같은 집시는 아마 모를 거예요. 그래요,
나는 나쁜 짓을 하고 있었어요. 나는 나쁜 계집애예요.
온 집안에 불명예를 가져왔어요.
하지만 마음속 어느 한 구석에는 지키고 싶은 것이 있어요.
거기는 아무도 들어와서는 안 돼요. 그걸 인정해 주어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두 번 다시 당신 방에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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