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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知)와 사랑71. - Herman Hesse.

Joyfule 2012. 11. 9. 11:38
 
  
 지(知)와 사랑71. - Herman Hesse. 

옮긴이: 최달식
펴낸곳: 교육문화연구회
스승이 사는 집 쪽으로 골드문트는 걸음을 옮겼다. 
니콜라우스가 안에서 작업을 마치고 
손을 씻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리다가 곁으로 다가갔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손을 씻으시고 웃옷을 입으실 때까지의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두 번 다시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없으리라고 미리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한 사람의 인간과 이야기하지 않고는 못 견딜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그것을 이해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분은 유명한 작업장을 가지고 
여러 도시나 수도원에서 명예로운 의뢰를 받고 있고 
두 사람의 조수와 훌륭하고 안락한 가정을 가지신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제일 아름다운 조각품, 즉 저 수도원의 성모상을 만드신 
바로 그 예술가를 향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그분을 존경하고 받들어 그분처럼 되는 것이 이 세상에서 최대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금 하나의 조각품, 요한 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스승님의 성모상만큼 완전무결하게 만들 수 없었지만 그와 비슷하게는 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입상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저에게 어느 것을 만들라고 강요해도 전 아무런 입상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원하고 거룩한 하나의 입상만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저는 언제든지 한번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만들 수 있으려면 저는 더욱 많은 경험과 체험을 쌓아올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삼사 년 안에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며 십 년 후, 혹은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며, 
어쩌면 영원히 못 만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승님 저는 그때까지 입상을 칠하거나 제단을 문지르기는 싫습니다. 
일터에서 직공 생활을 하기도, 돈을 벌기도, 보통 직공들처럼 지내기도 싫습니다. 
저는 방랑 생활을 하며 여름과 겨울을 느끼고, 세상을 구경하고, 
그 세상의 아름다움과 무서움을 체험해 보고 싶습니다. 
배고픔과 갈증에 허덕이고, 
여기 선생님 밑에서 생활하고 습득한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해방되고 싶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선생님의 성모상처럼 아름답고 마음을 깊이 감동시키는 작품을 만들고 싶지만, 
선생님처럼 되고 선생님의 생활 방식을 본받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니콜라우스는 손을 씻고 물기를 닦은 다음, 돌아서며 골드문트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정색을 하고 하고 있었으나 화가 나 있지는 않았다.
니콜라우스가 말했다.
  "자네가 하는 이야기를 나는 들었네. 
이제 그쯤으로 어지간히 해두지. 일은 많이 쌓여 있지만 자네한테 시키고 싶지는 않아. 
나는 자네를 조수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말일세. 
자네는 자유를 절실히 원하고 있어. 
이봐, 골드문트. 
나는 여러 가지 것에 대해 자네하고 의논을 하고 싶어.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한 이틀 정도 시간을 갖기로 하지. 
그 동안 자네는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게나. 
이봐, 나는 자네보다 훨씬 나이도 많이 먹고 여러 가지 경험도 해봤어. 
나는 자네하고 생각은 다를지 몰라도 자네의 기분이나 의도는 이해하겠네. 
며칠 안에 자네를 부르러 보내지. 그때 자네의 장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세. 
나는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다네. 그때까지만 참고 기다리게! 
마음을 쏟고 있었던 작품을 완성시켰을 때, 
그때의 마음이 어떤가를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 허탈한 느낌 말이야. 하지만 그것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야."
  골드문트는 어수선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선생은 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가 늘 찾는 시냇가가 있었다. 
수심은 그리 깊지도 않았으며 온갖 잡동사니들이 바닥을 꽉 메우고 있는 그런 곳이었다. 
어부들의 집에서 그 시냇물 속에 여러 가지 잡동사니를 던졌던 것이었다. 
그곳을 찾아 둑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는 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물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었다. 
어떤 물이라도 그의 마음을 끌었다. 
힘차게 흘러가는 물 속을 들여다보니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둠침침한 밑바닥 여기저기에 무언가 어슴푸레 황금빛을 내며 
마치 사람의 마음을 홀리려는 듯 반짝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분명히 무엇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부서진 낡은 쟁반 조각이거나 팽개쳐 버린 굽은 낫이거나 
투명하고 미끌미끌한 돌멩이거나 유리를 입힌 벽돌이거나, 아무튼 그런 것 같았다. 
어쩌면 연꽃 줄기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혹은 모래무지와 같은 놈이 물 속에서 돌아누울 때 잠시 광선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구별할 수 없었으나 
아무튼 까만 물 밑에 가라앉은 황금 보물처럼 어렴풋이 잠깐 비치는 
그것은 이상스레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