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知)와 사랑76. - Herman Hesse.
옮긴이: 최달식
펴낸곳: 교육문화연구회
13
골드문트는 새로운 유랑을 시작한 얼마 동안 되찾은 자유를 만끽하며
우선 나그네들만의 고향도 시간도 잊은 생활 방식을 다시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유랑자들은 아무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날씨와 계절에만 예속되어
하늘을 지붕삼을 뿐 아무런 목표도 없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우연에 대해서는 아무 저항도 없이 자신을 드러내 놓고,
어린애 같고, 초라하나마 굳센 생활을 한다.
그들은 낙원에서 쫓겨난 아담의 후예들이며 아무 죄도 없는 동물들의 주인이다.
그들은 하늘이 시시각각 그들에게 주는 것을 받는다.
태양을, 비를, 안개를, 눈을, 더위와 추위를, 안락과 괴로움을 받는다.
그들에게는 시간도 역사도 노력도, 집을 가진 자들이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발전이라든지 진보라든지 하는 우상도 없다.
유랑자들은 스스로 멍들기 쉬운 감정을 가지든,
선머슴 같은 마음을 가지든,
솜씨가 뛰어나거나 우둔하든,
용감하거나 겁쟁이든 항상 그 마음은 어린아이와 같으며
항상 그는 첫날과 같은 세계 역사의 시작 이전처럼 생활하고,
그의 생활은 얼마간의 단순한 본능과 필요에 의해서 인도되어진다.
그 사람이 영리하든 어리석든,
일체의 생활이 얼마나 나른하고 허무한가를,
또한 살고 있는 모든 것이 따뜻한 그의 피로써 얼음장같이 차가운 세계를
얼마나 보잘것없이 근심에 차서 참아가고 있다는 것을 깊이깊이 깨닫고 있든,
혹은 불쌍하게도 단지 어린애처럼 배고픔을 알려 주는 위장의 명령에 침을 흘리고 있든,
그는 언제나 소유자인 인간이나 정착한 인간이 반대자요, 동시에 언제까지나 적일 뿐이다.
소유하고 정착한 인간은 모든 존재의 허무함이라든지, 모든 생명의 쇠퇴라든지,
우리를 빙 둘러싸서 온 누리에 가득 차 있는, 용서의 여지가 없고
얼음장같이 차디찬 죽음 같은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유랑자를 미워하고 멸시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유랑 생활의 천진성, 어머니의 혈통, 규율과 정신에서 오는 혐오, 체념,
자꾸만 죽음을 향해가는 태도, 그런 것들이
골드문트의 영혼을 오래 전부터 붙들고 그 특색을 형성하고 있었다.
또한 정신과 의지가 그의 가슴속에서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가 예술가였다는 것이 그의 생명을 윤택하게 해준 것은 물론이요,
동시에 그의 생명을 고통스럽게도 해주었다.
모든 생활은 분열과 모순에 의해서 기름지게 되는 것이요, 꽃이 피게 되는 것이다.
도취라는 것을 모르는 이성과 냉정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죽음들 등뒤에 지니고 있지 않은 감각의 기쁨은 무엇일까?
여름이 지나고 또 가을이 지나갔다.
골드문트는 암울한 몇 개월을 간신히 보낼 수 있었다.
감미롭고 향기로운 봄을 정신없이 보내고 말았다.
계절은 빠르게 흘러갔다.
여름의 태양은 쫓기는 사람처럼 서산으로 달려갔다.
한 해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났다.
골드문트는 이 지상에 굶주림과 사랑과 무섭도록 조용한 사철의 빠른 변화 이외에는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사람 같았다.
그는 어머니의 본능의 원시 세계에 완전히 가라앉고 만 것 같았다.
하지만 가끔 꿈속에서 헤매든, 꽃이 피고 지는 골짜기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든,
그는 관조의 세계에 시선을 둔 예술가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는 사랑스럽지만 허무하고 무의미한 인생을 정신의 힘을 빌려 불러내고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고자 하는 못내 그리운 아쉬움에 가슴을 태우는 것이었다.
빅토르와의 피투성이 모험을 펼친 이래 언제나 혼자 헤매다니던 그는
어느 날 친구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 사나이는 이상스럽게도 골드문트를 줄곧 따라다니며 좀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빅토르와 같지는 않았다.
로마 순례복을 걸치고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쓴, 아직도 젊은 청년이었다.
이름은 로베르트, 고향은 보덴 호반으로 어느 수공업자의 아들이었다.
한때 성갈루스의 수사 학교를 다녔으며 어릴 때부터 로마 순례를 꿈꾸어 왔던 소년이었다.
이 소년이 그것을 실행에 옮길 최초의 기회를 얻은 것은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는 그의 일터에서 가구사로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이런 로베르트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자 대뜸 어머니와 누나에게
그의 용솟음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의 죄와 그의 아버지의 죄를 참회하기 위해서
즉시 로마를 향해 순례 행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결코 단념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어머니와 누이가 울며 달래기도 하고 때로는 노여움에 윽박질러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계속 고집을 부렸고 결국 어머니의 축복도 받지 못하고
누이의 분노에 찬 말만 실컷 들으며 순례길에 올랐던 것이다.
그를 몰아댄 것은 무엇보다 그의 방랑적 성격이었다.
말하자면 성당이 있는 장소나 종교적인 행사가 거행되는 근처를 헤매는 것을 좋아하며,
예배나 세례나 장례나 미사나 향내음이나 촛불 등을 좋아하는 것이었다.
라틴어를 좀 하기는 했지만 천진한 그의 영혼이 지향하고 있는 것은 학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아치형 천장 그늘에서 명상에 잠기거나
고요히 무아지경에 접어드는 풍경이었다.
어릴 때는 복사로서 열성적으로 봉사도 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