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知)와 사랑74. - Herman Hesse.
옮긴이: 최달식
펴낸곳: 교육문화연구회
어떤 다른 놈이 그 젖가슴을 어루만질 테지!
어떤 다른 놈이 그 훌륭한 소시지를 먹고 말 테지!
도대체 이 포만한 도시에서 매일 먹기만 하고 낭비만 일삼는 것은 아니었던가?
돼지 같은 이곳 시민이 왜 그리 게으르고, 사치에 물들고,
까다로운 성미만 갖고 있는 것인지!
그들 때문에 거의 매일 수많은 돼지들과 송아지들이 도살되고,
수많은 생선들이 강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신도 얼마나 사치에 물들고 타락하였으며,
타락한 이곳 주민들과 구역질 날 정도로 표정이 달라지고 있었던가!
그래도 유랑하던 때,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들판에서 맛본 바싹 마른 오얏이나 묵은 빵껍질이
여기서 편안하게 맛보는 조합이 성찬보다도 더 맛이 있었다.
오, 유랑이여!
자유여!
달빛이 교교한 황무지여!
아침이 되어 이슬이 맺힌 풀밭에서 희미하게 보이던 짐승의 발자국이여!
이곳 도시의 주민들에게서는 모든 것이 값싸고 가볍기만 했다.
사랑마저도, 그는 그러한 것에는 어느새 싫증이 나버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그런 것에 굴욕을 느꼈다.
이곳 생활은 이에 의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것은 앙상한 뼈다귀와 같았다.
스승이 모범이었고, 리스벳이 공주였을 동안에는 그 생활은 아름다웠으며 의의가 있었다.
그가 요한 상을 만들고 있을 동안은 그래도 견딜 만했다.
이제는 그것도 끝나고, 향기는 바닥이 드러났고, 꽃은 시들고 말았다.
한없이 그를 괴롭히고 한없이 그를 도취시키기를 그치지 않던
무상의 감정이 격심한 파도로 그를 사로잡고 말았다.
뼈다귀와 먼지밖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한가지는 남았다.
그것은 영원한 어머니, 슬픈 사랑의 미소와 신비스런 사랑의 미소를 머금은
태고적의, 그리고 영원히 앳된 어머니였다.
잠시 동안 그는 다시 어머니를 보았다.
머리 위에 별이 이고 있는 거대한 여인이었다.
세상의 끝에서 꿈꾸듯 웅크리고 앉아 부드러운 손으로 꽃을 하나씩 하나씩,
생명을 하나씩 하나씩 따서는 천천히 그것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었다.
골드문트가 한 가닥 시든 생명이 자신의 등 뒤에서 퇴색해가는 것을 느끼며
고별의 슬픈 광기 속에서 정든 마음을 떠돌고 있을 때,
니콜라우스 선생은 골드문트의 장래를 걱정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그를 언제까지나 정착시켜 놓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그는 골드문트를 위해 자격증을 발부하도록 조합을 설득하는 것은 물론,
그를 제자로서가 아닌 협력자로서 언제까지나 자기 집에 붙들어 놓아
중요한 주문에 대해서는 일일이 그와 의논해서 만들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수입을 분배할 계획까지 세웠다.
그것은 리스벳을 위해서도 하나의 모험일 수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 젊은이는 그의 사위가 될 것은 물론이었다.
요한 상과 같은 조각품은 니콜라우스가 이제껏 고용해 본
제일 솜씨 있는 조수도 결코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그 자신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착상과 창조력에 부족을 느끼고 있었던 터라
그의 유명한 작업장이 그저 너절한 수공업자들로
들끓는 곳으로 전락되는 것을 보기가 싫었다.
골드문트를 붙잡기 힘들겠지만 크게 작정하고 설득시켜야 했다.
그래서 선생은 깊게 생각을 거듭했다.
골드문트를 위해서 뒤뜰에 있는 작업장을 개조하여 확장하고
다락방을 그에게 내어 줄 거고 조합에 가입시키기 위해 훌륭한 새옷을 마련할 것 등.
그리고 미리 리스벳의 의사도 물어 보았다.
리스벳은 점심식사를 같이 한 이래 똑
같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터라 아무 반대도 하지 않았다.
그 젊은이가 정착을 하여 선생이라 불리게 된다면 그녀로서도 그에게 아무 불만이 없었다.
니콜라우스 선생이나 일로서는 이 집시를 길들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리스벳이라면 꼭 성공하고 말리라.
이렇게 모든 것은 치밀히 계획되어
목표인 새를 잡기 위한 미끼가 그물 뒤에 교묘하게 달려 있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 골드문트는 다시 식사에 초대되어
아름답게 새로 단장한 방에 앉아서 스승과 그의 딸과 잔을 나누었다.
드디어 딸이 자리를 뜨자 니콜라우스는 그의 크나큰 계획과 제안을 꺼냈다.
"자네는 내 말을 이해해 주겠지."
스승은 뜻밖의 말을 하고 난 다음에 이렇게 덧붙였다.
"말할 것도 없지만 젊은 사람이 일정한 수업 연한도 마치지 않고
이렇게 빨리 스승이 되어 따뜻한 둥지 속에 들어가 본 예는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했어.
크게 성공한 것이라고나 할까, 골드문트."
골드문트는 놀랍고 답답한 마음으로 스승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아직도 반쯤 남아 있는 잔을 옆으로 밀어 놓았다.
하는 일 없이 나날을 보냈기 때문에 니콜라우스로부터 심한 소리나 듣지 않으면
조수로서 스승의 집에 남아 있으라는 제안을 받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사태는 이렇게 되고 말았다.
스승과 이렇게 마주 않아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슬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한 노릇이기도 했다.
그는 얼른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선생의 호의에 찬 그의 제안이 금세 기쁨과 겸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얼마간 긴장되고 실망한 얼굴로 일어서면서 말했다.
"나의 제안이 뜻밖이었기 때문에 우선 자네는 잘 생각해 보고 싶겠지.
그러나 그게 내 마음에 들지 않는군. 자네가 크게 기뻐해 주리라 믿었네.
하지만 상관없어. 그럼, 생각할 기회를 주지."
"선생님"
골드문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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