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력은 귀에 있다
결국 광야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 지도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기간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심어주시려고 하셨던 지도자로서의 요건은
- 듣는 것, 듣는 능력이었다는 것이에요.
모세가 얼마나 듣는 훈련이 잘 되었느냐 하면,
자기 의지를 발동하면 2주~1달이면 갈 수 있는 길을, 40년 동안 천천히, 느리게 갑니다.
시내산에서는 2년까지도 머뭅니다.
2년까지 구름기둥이 꼼짝 안하고 있으니까, 자기도 꼼짝 안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기 광야가 우리가 서울 시내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이렇게 좋은 아파트에, 수도꼭지 틀면 물이 콸콸 나오고 콜라 사이다 잔뜩 있고 과일도 지천이에요. 이런 게 아니지 않습니까?
반석에서 물을 내서 마시고, 만나 하나만 먹어 가면서 40년을 버티는 거예요.
정말 대단한 거 아닙니까?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움직이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된다는 것.. 제가 아직 그렇게 못하고 있어요.
정말 죽음의 땅 광야에서, 목이 마르고 갈증 나고, 뭘 하려고 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광야에 놓여 있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향한 열망은 더 강렬했을 거라고 봐요.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그 어떤 소원보다도 빨리 그 곳에 가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지금 우리보다 더 강렬하지 않았겠나 생각이 들어요.
자, 모세의 처지가 어떻겠어요?
백성들은 난리입니다. 아우성입니다. 원망합니다. 불평합니다.
계속해서 압력을 가합니다. 가자! 가자! 가자! 그러나 구름기둥은 안 움직입니다.
아, 이거 어떻게 해야 될까?
제가 이전에는 그런 모세의 입장이 눈에 들어오질 않았어요.
그런데 목회를 하다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목사로서 나름대로는 그저 하나님의 음성을 쫓아가야 된다,
양들을 이끌어 가는 목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목회의 마음은
내가 하나님께 양이 되는 거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런데 어떨 때는 혼미할 때도 있고 어떤 특정 사안에 대해서 분명하지 않을 때도 있고
하나님의 음성이 이렇게 칼로 물을 잘라내듯이 명확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을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진짜 마음에 확고하게 하나님이 이걸 원하시는구나 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혼미할 때는 나도 같이 우왕좌왕하지만 마음에 확고하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그것과는 다른 요구로 압박해 오는 거예요.
그들의 입장에서는 타당성도 있고 일리도 있어요.
그런데 내 마음이 확고한 거예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음성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원하시는 계획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방향으로 압박해오는 교인들을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다는 것이에요.
왜냐?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얘기를 하고 요청해오니까요.
모세는 2년 동안 안 움직이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모세가 못 되는 거예요.
저는 그냥 져 버릴 때가 많아요.
교인들이 하도 얘기하면 그게 맞는 거겠지 합니다.
근데 지나고 보면 그 일.. 안 돼요.
어제 제가 노회의 중부 시찰회가 있는데
거기에 목사님들 모임이 있어서 한번 참석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목사님들 얘기를 듣다 보니까 서울 시내 유수의 교회들이 다 문제를 안고 있더라고요.
어떤 유명하고 큰 교회인데 심각해져서 노회에서 조정위원회가 파송이 되고 있는데
그 조정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계시는 목사님의 얘기를 들었어요.
자, 목사님을 중심으로 해서 장로님들이 목사님을 반대하고 있고 집사님들이 목사님을 지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양측의 얘기를 들어 본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 뜻이라고 한 대요.
모두가 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런답니다.
아무도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에요.
전부 말하려고 하는 사람만 있다는 겁니다.
이거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요.
이젠 어느 교회고 교인들도 장로님은 장로님들대로 집사님은 집사님들대로 다 한 10년 20년 믿다 보면
목회 전문가들이 되어서 목사하고 얘기해도 목회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조금도 모자람 없이 펼쳐냅니다.
이제 방법은 목사님들이 비굴할 정도로 그냥 비위를 맞춰주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러다가 혹시 목사님들이 확고하게 하나님께 어떤 음성을 듣고
누가 뭐라고 해도 이거다 그래서 어떤 교인이 압박해도 그냥 그 음성을 따라 가지요? 그러다 결국은 뭡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만 남는 거예요.
여러분, 지도력은 귀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도력은 내가 지도해야 될 사람들이
나를 돌로 쳐 죽이더라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겁니다.
단, 여기서 조심할 것은 교인들이 말해오거나 내가 지도해야 될 피지도자들의 그룹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에 대해서
한번쯤은 하나님의 뜻이 그들을 통해서 나에게 전달되는가 물어보지 않으면
지도자가 하나님의 뜻을 추종하고 뜻을 듣고 간다 라고 하는
이 얘기가 지도자의 위치를 절대자의 자리로 앉혀놓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얘기할 때 한번은 그 얘기를 붙잡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묻는 그런 여과장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지도자가 잘못하면 절대자가 됩니다.
지도자는 특히 하나님이 쓰시는 지도자는 절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입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 잘 들으세요.
교회의 비전을 보면 안 돼요. 절대로 그러면 안 돼요.
듣는 자만이 말할 자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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