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지상전투의 승리의 요건

Joyfule 2024. 3. 16. 00:09


   지상전투의 승리의 요건(롬8:35-37)



 어떤 이들은 첫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교회에 대해 말하며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재촉하며 통곡과 회개를 짜내기도 합니다.

후련하고 속이 꽉 찬 느낌에 잠시 행복에 겨워 기뻐 뛰겠지요.

근데 처음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아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하고 노래를 부르고 뛸 듯이 기뻐 모든 것을 드릴 것 같은 황홀경에

빠진 그 때가 과연 내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한 첫사랑이 맞을 까요?

이를테면 부부가 처음 만나 결혼을 할 때에 가슴 뛰는 그 때의 기억이

나이 먹은 다음에도 그리워지고 아쉽다면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니지요.

사랑으로 시작 되었다면 현재 더 원만한 사랑에 이르러야 정상입니다.

주님께서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십니다. 바로 불 못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네가 누구냐 하니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라고 하시므로(요8:24-25) 바로 가라사대

그 분이라는 사실을 밝히십니다. 바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 말씀이십니다.

첫 사랑이라면 바로 이분을 사랑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라 하는

유대인이 그를 사랑할 수가 있을까요?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복을 받고 천국에 간다고 믿는 자들이 그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새 언약을 알게 하시고 이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된 계명을 지키는 것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요14:15, 21)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시고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Q.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을까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25)

 

A.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33절에서 누가 고발할 때는 하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34절에서 누가 정죄를 하면 그리스도가 등장하십니다.

사실 고발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입법자는 하나님이시니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셨는데 누가 우리를 고발합니까?

또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시므로 우리를 아담 안에 있는 사망에서

건져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나라로 옮겨 놓으시고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모든 만물을 통치하시며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는 주님이 계시는데

누가 우리를 정죄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건 열차에다 짖어대는 똥개소리 밖에 아닙니다. 

그리고 35절에서 우리를 끊어내려 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등장합니다.

우리에게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합니다. 대적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이 등장하시고

누가 집적거리려하면 또 하나님이 등장하십니다. 그러니 아무도 손을 못 댑니다.

환란,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이런 것들은 지상에 있는 모든 난제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공격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 보다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훨씬 더 큽니다.

그렇지만 생활신앙인들이거나 생계형사역자들은 여지없이 무너지겠지요.

칼릴 지브란이 사람들은 대화의 테이블에 금 은 보석을 올려놓는데 반해

자신은 영혼만 올려놓으니 그들과 대화가 안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보란 듯 있는 듯 행세를 해도 생활신앙이나 생계형사역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 사람이 과연 지상전투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길까 의심이 듭니다.  

 

Q. 우리의 지상의 삶은 어떠한 상황인가요?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8:36)

 

A. 비록 그리스도 안에서 그 사랑에 이끌리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는

자격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만 세상에서는 꼴찌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어쩌면 만물의 찌꺼기와 같을 수도 있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나의 자아와 보이는 나의 인생이 중첩이 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현재 고난과 장차 영광을 비교하여 말씀을 하십니다(롬8:18)

또 환난의 경한 것과 영광의 중한 것이 다름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고후4:17)

유치하지만 예컨대 어쩌면 우리는 춘향과 같습니다. 그 싸움에 변 사또가 이겨요?

춘향이가 이겨요? 춘향이가 이겼지요. 그러나 고난은 춘향이가 받았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오직 이몽룡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고난을 이겨 냈습니다.

그로인해 춘향이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술집 주모의 딸이 영광을 받았습니다.

오직 사랑하나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고난과 시험을 거쳐 영광을 받았습니다.

 

계시록에 가보면 이쪽저쪽 양쪽이 다 악바리들만 남습니다.

나중에는 악바리와 악바리의 싸움이 붙습니다. 바퀴벌레 같은 악바리만 남겠지요.

도살당할 양들처럼 여김 받았다 왜 그렇지요? 35절의 일곱 가지 요소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사랑과 주님이 주실 영광 때문에, 그리고 내가

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고난을 당해도 넉넉히 이기노라 외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존 신앙인들은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음녀교회가 되고

결국은 마지막 때는 바벨론의 상인들이 영혼 장사로 큰 배를 운용하는 대박을 누립니다.

이를 두고 사도요한은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고 경고를 합니다(요일5:21)

만일 우리가 사랑 외에 다른 빚을 지고 육신과 사람들의 안목과 자랑을 위한 짐을 지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세상의 실존과 야합하는 음녀의 길을 면하지 못할 거라고 단정합니다.

 

Q. 무엇으로 세상의 도전을 이길 수 있는가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A.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등은

지상의 인생 가운데 도전 받는 목록의 전부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것들 때문에 도살당할 양과 같이 매일 녹초가 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대속의 업적과 그 공로로 진리의 성령을

받아 그 안에서 주와 한 떡이 되고 한 몸이 되고 한 영이 된 계명을 지녔냐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15:10)고 하신 말씀을 실감할 수가 있을 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주의 음성을 듣고 그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따르면 영생을 주노니

아무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다 또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다(요10:28-29)하신 그 사랑이 뼛속 깊이 스며들게 될 겁니다.

그리스도도 없고 성령을 구경하지도 못한 춘향이가 변 사또의 핍박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이몽룡이의 사랑을 믿고 그를 사랑하므로 끝내 이기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은 모든 것을 이깁니다. 그러나 사랑은 열정적인 정신승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부름을 받아 의롭게 된 자로 하나님의 영광의 상속자로 정착이 되어

그 안에서 주의 부르심의 약속을 굳게 붙잡는 피차 사랑으로 능히 이기고도 남는 싸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