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성을 위한 ━━/Leadership

질 좋은 리더를 원한다

Joyfule 2008. 6. 22. 01:09

질 좋은 리더를 원한다

 

몇 세기 전에 동방의 호전적인 어느 왕이 자신의 무적의 군대를 이끌고

어린 추장 아부타버의 영토에 이르렀다.

이 왕은 아부타버의 용맹성에 대해 익히 듣고 있던 터라 죽이는 대신 평화의 사절단을 보냈다.

아부타버는 그 제안을 듣자 한 병사에게 단도를 주면서 ‘이것을 너의 가슴에 꽂으라.’고 명령했다.

그 병사는 명령대로 그 칼을 가슴에 꽂았다. 아부타버는 다른 병사를 불러

 ‘이 낭떠러지에서 유프라테스 강으로 뛰어내리라.’고 명령했다.

그 병사는 지체하지 않고 뛰어내렸다.

아부타버는 그 사절단에게

 ‘가서 당신의 왕에게 전하시오. 나에게는 이와 같이 용맹한 군사 500명이 있소.

 앞으로 20시간 이내에 내 부하들이 당신 왕을 체포할 것이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그 무적의 군대와 함께 진격을 했지만,

아부타버의 충성스러운 작은 군대를 이길 수 없었다.

 

문제는 무엇인가? 양이 아니라 질이다. 갈수록 세상은 질로 승부하는 시대가 온다.

정치도 질, 경제도 질, 학문도 질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경륜과 양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천국에 가는 것은 질에 달려 있다.

예배도 질, 기도도 질, 봉사도 질, 전도도 질, 충성도 질이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세상에서 인기를 나누어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십자가를 지고 고난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밴스 해브너는 ‘교회는 상처를 통하여 성숙된다.’고 말했다.

교회의 위대함이 증명될 때는 군중의 자리에서 방관자로 있을 때가 아니라

신앙 때문에 사자 먹이가 될 때였다.

 

사람들이 리더에게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 줄 아는가?

학벌이나 능력이 아니라 인격이다. 능력이 없어서 실패하는 리더는 거의 없다.

실패한 리더의 대부분은 인격이 문제였다.

 마이클 조셉은 ‘훌륭한 인격 요소는 좋은 원칙(소신)과 민감한 양심(옳고 그름에 대한 내적 감각)

그리고 도덕적 용기(옳은 것을 할 수 있는 내적인 힘)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닮아갈 것인가?

우리가 평생 고민하며 풀어야 할 과제이자 평생 거룩하게 추구해야 할 목표이다.

 

숨을 쉴 수 없는 정도로 햇볕이 내려쬐는 사막 한복판에서 낡은 트럭을 끌고 가던 한 젊은이가

허름한 차림의 노인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힘들어 보이시는데, 타시죠!

고맙소. 젊은이! 라스베이거스까지 태워 줄 수 있겠소?

젊은이와 노인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노인의 목적지인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부랑자 노인이라고 생각한 젊은이는

헤어지면서 주머니를 뒤져 25센트를 노인에게 주면서 말했다.

 ‘영감님, 차비에 보태세요. 몸조심하시구요.’

참 친절한 젊은이구먼. 명함 있으면 한 장 주게나.’

젊은이는 무심코 명함을 건네주었다.

멜빈 다마! 이 신세는 꼭 갚겠네. 나는 하워드 휴즈라고 하네.’

얼마의 세월이 지나 이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렸을 무렵 기상천외한 사건이 벌어졌다.

 ‘세계적인 부호 하워드 휴즈 사망’ 이런 기사와 함께 유언장이 공개되었는데,

 하워드 휴즈가 남긴 유산의 16분의 1을 멜빈 다마에게 증여한다는 내용이었다.

멜빈 다마란 사람이 누구인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유언장 이면에 멜빈 마다는 하워드 휴즈가 일생 동안 살아오면서 만났던

가장 친절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친절한 사람! 이것이 유산을 남겨 주는 유일한 이유였다.

하워드 휴즈의 유산 총액이 25억 달러 정도였다.

유산의 16분의 1은 최소한 1억 5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1,400억이나 되었다.

무심코 베푼 25센트가 6억 배가 되어 되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나님의 사람은 가치를 보는 사람이다.

하늘에 속한 사람은 원하는 바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가치를 위해서 자기를 포기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포기해서라도 지키고 세워야할 위대한 가치를 보고 있는가?

최고의 가치는 성숙한 인격에 있다.

성숙한 인격과 성숙한 신앙의 가치를 얻기 위해 반드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sung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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