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대회의 공인구는 '팀 정신'이란 뜻의 '팀가이스트'. 가죽조각 14개가 한 데 엉켜 공을 구성하듯이, 세계는 인종, 종교 등을 초월한 가운데 함께 환호작약한다. 광기(狂氣)에 가까운 열기를 불러 일으키는 초강력 통합력을 축구는 갖고 있는 것이다.
다소 생뚱맞은 얘기같지만, 1천300여 년전에 이뤄진 신라의 삼국통일도 그 시작이 축구공에 있었다면 믿기나 할까. 그러나 사료는 삼국통일의 실마리가 축구임을 엄연히 암시해주고 있어 재미있다.
'삼국유사'에는 통일의 주역 김춘추와 김유신의 만남을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한다. 신라 제29대왕인 김춘추의 왕비는 김유신의 막냇누이인 문희(文姬)였는데, 그녀가 김춘추를 만나는 과정에 축구공이 놓여 있다.
문희의 언니 보희(寶姬)는 어느날 밤 서악(西岳)에 올라 소변을 보았는데 경성(京城)을 가득 차게 하는 꿈을 꾼다. 아침에 문희에게 꿈 얘기를 해주자 문희는 "비단치마를 주고 그 꿈을 사겠다"고 한다. 이렇게 성사된 거래가 두 누이의 운명을 바꿀 줄 누가 알았겠는가.
며칠 후, 김춘추와 김유신이 함께 놀았는데, 그 놀이가 바로 축구였다. '삼국유사'는 이 대목을 "열흘 뒤, 김유신과 춘추공은 정월날 기일 유신의 집 앞에서 공차기 축국(蹴鞠) 놀이를 했다(後旬日 庾信興春秋公 正月午忌日 蹴鞠于庾信宅前)"고 기술한다. 덧붙여 "신라인은 이른바 공을 발로 차는 둥그런 구슬을 만들어 놓았다(羅人謂蹴鞠爲弄珠之戱)"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공을 차면서 김유신이 김춘추의 옷을 밟아 고름을 떨어뜨리게 해 자기 집으로 끌어들인 게 후일의 왕과 왕비인 두 남녀의 극적인 만남의 단초였던 것. 이후 김춘추는 김유신의 집을 자주 찾게 돼 결국 문희가 임신하기에 이른다. 즉, 처남과 매부 사이로 훗날 삼국통일에 의기투합한 데는 그 조그만 축구공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축구는 한국이다'의 저자인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는 '축국'에서 쓰인 농주(弄珠)는 가축의 오줌보나 태반에 바람을 넣어 차거나 던지는 놀이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조선시대 정조 때 간행된 '무예도보통지'도 "국(鞠)은 곧 구(球)라는 글자이므로, 축국은 공놀이다"라고 뒷받침한다.
이번 월드컵대회에서 한국팀은 13일 밤 첫 경기의 역전승으로 중대 고비를 하나 넘었다. 승리로 가는 길(To go to victory)에 토고(Togo)가 있었던 셈이랄까. 한반도를 다시 열광시키며 한 덩어리가 되는 데 토고가 고마운 발판이 돼줬다. 마술피리와 같은 이 응집의 효과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