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자유
김요한 선교사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전 7:22-24)
‘값으로 사신 것이니’... 값으로 산바 되었다(원어)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소유개념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한 존재로서의 가치의 개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나라의 소속이 되었다는 의미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된 자신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자유만 누리려고 하면 안 됩니다.
가치 있는 사람은 가치의 영향력을 끼치고,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자유는 방종으로 흐릅니다.
그래서 자유의 가치를 모르는 자는 차라리 율법이 낫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치진작보다
신앙의 방법을 교육시키는 것이 더 빠르고 쉬운 게 문제입니다.
예컨대 죄 사함 받고 자유를 얻는 방법, 윤리와 도덕,
그리고 삶의 지혜 등을 가르치는 것이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진리 안에 자유를 얻게 하고
그 가치의 영향력을 드러내도록 하는 일 보다 훨씬 수월하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가진 지식의 신, 곧 마귀의 자녀의 습성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현대의 교육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식은 살아있는 말씀을 죽입니다.
말로는 은혜라고 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지성으로 경건을 이루려고 합니다.
안 되면 감성적 열광주의로 부르짖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재의 교회는 지성적 경건과 감성적 열광주의가 양분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영성은 생명에 대한 가치성으로 자유를 누리게 합니다.
따라서 그 사람의 기능보다 생명을 얻은 존재에 가치를 둬야합니다.
이 마지막 때의 그리스도인들은 인간관계나 물질의 소유욕과
감정의 호불호로 부터 자유자가 되어야 합니다(고전7:29-31)
사람이나 사물에 끌어당김이 없이 주만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준비할 입니다,
그야말로 ‘주께서 오라 하시면 내 고향 찾아가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석은 보석 자체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 그냥지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리산은 지리산, 설악산은 설악산입니다.
서로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람마다 그리스도의 형상은 다 같지만 인격의 개성은 다 다릅니다.
다양성을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의 알맹이 값, 껍데기 값이 다 다릅니다.
영화가 명화일수록 주연의 연기가 특출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연기자들입니다.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다’ 그 당시로서는 폭탄선언입니다.
오직 새 계명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람의 외모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발언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 곧 세례의 의미를 알고 중요시해야 합니다.
근데 결혼보다 결혼식 행사를 중요시하는 사람하고 결혼하면 불행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하나님 안에 거하는 축복에 부르심을 받았다고
‘튀지 말라,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현재 위치를 지켜라’(24절)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