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뽕나무위의 삭개오

Joyfule 2017. 10. 5. 22:06
     
     
        뽕나무위의 삭개오
        김요한 선교사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눅 19:3-4) 
    신앙의 단계는 계시를 통해 눈이 열려 예수를 보고, 그 분 앞에 나아가 만나고, 
    영접한 후 회개, 그리고 난 다음의 구원의 선포와 함께 안식과 평강을 얻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영원을 향해 걸어가게 됩니다. 
    거지 소경이 보기를 원한다고 외쳐 예수님이 그 눈을 열어 주신 사건 뒤에 
    이 삭개오가 구원 받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의미심장한 사건입니다. 
    삭개오라는 사람은 의, 정의라는 뜻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에게는 예수님이 다가오시면 반응을 하는 신기한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말씀은 다가오고 나는 반응하고... 그 가운데서 영접과 회개 그리고 구원이 일어납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만 우리는 
    ‘내가 만나고, 영접하고, 회개했다, 내가 구원받았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미리 그 아들 그리스도 안에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사실입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그 분의 영적인 리모컨트롤에 의해 눈을 열어 달라고 부르짖기도 하고,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만나야겠다는 열정으로 뽕나무에 올라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음성이 들리면 자신도 모르게 얼른 영접하고, 
    그 다음엔 자신을 발견하고 철저한 회개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칭호를 얻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복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것은 물론입니다(갈3:14)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가운데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고 한 것은 
    그가 아브라함의 뒤를 이은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이 삭개오에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포하십니다. 
    그 때의 삭개오는 감전이 되는 이상의 충격적인 감동을 맛보았을 겁니다. 
    그만큼 말씀과 성령의 보증으로 나타나는 구원의 확정은 
    놀라운 체험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는 다윗이나 베드로처럼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하랴’는 믿음의 배짱이 생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론 신앙에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 따라 오락가락합니다. 
    그러나 말씀과 성령에 붙들린 사람은 주관적인 영감에 의한 견고한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때로는 삭개오처럼 자신의 문제(키가 작음)와 다른 사람의 문제
    (사람이 많아 볼 수 없음)로 인해 예수를 만나는 것이 방해가 될 때에 
    뽕나무에 올라가는 열정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참 회개를 하므로 
    삭개오에게 임한 구원의 복을 맛보아야 합니다. 
    안 보이면 소경처럼 부르짖고, 보이면 앞으로 달려가서 만나고, 
    만났으면 영접하고, 참 회개를 하고 구원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그러나 이 진정한 영접과 소유와 보화가 바뀌는 참 회개는 
    모세처럼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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