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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 Part 1. 분석심리학자로의 성장 - 10. 다시 홀로 바위 위에

Joyfule 2015. 9. 19. 09:22

 

 

칼 융 Part 1. 분석심리학자로의 성장

 

10. 다시 홀로 바위 위에

 

융은 자신의 삶이 마치 외계에서 오는 뉴스처럼 자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 같다고 느끼면서 방황을 거듭했다. 그러던 1913년 가을의 어느 날, 그는 어떤 저항할 수 없는 영상을 보았다.

“ 나는 괴물 같은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 북쪽 지방과 저지대를 뒤덮고 내 쪽으로 밀려오는 것을 보았다 . 해일이 막 스위스를 집어삼키려고 할 때, 알프스산이 점점 더 높이 솟아오르더니 우리나라(스위스)를 보호해주었다. 그 때 나는 우리의 현실 세계에 어떤 무서운 재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몰아치는 누런 물결 위로 찬란했던 문명의 파편이 이리저리 떠다니는 것을 보았고, 셀 수 없이 많은 익사한 시체들을 보았다. 그러더니 그 바다 전체가 피로 변했다. ”

융은 같은 꿈을 수 주 후에 또 꾸었는데 , 그 때에는 어떤 음성이 들려왔다.

“ 이것은 현실이며 곧 그렇게 될 것이다 . ”

그리고는 1914년 6월까지 이와 비슷한 불길한 꿈들을 되풀이해서 꾸게 되었다. 마지막 꿈에서 융은 한 그루의 나무를 향하여 얼어붙은 땅 위를 쉼없이 걸어갔다. 그 나무에는 치유력을 가진 즙이 가득찬 달콤한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고, 융은 열매를 따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914년 8월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융은 그 꿈들이 단순히 개인적인 꿈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는 ‘ 자신의 경험이 인류 전체의 경험과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 ’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융은 자신의 무의식세계를 탐험하는 힘든 여정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혼자 호숫가에서 조약돌로 집짓기 놀이를 하던 어린 시절에 그러했듯이, 환상과 이미지의 폭포에 몸을 던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는 ‘ 어두운 깊은 곳을 향해 풍덩 뛰어들었고 ’ , 자신이 ‘ 우주의 심연 끝에 ’ 와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마치 달이나 텅 빈 우주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 나는 마치 죽은 자들의 땅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 ”
그 곳에서 그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인 엘리야와 살로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그러나 그가 대면했던 가장 중요한 인물은 필레몬Phillemon이었다.

“ 그는 꿈 속에서 나에게 훨훨 날아왔습니다 . 황소의 뿔이 머리에 나 있었고 손에는 세 개의 열쇠가 달린 열쇠고리를 들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하나의 열쇠는 잠긴 것을 열기 위해 따로 빼서 다른 손에 쥐고 있었죠. 그리고 노인의 등에는 물총새 같은 날개가 나 있었습니다. ”

융은 그 꿈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본 광경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 그림을 그리던 중 그는 호숫가에서 죽은 물총새를 발견했다.

“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놀랐습니다 ! 물총새는 내가 사는 곳에서는 매우 드물었죠. 나는 그 죽은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물총새를 단 한 마리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
이 사건은 그가 일생동안 경험한 많은 우연의 일치 중 하나였다 . 이 영향으로 융은 필레몬의 등장을 현실로 생각하게 되었다. 융과 필레몬은 정원을 산책하면서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 필레몬 , 당신의 말씀은 제 생각이 저 자신 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

“ 물론 아니지 . 자네는 자네 자신이 그 생각들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생각이란 숲 속에 있는 짐승과도 같은 것이라네. 혹은 방 안에 있는 사람과 같다고도 할 수 있지. 그렇다면 자네는 자네가 그 짐승이나 사람도 만들어냈다고 생각할 건가? ”

“… ?

 

11. 필레몬, 신화적 상상

 

필레몬은 누구인가 . 혹은 무엇인가.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융은 그 자신과 자문자답한 것일 뿐이며, 필레몬은 환상의 산물이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사로잡았던 망상이나 알 수 없는 음성들과 유사한, 정신병적 증상인 것이다. 그러나 융은 필레몬이 자신에게 영적인 길을 가르쳐주기 위해 보내진 영혼의 구루guru라고 생각했다.
융의 후기 연구의 관점에서 보면 , 필레몬은 ‘ 영혼의 원형적 이미지 ’ 라고 칭할 수 있으며 , 정신질환자를 치명적인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는 무의식적 이미지의 소산이다. 그러나 합리성을 중시하는 우리 시대에 이르러 거의 사라지게 된, ‘ 신화적 상상 mythopoeic imagination ’ 의 소산이기도 하다 . 그러한 상상은 도처에 자리잡고 있지만, 터부시되거나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1916년 여름, 융에게 큰 전환점이 다가왔다. 융의 집에 유령이 출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딸들이 유령을 목격했고, 아들은 악마가 낚시를 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오후, 현관문이 스르르 열리고 초인종이 마구 울리기 시작했다. 한 유령이 집으로 들어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지금 막 돌아왔다 . 그 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찾던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

융은 유령의 말을 받아쓰기 시작했는데 그러는 동안 그 영혼 같은 존재는 서서히 사라져버렸다 . 그 후 사흘 동안 그는 자기도 모르게 줄줄 글을 써내려 가서 Septem Sermones(일곱 개의 설교)를 완성했다.

말하자면 융은 큰 원을 빙 돌아 , 그가 학생시절 참가했던 사촌의 강령회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촌 헬렌이 영매가 아니라 융 자신이 영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