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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융 Part 2.분석심리학의 확립

Joyfule 2015. 9. 21. 00:36

 

 

칼 융 Part 2.분석심리학의 확립 

 

1. 만다라, 마음의 중심으로 가는 길

 

융은 남은 일생 동안 이 무의식여행이 선물한 영감들을 표현 하고자 노력했다. 무의식여행을 끝내고 속세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을 즈음, 융은 매일 아침 일기장에 작은 원 모양의 그림들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그 작업은 그의 내면적 요구에 부응한 것이었다고 한다. 융은 동그라미 속에 그린 그림들이 그릴 당시의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친구로부터 언짢은 편지를 받은 다음날 그린 동그라미 그림은 둘레가 찢겨져 있었다. 그리하여 융은 내면의 변화가 그림의 형태에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 후 융은 자신의 그림을 통하여 매일에 걸친 정신적 변화를 관찰하였는데, 그러는 동안 자기가 그린 원형의 그림이 인도의 전통에서 만다라mandala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생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도에서 말하는 만다라는 인간의 이상향인 소우주로서, 동양종교가 헌신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융은 동양 종교에서 나타나는 만다라가 서양인들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융은 만다라의 특징이 자기self를 나타내는 상징의 역할에 있다고 보았다. 즉 만다라는 한 세계를 대변하는 단위로서, 인간정신이 가지고 있는 소우주적 형태와 상응한다고 기술하였다. 만다라를 보면 정신발달의 목표가 ‘중심, 즉 개성화individuation를 향한 경로’ 임을 알 수 있다. 만다라는 자기, 다시 말하여 개인이 나아가고자 하는 목표와 의미를 담지한, 한 개인의 전체, 의식과 무의식의 합을 나타낸다.

 

몇 년이 지난 1927년, 융은 어떤 꿈을 꾸고 나서 위와 같은 생각을 확신하게 된다. 그는 리버풀Liverpool-‘the pool of life’-에 있었다. 그곳은 비, 담배연기, 그리고 짙은 안개로 가득찬 지저분한 도시였다. 어두운 겨울날 비가 내리는데, 자기와는 공통점이 없는 대여섯명의 사람들과 함께 어둡고 우중충한 도시를 걷고 있었다. 그가 받은 느낌으로는 그들은 항구에서 올라오는 중이었고, 도시는 절벽 위에 있었다. 절벽을 올라 꼭대기에 도달하자, 가로등에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 넓은 사각형의 광장과 그리로 통한 많은 거리들이 보였다. 도시는 전통적인 유럽풍으로 설계되어 있었고 모든 도로들이 방사선 모양으로 광장을 향하고 있었다.

광장의 중앙에는 둥근 연못이 있고, 그 가운데에 작은 섬이 있었다. 주위의 모든 것이 비, 안개, 연기에 싸여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지만 그 작은 섬만은 햇빛에 빛나고 있었다. 그 섬에는 꽃들이 활짝 핀 한 그루의 목련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는 햇살을 받아 마치 빛의 근원인 듯 보였다.
지긋지긋한 날씨를 탓하는 것으로 보아 융의 동반자들은 그 나무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들은 리버풀에 살고 있는 또다른 스위스인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여기에 살게 된 것에 대하여 놀라움을 표했다. 융은 꽃이 핀 나무와 태양빛처럼 빛나는 섬을 넋을 잃고 바라보면서, '그가 어떻게 여기 살게 되었는지 알만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융은 그 스위스인이 원하는 것이 조용하게 빛나는 것, 영적으로 평온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모든 길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 중심이자 어두운 그곳에서 빛나고 있는 목련나무의 영상은, 심리학적 성장이 일차원 선상에 있거나 명쾌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그의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는 심리적인 성장이 오직 자기라고 하는 정신의 중심을 향하여 반복하여 돌아가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여기게 되었다. 이 꿈을 통하여 융은 인간정신에 존재하는 어떤 패턴 및 상황, 즉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기원형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정신적 발달의 목표는 자기에 도달하는 것이며 이는 일직선상의 진화가 아니라 정신의 중심인 자기의 주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라고 기술한다. 융의 이러한 통찰은 그에게 안정된 느낌을 가져다 주었고 내면의 평화를 찾게 했으며, 정신적 방황을 겪던 자신을 격려할 수 있게 하였다.

 

한편 융은 깨어나서 꿈에서 본 영상을 그림으로 옮기면서, 왜 그 그림이 그렇게 중국적으로 보이는지 의아해했다. 며칠 뒤, 리하르트 빌헬름 Richard Wilhelm이 융에게 주석을 달아달라고 하면서 중국의 연금술서, ‘황금꽃의 비밀The Secret of the Golden Flower’ (원제는 태을금화종지太乙金花宗旨입니다) 필사본을 보 냈다. 그것을 읽어본 융은 다른 문화권에서 사용했던 고대의 상징체계 기저에도 공통적인 심리적 배경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2. 원형, 본능, 이미지

 

융은 이미 정신병자들의 망상이 고대의 이미지나 상징이라는 집단적인 저장고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네카이아를 여행할 때 그 자신이 직접 보았던 이미지들도 고대의 저장고의 존재를 확신케 해주었다. 1919년 융은 그러한 기억과 관련하여 최초로 원형archetyp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개인무의식에 덧붙여, 그는 본능instincts과 원형이라는 두 요소로 구성된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이라는 개념을 상정하였다.

 

본능은 필요에 의해서 어떤 행동을 하게 하는 충동이다. 그리고 본능은 새의 귀소본능처럼 생물학적인 성질의 것이다. 본능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 그러나 본능이 행동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지각 자체를 조절하는 선천적이고 무의식적인 이해방식이 있다는 것이 융의 생각이었다. 이것이 바로 원형이다. 원형이란, 모든 정신과정을 결정하는 필수요소로서, ‘직관intuition’의 타고난 형태이다.

본능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형은 우리의 이해방식을 결정한다. 본능과 원형 모두 '집단적'이다. 개인적인 것을 넘어 보편적이고,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내용과 관련이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본능과 원형 또한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원형) 하는 것이 행동하고자 하는 우리의 충동(본능)을 결정한다. 원형을 통한 무의식적 이해apprehension가 본능의 형태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한편, 행동하고자 하는 우리의 충동인 본능 역시 우리가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원형을 결정한다. 정리하면 본능과 원형이 서로서로를 결정해준다는 것이다!


융 자신도 이 논리가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를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인정하였다. 그리고 원형이 본능 자신에 대한 본능의 지각, 혹은 ‘본능의 자화상’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고 제시하였다. 의식이 객관적인 외부세계에 대한 내적 지각인 것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원형은 어떻게 우리 인간의 경험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가? 원형은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며, 오직 이미지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예를 들어보자. 모든 시대와 문화에 걸쳐, 인류는 ‘지혜로운 영혼’과의 영적인 교섭을 상상해왔다. 이런 개념의 가장 공통적인 형태 중 하나가, 수많은 신화와 전설에서 발견되는 늙은 현자의 이미지일 것이다(우리는 이미 필레몬 편에서 늙은 현자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아더왕 전설에 등장하는 마법사 멀린도 좋은 예이다.

그런데 융은 원형원형적 이미지archetypal image를 구분하였다. 원형이 이미 무의식적인 것이라고 정의되기 때문에 그 존재는 가설 속에만 존재한다. 반면 원형적 이미지는 의식세계에서 인식가능하며, 우리가 스스로 원형을 지각하는 방식이 된다.
그래서 원형, 즉 우리의 지각의 방식은 자신을 이미지를 통해 드러내기도 하고, 이미지 뒤에 숨어버리기도 한다. 원형은 원초적인 아이디어primordial ideas와 같다. 그러나 추상적인 원리는 아니다. 원형은 신비적이며numinous, 신성함에 대한 감각으로 충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