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향적 사랑의 극치시대
황우 목사 백낙원
요즘 TV에서 방영되는 동물에 대한 외곡 된 사랑을 보노라면, 내면 저 깊은 곳에서 울화가 치밀 때가 많다.
예를 든다면 강아지나 기타, 다른 애완동물들을 아들딸이라 칭하면서, 업고 다니고, 안고 다니고,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면서, 별에 별 치장을 다하는가 하면, 사람들도 먹기 힘든 고급 식품을 먹이기도 하고, 아내나 남편, 자식보다 더 사랑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곤 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실례를 들어 본다면 얼마 전 TV에 방영된 사례이다. 어떤 부부는 백여 마리도 더 되는 애완견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것도 집안에서 함께 생활하다보니, 과연 개가 사람 집에서 사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 개집에서 사는 것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오로지 강아지들에게 줄 음식을 장만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강아지들에게는 살코기와 계란을 잘 혼합하여 먹이면서도, 출근하는 자기 남편에게는 아침 식사로 밥 한 그릇과 김치 반찬이 전부였다.
그리고 자녀들은 따로 떼어 놓고 오직 강아지를 돌보는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한참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자녀들은 따로 내팽개쳐두고, 강아지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일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말이다. 이런 일들을 잘하는 일이라고 자랑하고 부추기는 방송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라 여긴다.
나는 애완동물을 반려 동물이라 하여 의지하거나 아끼고 사랑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동물의 어려운 처지를 보고 동정하고 도와주는 것은 결코 잘 못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종(種)이나, 자기의 것만 지나치게 사랑하는 사랑을 편향적 사랑이라 부르는데, 정도에 지나치는 편향적 사랑이 문제라는 말이다.
나도 말(馬)을 사랑한다. 그래서 온갖 정성을 다하여 보살피면서 사육한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동물은 어디까지나 동물이다.
애완동물 뿐 아니라, 모든 동물을 사랑해야 하고, 따라서 모든 피조세계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현대는 이렇게 어떤 특정한 것만을 사랑하는 편향적 사랑이 극에 달했다. 그런 열정과 사랑으로 고아나, 독거노인, 혹은 가난한 계층을 사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외국으로 입양되어 가는 많은 아기들이 있다. 특히 장애아의 외국입양시례는 과히 세계적이다. 장애아들을 입양하려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이다.
다치거나 생래적으로 불구가 된 강아지나 다른 동물들을 돌보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몇 천배나 더 귀한 것이 인간의 생명이 아니겠는가.
좀 더 눈을 들어보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지에는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열거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자본주의적 사고의 과열로 말미암아 생긴 음지에서, 살아보려고 발부동치며, 악전고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리고 난치병으로 말미암아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그런데도 이렇게 어떤 특정적인 동물만 사랑하면서, 다른 국면을 보지 못한다면, 여긴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라 여긴다.
어떤 동물 한가지만을 사랑하는 그러한 편향적 사랑 보다는, 모든 인간과 동, 식물을 다 같이 사랑하는 보편적 사랑이 너무도 절실한 때라 여긴다.
(2011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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