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지혜를 어떻게 얻을 것인가?
필자는 하루에 칼럼을 두 개씩 쓴다. 이건 미친 짓이다.ㅎ 보통 글쟁이들도 일주일에 칼럼을 한개 쓰는 것도 버거워한다. 그래서 썼다 지웠다 하면서, 글 쓰는 시간이 보통 고뇌의 과정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칼럼을 쓰게 되었는가? 양이 많아지면 질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그렇게 많이 글을 쓰는 것은 필자의 의도와 전혀 상관이 없다. 필자는 7시경에 일어나 두어 시간의 아침기도를 마치면, 연탄을 갈고 나서 컴퓨터를 켜고 칼럼을 쓰기 시작한다. 그날 쓸 주제는 전날에 떠오르는 팁이나, 성령이 주시는 말씀을 참고하기는 해도, 주로 아침 기도 중에 떠오르는 주제를 메모해 놓은 것 중에서 선택한다. 그리고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 속사포처럼 2,3시간 만에 2개를 마쳐야 한다. 그렇기에 내용을 고민할 시간도, 수정할 시간도 없다. 그냥 하루분량의 칼럼을 꾸역꾸역 쓰는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엄청난 분량의 칼럼을 쓰게 된 원동력은 그동안 1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일 년에 4권 분량의 책을 써왔던 훈련을 통해서이다. 일 년에 4권이라면 10년이면 40여권의 방대한 분량이다. 그중에서 출판사에서 출판을 허락해 주어서 시중에 출판된 책은 대여섯 권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책은 아직도 원고로 남아있다. 그중에는 카페의 게시판에 운영자의 이름으로 옮겨놓은 것들도 있다. 그렇게 많은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따로 없다. 그냥 아침 기도를 마치면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게 필자의 하루 일과였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사역을 위해 하나님께서 훈련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왜 출판될 확률도 없는 책을, 날이면 날마다 주구장창 써야 하는지 몰랐었다. 그냥 써야한다는 의무감에 충실했다고나 할까?ㅎㅎ
그러나 쓸 때마다 주제가 달라지는 칼럼과는 달리, 책을 쓰기 시작하면 한권을 마칠 때까지 주제에 맞추어 일관성 있게 써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원고를 탈고할 때까지 전체적인 주제에 충실한지, 창의적인 내용인지, 독자들이 충분이 이해할 만한 내용인지 등을 점검하며 신경을 곤두세우며 써야 한다. 그중에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책의 주제에 맞춘 소주제들을 생각해 내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고통스런(?) 작업을 생각보다 쉽게 했었다. 아침 기도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을 부르고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시간을 약 1시간 정도 갖고, 남은 1시간가량을 간구나 중보기도를 한다. 기도를 시작해서 1시간 가량은 오직 하나님을 찾고 부르며 찬양하고 회개하고 감사하는 기도를 하는데, 이때가 바로 성령님과 깊이 사귀는 시간이다. 그 때 기도에 몰입이 되기 시작하면 깨달음으로, 그날 쓸 분량의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신다. 그래서 그 느낌이 들면 즉시 기도자리 옆에 비치해 둔 메모노트를 펼치고 볼펜을 움켜쥔다. 그래서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눈을 감은 채 메모하는 것이다. 이렇게 메모한 것을 대소주제로 삼아 책을 써온 것이다. 말하자면, 책의 대주제와 소주제들은 기도하면서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으로 써왔던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마치고 책상에 앉아 살을 붙이는 시간이 바로 책을 쓰는 시간이다. 그렇게 매일처럼 10여년이 넘게 책을 써왔으니, 사람이 아니라 책 쓰는 기계라도 된 느낌이다.ㅎ
필자가 뜬금없이 이 얘기를 쓰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필자가 어떻게 매일처럼 칼럼을 많이 쓸 수 있는 지, 놀라워하며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필자가 쓰는 주제는 죄다 기도 중에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을 가지고 써왔고, 지금도 그렇게 칼럼을 쓰는 것이다. 물론 필자의 글이 죄다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으로 공급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은 단연코 지혜의 영역이다. 하나님은 지혜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우주를 운행하시고 대자연을 다스리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 성령이 바로 지혜의 신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에게 지혜를 주어, 하는 일마다 풍성하게 해주시는 것이다.
언젠가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내가 너에게 지혜를 많이 주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사실 필자는 사역을 시작하면서 기도할 때마다 다른 간구는 별로 하지 않지만, 유독 지혜를 달라는 기도를 끊이지 않았다. 그간 필자가 벌인 세상일은 실패뿐이었는데, 하나님의 사역을 필자의 지식이나 지혜로 잘 해낼 수 있을지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항상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고, 지금도 여전히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쉬지 않는다.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헬라어의 단어는 ‘소피아’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라는 헬라어는 ‘프로니모스’이다. 이 단어는 ‘비둘기 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운’이라는 구절의 ‘지혜로운’ 이라는 단어이고,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를 말할 때의 단어이며,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를 말할 때의 단어이기도 하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지혜는 ’소피아‘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삶에 적용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지혜로워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능력 있는 종들은 예외 없이 ’프로니모스(지혜로운)‘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는 믿음을 요구하는 충성은 강조하시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받아 지혜롭게 하나님의 일과 세상의 일을 해 나가는 종을 보기가 어렵다. 이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 일을 간과한 때문이다.
베드로는 일자무식의 어부출신으로 좌충우돌하며 어리석은 행위도 곧잘 했지만, 오순절의 성령세례 사건을 겪은 후에는 놀라운 지혜의 사람이 되어, 성경구절을 좔좔 외워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는 성령이 주시는 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받아 삶에 적용할 때, 하는 일마다 열매가 풍성하고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기도를 하고, 탐욕스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교회에 나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내려올 리는 만무하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당신을 기쁘게 하는 종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당신이 하는 일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칭찬받고 싶어 한다면, 하나님의 지혜를 쉬지 말고 간절히 구하시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고, 죄다 그 열매가 풍성한 것은 아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개척교회를 시작하고 사역을 열심히 하지만 속절없이 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선한 일에도 지혜롭게 하지 않는다면 열매가 없다는 반증이다.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고 교회의 직분이 오래되었어도 영혼이 평안하지 못하고 삶에 열매가 없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없었기 때문이고, 이는 지혜를 간청하는 기도의 습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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