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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위선이 하나님을 슬프게 한다.|

Joyfule 2015. 5. 31. 20:24

    당신의 위선이 하나님을 슬프게 한다.|

 

 

최근 어느 분이 추도예배와 장례예배가 죄라는 글을 게시판에 올려서 댓글로 갑론을박이 되었기에, 게시판이 혼잡해질 것 같아 필자의 견해를 올려놓았더니 이 역시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추도예배와 장례예배가 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귀신을 섬기는 유교의 제사법을 기독교방식의 예배의식으로 모양만 바꾸어놓았기에 귀신을 섬긴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만약 예배의식을 통해서 조상을 우상시하고 경배한다면 귀신을 섬기는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추도예배의 목적으로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생전에 고인의 신앙을 추모하고 본받는 것이 왜 우상숭배인가? 그리고 장례예배로 마찬가지이다. 죽은 자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일 지는 몰라도, 자손들이 고인에 대한 예의로서 나쁘지 않다는 게 필자의 견해이다. 물론 추도예배는 제사를 폐지하는 데 있어 저항을 줄이기 위해 편법으로 만든 것이기에 불필요한 예배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추도예배가 어리석은 동기일지는 몰라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례예배도 고인의 생명이 끊어졌으면 이미 낙원이든 음부이든 갈 길이 정해졌을 것이다. 남은 사람이 간절히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별 효과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남은 가족들이 고인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는 행위가 그렇게 극악무도한 죄인가?

 

구약시대의 제사법은 율법대로 절기 때마다, 혹은 죄를 용서받을 필요가 있으면 소나 양을 끌고 와서 제사장에게 주어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이렇게 율법에 소개된 목적 외에 다른 제사는 없었는가? 사울이 전쟁을 앞두고 제사를 드렸다가 사무엘에게 책망 받은 사실은 어려분도 잘 아실 것이다. 그러나 전쟁을 앞두고 제사를 드리라는 내용은 율법에 없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완공하고 낙성식을 거행하면서 일천마리의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렸다. 그게 바로 일천번제라고 성경에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율법에서 지목한 제사목적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도 예배당을 신축하고 임직식을 거행하거나, 새로운 주택에 이사하고 개업을 축하할 때 예배를 드리지 않은가? 동기는 조금씩 다르더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경배하는 행위가 바로 예배의식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작금의 우리네 교회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사도신경으로 시작하여 축도로 끝나는 예배의식을 성경에 그렇게 시행하라는 언급조차 없다. 자신들은 성경에서 언급하지도 않은 예배의식을 관행으로 만들어 시행하면서, 다른 이들의 예배행위를 시시콜콜하게 따져가며 죄이니 아니니 하면서 정죄하는 모양이 우습기도하고 볼썽사납기도 하다. ㅎㅎ

 

하나님은 희생적인 신앙행위나 예배행위를 겉으로 드러난 형식으로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라, 행위의 속내와 동기, 목적을 날카롭게 보시는 분이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다며 안식일을 범한다고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정죄를 하였을 때도, 예수님은 안식일의 정신을 살펴보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은 노동을 금지한 안식일규정을 제정한 율법을 위반하는 행위였지만,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안식일의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또한 안식일에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보리이삭을 손바닥으로 비벼 먹는 행위도, 곡식이삭을 까는 행위는 방아 찧는 노동으로 여겨 안식일 규정을 위반했다고 바리새인들이 힐난했을 때도, 아비아달 제사장 시절에 다윗과 부하들이 배가 고파 제사상에 올린 진설떡을 먹은 예를 들면서, 이는 생명을 살리는 행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재해석하셨다. 그러면서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으로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을 리는 만무하다. 그들은 행동 뒤에 숨은 속내, 동기, 목적 등이 죄라는 것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러면서 율법을 앞세워 남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일에만 혈안이 되는 게, 작금의 우리네 교회가 예수님의 당시의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무에 다를 게 있는가?

 

이런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는 성경에도 없는 주일성수라는 말을 앞세워, 주일날 교회에서 시행하는 1시간짜리 예배의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지옥에라도 갈 것처럼 겁을 주고 있지만, 기도를 쉬는 게 죄라는 성경말씀에는 관심조차 없다. 또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엄청난 죄라도 지었다고 공갈 협박을 하고 있지만, 그 십일조를 드린 헌금이 불의하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였는가에 대해 묻지도 않는다. 거참, 희한한 일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목사들은 교인들이 자신의 말에 순종하지 않으면 이런 저런 성경구절을 앞세워 엄청난 죄책감을 들게 하면서도,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자 성경을 이용하는 가증스러운 행위에 대해 최소한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다. 실로 가증스러운 일이다.

 

목회자들은 교회에서 시행하는 수많은 예배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말하지만, 정작 부족하고 성마른 성품을 고쳐서 거룩한 성품으로 바꾸지 않으면 천국의 자격이 없다는 투의 설교는 언급조차 없다.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헌금을 아낌없이 드리면 엄청난 축복이 내려올 것이라고 말하지만, 교인들이 드린 헌금은 교회를 크게 짓고 담임목사의 럭셔리한 생활비로 충당된다. 그러나 성경에는 십일조헌금의 지출의 최우선 순위는 과부나 고아, 이방인 같은 극빈층을 위한 구제로 사용하라고 명령하는데, 그들이 구제를 위한 지출은 쥐꼬리만큼도 되지 않는다. 거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런 가증스럽고 패악 무도한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는가?

 

그러나 이같은 행태는 목회자들의 탓만이 아니다. 교인들 역시 자신들의 사욕을 채워주고 귀를 간질이는 스승을 두고 달콤한 말의 성찬을 즐기고 있으니까 말이다. 쓴 소리를 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목사들을 교회의 강단에서 쫒아내기 바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고 천국의 자격을 확신하는지, 그들의 후안무치에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다.

 

이렇게 예수님 시절의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나 우리네 교회의 교회지도자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율법의 조항을 앞세워 예수님과 제자들을 정죄한 그들처럼, 우리네 교회와 지도자들 역시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고 있는 일에 여념이 없으니까 말이다. 물론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진흙 속에 파묻혀,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헌신하는 교회와 교회지도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빛 좋은 개살구들만이 자화자찬하고 있는 우리네 교회의 모습이, 예수님 당신의 종교지도자들과 판박이로 닮아있는 상황이 우울하고 슬프게 한다. 사악한 종교지도자들에게 속아서, 아무 것도 모르고 아멘만 하다 지옥으로 던져질게 뻔한 무지하고 어리석은 양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