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당신의 기도를 외면하는게 안 믿어진다고?
댓글러 1 : 저한테 쪽지나 문자보내주실 수 있나요? 성령으로 기도 안한 것도 아니고 육을 위해도 아니고 하나님만을 위해 기도하며 사는데, 질병들은 날로 심해지며 낫지 않습니다. 당신의 말에 신뢰가 안가네요.
필자의 답변 : 제 말에 신뢰가 가지 않는 데, 왜 연락을 하시려고 하지요? 이 블러그에 제 칼럼을 천개가 넘게 올려놓았으니 읽어보시고 신뢰가 가지 않으시면 그만 읽으시면 됩니다. 성령으로 기도했고 하나님만을 위해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만지심이 없다면 둘 중의 하나겠지요. 하나님이 허구이거나, 님의 기도를 하나님이 외면하시는 거겠지요.
댓글러 2 : 힘들어 하시는 분 같은데...하나님께서 기도를 외면하신다는 말씀을, 어찌 목사님께서.... 지체님 ... 너무 상처가 안 되셨길 바랍니다.
위의 댓글들은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의 칼럼에 올리신 내용들이다. 어느 한 분이 제 칼럼에 신뢰가 안 된다고 토로했기에 필자가 그분의 질문에 답변을 올렸다. 그랬더니 다른 어느 분께서 이를 지켜보다가, 필자를 넌지시 비난하면서 그분의 등을 토닥거려 주고 있다. 두 분의 댓글을 보면, 목사인 필자가 싸가지 없이 얘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 필자는 여느 목회자가 지닌 따뜻하고 온화한 성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필자가 얘기한 것이 성경적인가, 아니면 이분들이 생각하는 관점이 성경적인가 하는 것일 게다. 만일 필자의 주장이 비성경적이라면 사이비 종교지도자로 여기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면 되겠고, 성경적이라면 하나님의 명령을 멸시하고 우습게 여기는 징벌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 댓글들을 읽어보면 필자가 어떤 내용의 칼럼을 썼는지 짐작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며 하나님만을 위해 살려고 애썼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이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탄을 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려고 애쓰며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데, 왜 자신의 삶이 불행하며 고통스러운가? 참으로 기이하고 답답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해의 날 수와 달의 수에 들지 않았더라면,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리워야단을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이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자기를 위하여 폐허를 일으킨 세상 임금들과 모사들과 함께 있었을 것이요(욥3:1~14)
위이 구절은 욥이 기가 막힌 재앙과 불행에 빠져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내용이다. 욥은 하나님이 동방의 의인이라고 칭할 정도로 경건하며 자비로운 사람이 없다. 그러나 사탄의 참소로 그 많던 재산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열 명의 자녀들이 한꺼번에 변사로 죽고, 자신의 몸은 악창이 생겨서 피고름이 터지고 아물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며 어서 빨리 불행한 삶이 종식되기를 바라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세친구들이 찾아와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라고 닦달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그래서 욥은 세친구와 논쟁을 벌이며 자신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욥의 처지처럼 기가 막히는 불행에 빠져 삶이 고통스러우신가? 그동안 교회에서 시키는 희생적인 신앙행위와 예배의식에 참석하며, 하나님을 위해 살려고 애쓰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왜 자신에게 이런 불행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욥처럼 의롭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왜 이런 불행이 닥쳤는지 하나님이 원망스럽기 짝이 없다.
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겠으니 내게 대답할지니라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욥40:1~8)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42:1~6)
위의 두 구절은 하나님과 욥의 대화를 함축한 것이다. 욥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욥을 꾸짖고 계시다. 하나님의 말씀의 요지는 네가 아는 게 무엇이며, 내 공의를 부인하겠느냐는 말씀이다. 그러면서 욥의 교만을 들추어내시고 계시다. 그러자 욥이 자신의 교만을 자복하고 회개하자, 하나님은 그의 죄를 용서하시며 갑절의 축복을 내리시며 해피엔딩으로 마치고 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선포하며,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만물보다 더 썩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이 교회에서 요구하는 주일성수와 각종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들이대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으며 하나님을 위해 살고 있다고? 그렇다면 공의로운 하나님의 통치에 감사하며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는데, 왜 자신의 불행을 한탄하며 고통을 토로하고 계신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짓는 죄가 바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좇아 자기 마음대로 산 죄이다. 하나님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으며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대로 완전하고 거룩하게 살라고 명령하신다. 그래서 당신은 그렇게 살고 있는가? 어떻게 완벽하게 살 수 있냐고 항변하실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충족시킬 수 없다. 성령이 내주하여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셔야 비로소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 그래서 쉬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고 성령의 교제를 간구하는 기도의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주장이 옳다면 성경의 약속이 당신의 삶과 영혼에 나타나야 할 것이다. 아니라면 당신이 하나님과 논쟁하여 이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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