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와 전화위복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는 변방에 사는 한 노인이 기르는 말이 도망가고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는데, 그 아들이 말을 타다가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징병(徵兵)을 면하여, 다른 사람처럼 전사(戰死) 하지 않고 살아났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서,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예측할 수 없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또한 전화위복이라는 말도 고사성어 인데, 화가 변하여 복이 되었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필자가 위의 고사성어를 들추는 이유는, 이 두말을 성령께서 해주셨던 까닭이다.
먼저 성령께서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왜 인생은 새옹지마인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길흉화복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람은 자연환경이나 금융환경처럼 막강한 환경의 지배를 받고 거대한 나라의 법과 제도아래서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미약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좋은 일이 생기면 기뻐하다가, 불행한 일이 생기면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슬퍼하는 게 고작인 먼지만도 못한 가벼운 존재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며 대자연을 섭리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크리스천들은, 죄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하는 일마다 형통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네 교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이 행복하고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라면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허구이거나, 아니면 우리네 교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거나 이다. 그러나 필자의 주장을 받아들일 교인들이 한명도 없을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고질병을 비롯한 사업의 실패, 극심한 가난 등의 불행한 사건에 대해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지 누가 말 좀 해주시라.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성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왕이 바로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과 귀신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탄은 세상의 신이자 세상의 임금이라고 불리어지며, 그들이 막강한 권세를 가진 통치자들이고 세상의 지배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를 지배하는가? 바로 인간들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은 누구를 다스리는가? 이 역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똑같은 사람은 두 존재가 통치하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의인이라고 부르는 자신의 백성을 다스리시고, 악한 영들은 죄인들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의 삶을 찬찬히 살펴보면 의인인지 악인인지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필자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물론 당신의 생각은 자유이다. 그러나 필자는 성경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필자가 주장의 진위는, 당신이 심판대 앞에서 설 때 확인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필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괜찮지만, 성경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은 가증스런 죄악을 짓고 있다는 것쯤은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어쨌든 사람들의 인생이 새옹지마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아니라 악한 영들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인 셈이다. 그래서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자신의 인생이 악한 영들에게 도륙당하여 불행과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유이다.
전화위복은 필자가 대전의 원룸에서 두어 가정과 함께 한마음교회를 섬기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하신 말씀이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A집사의 아들이 친구들에게 모함을 당해 억울하게 폭력가해자로 몰려 ,학교폭력위원회의 권고로 전학을 강요당한데 그치지 않고, 피해자 부모의 고발로 경찰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던 암울한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에 성령께서 필자에게 하신 말씀이다. 결론적으로, 그 자녀는 전학대신 홈스쿨링을 택했으며 검정고시를 거쳐 특목고에 합격했다. 만약 그 학교에 남아있었다면 특목고에 갈 성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특목고는 국가의 권고로 검정고시출신을 전혀 배제할 수 없어서, 단 한명의 학생을 합격시켰는데 A집사의 아들이 그 특혜를 받았다. 이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불행한 사건이라고 할지라도 기가 막힌 축복으로 바꾸어 주신다. 물론 필자는 그 자녀에게 지금의 기도를 훈련시켰으며, 어린 나이에 어른도 겪지 못하는 억울하고 힘든 상황이 되자 땀을 뻘뻘 흘리며 기도훈련을 따라했다. 그 뿐이 아니다. 성령께서는 이 아이의 장래까지도 선한 길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니까 이보다 더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라면 어떤 억울하고 불행한 사건에 빠져 고통스럽더라도,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건져주시고 축복해주실 것이다. 말하자면, 전화위복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위로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성령의 명령에 따라 필자가 대전의 원룸을 떠나 충주에서 영성학교를 시작하고 나서의 일이다. 그 가족은 대전에서 충주로 오가는 신앙생활이 힘들어서인지, 영성학교를 떠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그 때 특목고에 입학한 아이도 작년에 졸업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족이 영성학교를 떠나고 난 뒤 소식이 끊겨서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간간이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재학 중에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겪다가 대학에 실패하고 재수를 한다고 한다.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예전의 일처럼 전화위복의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한다면 더 좋은 인생으로 인도 하실 것이다. 그렇지만 그 가족이 여전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들이고, 예전처럼 그 아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의 습관을 삶에서 실천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성립되어야 할 것이다. 아니라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전화위복의 삶은 끝나고, 세상 사람들의 삶처럼 새옹지마의 삶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인생은 새옹지마의 삶인가 전화위복인가? 우리네 교회에서는 이 땅에서 고난을 참고 인내하고 천국에 들어가면 엄청난 상급이 있을 것이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러면서 초대교회의 교인들의 예를 들고 있다. 초대교인들의 상황은 사면초가의 박해와 고난의 삶이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기쁘고 평안했다는 것을 잊지 마시라. 성경은 영혼이 잘되는 것처럼, 하는 일마다 형통하고 건강해진다고 말하고 있다. 당신의 삶과 영혼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평안과 형통이 없는데도, 여전히 종교적인 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반복하면서 자기 의를 내세우고 자기만족을 하고 있다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전철을 밟다가 지옥의 불길에 던져질 것이다. 새옹지마의 삶은 귀신들의 지배를 받는 죄인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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