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성을 위한 ━━/김요한목사

현재와 장차 사이를 늘려 잡지 말라

Joyfule 2023. 6. 1. 23:02





    현재와 장차 사이를 늘려 잡지 말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장18절)

 

하나님의 계시는 일시적이며 점진적으로 계속이 됩니다.

이를 테면 번쩍하고 빛을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찬송가 중에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영광의 그 빛이 비치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하는 가사가 있습니다.

원래 작사가는 이렇게 고백하고 주를 앙망하고 이 찬송을 불렀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말로는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하고

바꿔 놨습니다. 지금 당장 그 영광을 보지 않고 장차 될 일이니 느긋하겠지요.

이 찬송이 미국에서는 치유가 되는 중요한 찬송의 목록이라고 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려고 사모하는 영혼에 그 영광이 비치면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영광에 의해 문제가 사라집니다.

기독교는 십자가가 정점이 아니라 부활이 신앙의 방점이며 영광을 향한 출발점입니다.

 

아담 안에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사활로

인해 다시 살아나서 그 부활과 생명에 연합이 된 회개와 세례(침례)를

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를 통해

주의 죽으심과 함께 장사가 되고 주의 살으심에 연합이 되어 부활한 믿음에

의해 의를 얻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어 그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합니다(롬5:1-2)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 송도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이렇습니다. 이 가사가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만이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영을 좇아 사는

십자가의 고난의 대가를 지불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생명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을 얻는 방법과 절차와 과정이 없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아가는 건 말잔치뿐입니다.

 

따라서 회개를 해야 한다고, 또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강조하면 저쪽 사람입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회개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는데 주야장천 회개하라고 강조하고 죽어야 된다는 타령을 한다니...

영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빛과 어둠의 간극을 알고, 영과 육의 경계를

알고,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경건을 연습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자신의 육신을 성령의 능력으로 제어하는 것이

현재의 고난이며 그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따르면 곧장 바로 성령의

감동이 위로부터 임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그 심령에 비치게 됩니다.

따라서 참 회개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예정하신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부르심을 받고 거기에서 믿고 의롭다 함을 얻고 영화롭게 되었습니다(롬8:30)

이건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안 겁니다.

그로인해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거룩과 영광을 점진적으로 얻어

빛과 생명과 사랑의 사람으로 점진적으로 변모되어 갑니다.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신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의한 자신의 부활이 없으면 주의 재림 때에나 부활한다는 신앙에 붙잡히겠지요.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부활하셨으므로 나도 장차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의 그물에 갇혀 있을까요?

새 생명의 부활은 소망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현재적인 구원이며 영광스러운 즐거움입니다.

당연히 우리의 몸이 바뀌는 형체의 부활은 구름타고 오시는 그 날에 이루어지지요.

지금 세상의 영광과 서로 주고받는 영광에 맛들인 사람들에겐

영광이 기약이 이르도록 하고 장차를 할 수 있는 대로 멀리 두는 것이 더 좋겠지요.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부름을 받아 의롭게 되고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당장 그 영광을 보지 않으면 아무런 맛도 없는 무를 씹는 듯 무미건조하겠지요.

창세전에 예정이 된 그 영광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주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드려 우리를 죄에서 건져 의롭게 하시고 그 영광으로 부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그 방법과 절차와 과정을 따라가는 회개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성령세례로 그 영광을 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현재와 장차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에 의해

이쪽저쪽의 양면이라는 걸 깨닫고 영으로 육체를 제어하는 현재 고난으로

그 영광이 나타나는 십자가의 도를 끌어안고 그 영광을 간절히 사모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의 자유(롬8:21)에 이르기를 학수고대하면서 말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