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예지(仁義禮智) - 효의 근본정신
삼국유사에 실린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손순
손순은 모량리 사람이니 아버지는 학산이다.
아버지가 죽자 아내와 함께 품을 팔아 양식을 얻어 늙은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어머니의 이름은 운오였다.
항상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아이를 보고 민망히 여겨 그 아내에게 말했다.
"아이는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구하기 어렵소.
그런데 아이가 어머님 음식을 빼앗아 먹어서 어머님은 굶주림이 심하시니
이 아이를 땅에 묻어서 어머님의 배를 부르게 해 드려야겠소.”
이에 아이를 업고 취산 북쪽들에 가서 땅을 파다가 이상한 석종을 얻었다.
부부는 놀라, 잠깐 나무 위에 걸어놓고 시험 삼아 두드리며 아내가 말했다.
“이상한 물건을 얻은 것은 필경 이 아이의 복인 듯하니
이 아이를 묻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남편도 이 말을 옳게 여겨 아이와 석종을 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종을 들보에 매달고 두드렸더니 그 소리가 대궐에까지 들렸다.
흥덕왕이 이 소리를 듣고
“서쪽들에서 이상한 종소리가 나는데 보통 종소리가 아니니 빨리 가서 조사해 보라.”
그 집에 가서 조사해보고 그 사실을 아뢰니
“옛날 곽거가 아들을 땅에 묻자 하늘에서 금솥을 내렸더니,
이번에는 손순이 그 아이를 묻자 땅 속에서 석종이 솟아 나왔으니
전세의 효도와 후세의 효도를 천지가 함께 보시는 것이로구나.”
이에 집 한 채를 내리고 해마다 벼 50석을 주어 효성을 칭찬했다.
빈녀양모
분황사 동쪽 마을에 나이 20세 안팎의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눈이 먼 어머니를 껴안고 통곡하므로 그 까닭을 물으니,
그녀는 집이 가난해서 어머니를 봉양한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
마침 흉년이 들어 살기 어렵게 되어 품을 팔아 곡식 30석을 얻어서
주인집에 맡겨 놓고 일을 해왔다.
이렇게 한 지 며칠이 되자, 어머니께서
“전일에 거친 음식을 먹을 때는 마음이 편하더니,
요새 쌀밥을 먹어도 오히려 편안치 못하니 어찌된 일이냐?”
“어머니의 입만 봉양하고 마음을 편안케 해주지 못함 탄식하여 울고 있는 것이요.”
하는 것이었다.
효종랑은 이 말을 듣고 측은히 여겨 곡식 100석을 보냈다.
낭의 부모도 옷 한 벌을 보냈으며, 낭의 무리들도 곡식 1000석을 거두어 보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진성왕은 곡식 500석과 집 한 채를 주고,
그 마을을 ‘효양리’ 그 집을 ‘양존사’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