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예지 (仁義禮智) - 효의 근본정신
삼국유사에 실린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지은
효녀 지은은 신라 연권의 딸인데,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그 어머니를 봉양하여 나이 32세가 되었으나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봉양할 것이 없으면
품팔이도 하며 밥을 빌어다 먹이기도 하였다.
얼마 후 쌀 10여석을 받고 종으로 팔렸다.
그 어머니가 이르기를
“지난날에는 밥을 먹어도 달았는데 요즘은 밥맛이 전만 못하고 마음이 편치 못하다.”
하였다.
그 때 효종랑이 보고 돌아가 부모님께 청하여
조 백 석과 의복 등을 실어 보내주고 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게 하였다.
그 마을을 ‘효양방’이라 하였다.
효종랑도 왕의 형인 헌강왕의 딸을 아내를 삼았다.
설씨녀
설씨녀는 보잘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행동이 단정하여
부러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니 감히 범하지 못하였다.
진평왕 때 그 아버지가 늙은 나이로 군에 가게 되자,
그녀는 늙고 병든 그 아버지를 차마 여자로서 모시고 따라 갈 수가 없어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때 사량부에 사는 소년 가실이
그녀의 아버지가 군에 가는 것을 근심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설씨에게 청하여 대신 군에 나갔다가 교대하고 돌아왔다.
마침내 그녀는 가실과 가정을 이루어 오래오래 살았다.
위와 같은 효의 사례들은 주로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것으로
문헌의 기록으로는 그 유래가 가장 오래 된 것이다.
이 사실로 보아 우리나라의 효행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조선시대의 삼강행실도 등으로 이어져
주요 국가 정책으로 권장되었다.
출처 :한국상담교육원 생명존중미래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 아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