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이 때 나는 걷기 시작했다.
아가씨들은 이미 나보다 먼저 별생각 없이 앞으로 걸어가 버려
조던의 말은 허공을 향해 중얼거리는 넋두리가 되고 말았다.
조던은 가냘프고 금빛이 도는 팔로 내 팔을 잡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팔짱을 낀 채 계단을 내려와 정원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칵테일 쟁반이 우리에게로 전달되었고,
우리는 노란 드레스를 입은 그 두 아가씨와
또 다른 세 남자와 함께 같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남자들은 멈블(아무렇게나 이름을 대는 자) 씨라고 소개되었다.
"이 저택의 파티에 자주 오시나요?"
조던이 옆에 앉은 아가씨에게 물었따.
"얼마 전 당신을 만난 파티가 최근에 참석한 파티예요."
그 아가씨가 빠르면서도 자신에 찬 말투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친구를 돌아다보며 물었다.
"루실, 너도 그렇지?"
루실도 역시 그렇다고 했다.
"저는 이런 파티를 무척 좋아해요."
루실이 말했다.
"저는 아주 자연스럽게 생활하지요.
그래서 언제나 즐겁지요. 지난번 파티에서 제 가운이 의자에 걸려 찢어졌었지요.
그러자 그분이 저의 이름과 주소를 물었어요.
그로부터 1주일도 못 돼서 전 크로이리어 양장점으로부터
이브닝 드레스가 들어 있는 소포를 받았어요."
"그 옷을 갖고 있나요?"
조던이 물었다.
"그럼은요. 갖고 있고말고요.
오늘 밤에 입고 올 생각이었는데 가슴 둘레가 너무 커서 수선을 부탁했어요.
라벤더빛 구슬이 달린, 파란 가스 빛 드레스인데 265달러나 하는 것이라나봐요."
"그런 식으로 호의를 지나치게 보이는 사람은 어딘지 이상한 데가 있어요."
다른 아가씨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분은 말썽이 나는 것을 원치 않지요."
"누가 원치 않는다는 것이지요?"
내가 물었다.
"개츠비 씨지 누구겠어요. 누군가 말해 주었는데..."
두 아가씨와 조던은 친근한 듯 서로 몸을 기댔다.
"누가 그러던데 말이에요, 사람들은 그분이 전에 사람을 죽인 적이 있대요."
순간 모두가 몸서리를 쳤다.
세 명의 멈블 씨는 몸을 앞으로 굽히고 좀더 자세히 듣기 위해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런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루실이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하고 나섰다.
"그보다는 전쟁중에 독일의 스파이였을 가능성이 더 많아."
세 남자 가운데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와 함께 독일에서 자란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하고 한 남자가 자신 있게 말했다.
"어머, 그건 잘못 전해진 이야기예요."
처음 말했던 아가씨가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분은 전쟁중에 계속 미국에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자기의 말을 믿는 눈치를 보이자
그녀는 몸을 앞으로 굽히며 한층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무도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때 그분을 한 번 쳐다보세요.
사람을 죽인 것임에 틀림없어요."
그 아가씨는 눈살을 찌푸리고 몸서리를 쳤다. 루실도 몸서리를 쳤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두 몸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며 개츠비를 찾았다.
이 세상에서 별로 화제의 대상이 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쑥덕공론이 나온다는 것은 결국 개츠비 자신이
남들에게 그런 낭만적인 억측을 하도록 충동질했다는 증거이다.
첫 번째 저녁 식사-
자정이 지나서 또 한 번 있을 예정이다-가 막 차려지고 있을 때
조던이 자기의 일행과 함께 식사를 하자고 초대했다.
그들은 정원의 한쪽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세 쌍의 부부와 혈기왕성한 보디가드격인 그 대학생은
조만간에 그녀가 자기에게 굴복해 어느 정도
자기에게 몸을 내맡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 일행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대신
한결같이 위엄 있는 자세를 취하면서 고상한 척 거만을 떨었다
-이스트에그가 웨스트에그에게 스스로를 낮추기는 하나
분광기를 통해서 보는 것 같은 웨스트에
그의 활기 찬 흥겨움을 조심스럽게 경계하고 있었다.
"우리 밖으로 나가요."
따분하고 어색한 시간이 30분쯤 지났을 때 조던이 귓속말로 말했다.
"이 곳은 나로 하여금 너무 점잔을 빼게 해요."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던은 지금부터 우리는 이 집 주인을 찾으러 간다는 설명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주인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해하는 것 같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 대학생은 냉소적이며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나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먼저 바를 둘러보았는데, 그 곳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개츠비는 없었다.
그녀는 계단 꼭대기에서도 그를 찾아 내지 못했다. 베란다에도 그는 없었다.
그러다 우리는 우연히 묵직해 보이는 문을 열고 천장이 높은 고딕 서재로 들어갔다.
그 방의 벽은 조각이 된 영국산 참나무 널빤지로 되어 있었는데,
그것들은 해외의 어느 폐허에서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올빼미 눈 같은 커다란 안경을 쓴 건장한 중년 남자가
술에 약간 취한 듯 커다란 테이블 모서리에 걸터앉아서
서가들을 불안한 눈초리로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당황한 듯 몸을 홱 돌리더니
조던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당신들은 이 곳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는 성급하게 물었다.
"뭘 말인가요?"
그는 서가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저것에 대해서 말이요. 당신이 일부러 확인하려고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
내가 확인했으니까. 저것들은 진짜요."
"저기 있는 책들 말인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진짜요-페이지뿐만 아니라 뭐든지 다 있소.
나는 지금까지 저것들이 그저 보기 좋은, 장식용일 거라고 생각했었소.
그런데 실은 저것들은 완벽한 진짜라오.
페이지하며 그리고... 자! 내가 보여 드리지요."
우리가 의아해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서가로 달려가더니 '스토더드 강의록' 제1권을 들고 돌아왔다.
"보시오!"
그는 한층 신이 나서 소리 질렀다.
"이건 진짜 인쇄물입니다.
이게 날 우롱했어요. 이것은 진짜 빌래스코입니다.
이건 하나의 승리입니다.
완벽하기 이를 데 없지요. 기막힌 리얼리즘이에요.
언제 멈춰야 하는지도 다 알고 있지요. 책장도 자르지 않았어요.
그런데 당신은 이 곳에 무슨 일로 오셨죠? 뭘 기대하고 있지요?"
그는 내 손에서 책을 홱 낚아채 한 권이라도 빠지면
서재 전체가 무너져 버리기 쉽다고 중얼거리면서
그것을 서가의 제자리에 급히 갖다 꽂았다.
"그런데 누가 당신을 데리고 왔소?"
그는 다그쳐 물었다.
"아니면 당신 스스로 온 것이오? 난 이 곳에 이끌려 왔다오.
대부분의 사람이 나처럼 이끌려 오지요."
조던은 대답하지 않고 즐거운 표정으로 알 수 없는 신사를 쳐다보았다.
"난 루즈벨트라는 여자에게 이끌려 왔답니다."
그는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클로드 루즈벨트 부인 말입니다. 그녀를 아시나요?
난 어젯밤에 어디선가 그녀를 만났지요. 난 일주일쯤 전부터 술에 취해 있답니다.
서재에 앉아 있으면 혹시 정신이 들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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