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토스토프 작곡의 음악은 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곡이 시작되자마자 나의 관심은 대리석 계단에 혼자 서서 흐뭇한 표정으로 이 그룹에서 저 그룹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는 개츠비에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햇볕에 그을린 그의 피부는 매력적으로 보였고 짧은 머리는 매일 다듬는 듯 정갈하게 보였다. 그에게선 어두운 면이라고는 조금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가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손님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서로 우애의 흥겨움이 더해 갈수록 그의 행동은 더욱 냉철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계 재즈사'가 끝났을 때, 아가씨들은 연회 기분을 내면서 강아지처럼 아양을 부리며 남자들 어깨에 머리를 기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이 부축해 주리라는 것을 알고 장난스럽게 남자들의 품에 슬쩍 쓰러지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몰려 있는 사람들 한가운데로 벌렁 눕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떤 여자도 개츠비 쪽으로 드러눕지 않았다. 프랑스식 단발머리를 한 아가씨도 그의 어깨를 건드리지 못했으며, 어떤 4중창도 그를 무리의 틈에 끼이게 하지는 못했다. "실례합니다." 개츠비의 하인이 갑자기 우리 곁으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베이커 양이시죠?" 그가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주인께서 당신하고만 조용히 말씀을 나누고 싶으시답니다." "나하고요?" 그녀는 놀라서 외쳤다. "그렇습니다, 아가씨." 그녀는 의외라는 듯이 놀란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리고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천천히 일어나서는 하인을 따라 저택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이 때 비로소 그녀가 야회복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야회복만이 아니라 어떤 옷을 입어도 운동복처럼 보였다. 따라서 그녀의 몸놀림에서는 마치 맑게 갠 시원한 아침에 골프 코스를 따라 걷는 법을 처음 배운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쾌활함을 느낄 수 있었다. 커다란 방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노란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고, 잘 알려진 합창단에서 온, 키가 크고 붉은 머리를 한 젊은 여자가 그 옆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는 샴페인을 제법 많이 마셨고, 노래를 부르는 동안 세상만사는 너무너무 슬프다고 제멋대로 단정짓고 있었다- 그녀는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울기도 했다. 노래의 쉬는 부분을 그녀는 한숨과 흐느낌으로 메우고는 다시 떨리는 소프라노로 서정곡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눈물이 그녀의 두 뺨으로 흘러내렸으나 거침없이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짙게 화장한 속눈썹이 흡수하고 난 나머지 눈물만 검정색 줄기가 되어 느리게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얼굴 위의 검정색 눈물을 음표로 여기고 노래하고 있다고 익살을 떨자, 그녀는 두 손을 쳐들고 의자에 쓰러져서는 샴페인에 취해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저 여자는 남편과 싸움을 했었어요." 내 곁에 있던 한 아가씨가 얘기해 주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아 있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 남편들과 다투고 있었다. 조던의 일행이었던, 이스트에그에서 온 4중창단도 서로 의견이 엇갈려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그들 중 한 남자가 호기심에 차서 어떤 젊은 여배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처음에는 모른 척하고 웃어넘기려고 했으나 끝내는 질투의 화신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이따금씩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갑자기 남편 곁에 나타나서 그의 귀에 대고, "당신 약속했잖아요!"하고 다그쳤다. 집으로 돌아가기를 주저하는 사람은 바람난 남자들만이 아니었다. 홀엔 뒤늦게 술에서 깨어나 한심스러울 정도로 말똥말똥한 두 남자와 굉장히 화가 난 그들의 아내들만 남아 있었다. 그 아내들은 약간 높은 목소리로 서로 위로의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보기만 하면 저 사람은 집에 가고 싶어한다니까요." "그런 이기적인 사람은 내 생전에 본 적이 없어요." "우리는 언제나 가장 먼저 돌아가는 사람이었어요." "우리 부부도 그런걸요." "한데 오늘 밤엔 아마 우리가 마지막 사람이 되겠지요." 한 남자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오케스트라는 떠난 지 30분이나 되었어요." 이런 악의에 찬 마음씨를 가진 사람은 믿을 수가 없다는 데에 아내들의 의견이 일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말다툼은 쉽게 끝이 나고, 두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둠 속으로 비틀거리며 사라져 갔다. 나는 홀에서 하인이 모자를 가져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때 서재의 문이 열리고 조던 베이커와 개츠비가 나왔다. 그는 그녀에게 어떤 마지막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태도에서 엿보이던 진지함은 몇몇 사람들이 작별 인사를 하려고 다가가자 갑자기 형식적인 자세로 바뀌어 버렸다. 조던 일행은 더 이상 못 기다리겠다는 듯이 복도에서 그녀를 불러 댔지만, 그녀는 나와 악수를 하느라 잠시 시간을 끌었다. "저는 방금 아주 놀라운 얘기를 들었어요." 그녀는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우리가 저 방에서 얼마 동안이나 있었지요?" "글쎄요, 약 한 시간 정도 된 것 같은데."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그녀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렇지만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고 선생님께 궁금증만 남긴 채 오늘은 그만 헤어져야겠어요." 그녀는 내 얼굴 앞에서 귀엽게 하품을 했다. "꼭 저를 만나러 와 주세요. ...전화 번호부엔... 시거니 하워드 부인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어요. 저의 숙모예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급히 떠나갔다 -그녀는 문 앞에서 녹아들 듯 일행 속으로 들어가 갈색 손을 흔들며 쾌활하게 작별 인사를 했다. 처음 방문한 처지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을 조금 부끄러워하면서도 나는 개츠비를 둘러싸고 있는 마지막 손님들 틈에 끼이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이른 저녁시간부터 그를 찾아다녔던 사실을 설명하고 정원에서 그를 알아보지 못한 데 대해 사과하고 싶었다. "천만에요. 그럴 수도 있지요."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미소를 띄며 말했다. "그런 생각은 두 번 다시 하지 마세요, 친구분." 이 친근한 말투는 그저 다짐하듯이 내 어깨를 쓰다듬는 그의 손이 감촉 이상의 친밀감은 갖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내일 아침 9시에 우리가 수상기를 타기로 한 걸 잊지 마세요. 9시입니다." 바로 이 때 하인이 그의 어깨 뒤에서 말했다. "필라델피아에서 전화입니다." "알았네, 곧 가도록 하지. 곧 받겠다고 말해 주게.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히 가세요." 그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러자 마치 그가 늘 열망하고 있기나 했던 것처럼 내가 마지막 손님들 축에 끼인 것에 흐뭇한 의의가 있는 듯이 여겨졌다. "안녕히 가십시오, 친구분. 안녕히 가세요." 그러나 계단을 내려오며 나는 파티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관문에서 50피트 가량 떨어진 곳에서 10여 개의 헤드라이트가 뒤죽박죽 섞여서 괴상한 광경을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길 옆 도랑 속에 저택의 차고를 떠난 지 2분도 안되어서 쿠페형 새 자동차가 오른쪽 차체를 위로 하고 바퀴 하나가 흉하게 빠진 채 처박혀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벽이 날카롭게 튀어나온 것이 바퀴가 빠져나간 것을 설명하고 있었으며, 그 광경을 5,6명의 운전사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보고 있었다. 구경을 하는 운전사들의 차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뒤에서 오는 차들은 거칠고 시끄러운 경적 소리를 계속 내서 그러잖아도 이미 혼란스러운 상태를 더욱 심하게 했다. 먼지 방지용의 긴 외투를 입은 한 사람이 사고가 난 차에서 빠져나오더니 길 한가운데 멈춰 서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자기 차에서 빠져나간 바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옮겼다. "보십시오!" 그는 설명했다. "차가 개천에 처박혀 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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