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그는 차가 개천에 빠졌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그가 그것을 의외로 여기고 있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나는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그는 조금 전에 개츠비의 서재에 앉아 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되셨습니까?"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난 기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니까요!"
그는 딱 잘라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벽을 들이받았나요?"
"나에게 묻지 마시오."
마치 올빼미 눈 같은 안경을 낀 그 남자는
이 사고와 자기는 관계가 없다는 태도로 말했다.
"기계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니까요.
전혀 몰라요. 내가 아는 것이라곤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뿐이에요."
"운전이 서투르다면 밤에 운전을 하지 말았어야지요."
"운전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는 화를 내며 변명했다.
"그래서 운전대를 잡을 생각조차 없었어요."
구경꾼들은 그의 거친 말투에 감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자살하려고 그랬어요?"
"바퀴 하나만 빠진 게 천만다행이었소. 운전도 서투르고 할 마음도 없었다면서요!"
"알아듣지 못하시는구요."
사고를 낸 사람이 말했다.
"난 운전을 하지 않았어요. 차 안에 또 한 사람이 있어요."
"뭐라구요!"
이 말에 모두들 깜짝 놀랐는데, 쿠페형 차의 문이 조금씩 열리며
'아이고, 아이고.' 하며 길게 끄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군중들은-그 새 군중이라 불릴 정도로 사람이 늘어났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뒤로 물러났다.
차의 문이 완전히 열리자 순간적으로 침묵이 흘렀다.
그러자 아주 창백한 얼굴의 사나이가
부서진 차에서 비틀거리며 나오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더니 한 부분씩을 차례로 드러내더니
엄청나게 큰 무도화를 신은 발로 더듬더듬 땅을 밟아 보았다.
헤드라이트의 불빛으로 눈이 부시고,
또 쉴새없이 울려 대는 경적 소리에 어리둥절해진 그 유령 같은 남자는
잠시 몸을 비틀거린 후에야 먼지 방지용의 긴 외투를 입은 그 사람을 알아보았다.
"어떻게 된 거죠?"
그는 침착한 말투로 물었다.
"우리 차의 휘발유가 떨어진 건가요?"
"저걸 보시오!"
대여섯 사람이 손가락으로 빠져나간 바퀴를 가리켰다
그 남자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더니 그게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이라도 하듯이 위를 쳐다보았다.
"차에서 빠져나간 거요."
누군가가 설명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차가 멈춘 것도 몰랐다오."
침묵이 흘렀다.
곧 그는 길게 숨을 내쉬고 어깨를 쭉 펴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주유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 주시겠습니까?"
최소한 10여 명의 사람들
-그들 중 몇 명은 부유해 보였다-
이 바퀴와 차는 이제 어떤 방법으로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그에게 설명했다.
"후진해서 빠져 나와야겠어."
잠시 생각을 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후진 기어로 바꿔 넣으면 돼요."
"하지만 바퀴가 하나 없잖아요."
그는 주저했다.
"한번 해봐서 손해될 것은 없지요."
붕붕거리는 소리가 음으로 바뀌었을 때 나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했다.
얄팍하고 둥근 달이 개츠비의 저택 위를 비춤으로써
밤을 여전히 멋지게 해주고 있었고, 아직까지 불빛이 환한 정원에서는
웃음소리와 이야기 소리가 끊기지 않고 들려 오고 있었다.
창문들과 커다란 문들로부터 갑자기 공허감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고,
그 공허감은 현관에 서서 손을 들어 형식적인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 주인의 모습을 너무나도 외롭게 보이게 했다.
이제까지 쓴 것을 다시 쭉 읽어보니 몇 주일 전의 일 가운데
사흘 밤 동안에 일어났던 사건들만 얽매여 강조해서 쓴 느낌이 든다.
그러나 실은 그 반대로 그것들은 지난 여름철에 일어난 많은 사건 중에서,
한낱 우발적인 몇 가지 사건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후 오랫동안
나 개인의 일들에 몰두했던 것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사건들이었다.
나는 틈틈이 일을 했다.
이른 아침 프로비티 신탁 회사를 향해 뉴욕 북부 지역의
하얀 건물들 사이를 서둘러 빠져나갈 때면
햇빛은 내 그림자를 서쪽으로 쭉 뻗게 해 주었다.
나는 사무원들이나 채권 외판원들과 서로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해졌으며,
그들과 함께 컴컴하고 북적거리는 식당에서
작은 돼지고기 소시지와 으깬 감자, 그리고 커피로 점심을 대신하곤 했다.
그때 나는 저지 시에 살면서 경리과에 근무하던 아가씨와 잠시 사귀고 있었는데,
그녀의 오빠가 나에게 던지는 시선이 좋지 않은 것을 눈치채고
그녀가 휴가를 떠난 7월에 조용히 관계를 정리했다.
그 즈음 나는 저녁 식사를 늘 예일 클럽에서 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그 시간은
나의 하루 중에서 가장 우울한 시간이 되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나는 이층의 도서실에 올라가서
투자와 유가 증권 공부를 하느라고 시간을 보냈다.
그 근처에는 소란을 피우는 두세 사람이 있었으나
그들이 도서실에는 절대로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곳은 공부하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장소였다.
그 다음에는 기분이 좋은 밤이면 나는
에디슨 가를 천천히 걸어 내려가서 오래 된 머레이힐 호텔을 지나
33번가를 건너 펜실베니아 역까지 걷곤 했다.
나는 밤이면 느껴지는 그 활기차고 모험적인 기분,
그리고 끊임없이 오가는 연인들과 자동차 행렬이
우리의 불안한 눈에 안겨 주는 만족감으로 뉴욕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5번가를 걸어가며 군중들 속에서 아름다운 여자들을 찾아 내
곧 그녀들의 생활 속으로 빠져드는 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를 좋아했는데,
그런 일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으며, 따라서 뭐라고 책망할 사람도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때때로 으슥한 길모퉁이에 있는
그녀들의 아파트까지 따라가곤 했다.
그러면 그녀들은 나를 향해 살짝 돌아보고
미소를 짓고 나서 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해가 질 때면 가끔 나는 이상한 기분 속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자주 고독감에 휩싸였는데,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그것을 느꼈다.
거리의 창문들 앞을 서성거리면서 너절한 식당에서의
조촐한 식사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가난한 사무원들
-저녁의 어둠 속에서 밤과 인생의 가장 황홀한 순간들을
헛되게 낭비하고 있는 젊은 사무원들에게서 나는 그 고독감을 느꼈다.
그리고 저녁 8시가 되어 황량한 40번가의 골목길에 있는
극장 지대로 지나가다 보면 부르릉거리는 택시들이
다섯 줄씩 질서정연하게 들어서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나는 왠지 서글퍼졌다.
택시를 탄 사람들은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서로 몸을 기대고 앉아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재미없는 농담에도 곧잘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들이 피워 대는 담배는 차안의 사람들 모습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욱했다.
그럴 때면 나는 즐거운 곳으로 서둘러 가고 싶었으며
그들의 은밀한 흥분을 나도 나누어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빌었다.
나는 한동안 조던 베이커를 만나지 못하고
지내다가 한여름이 되어서야 다시 그녀를 만났다.
나는 처음에는 그녀와 함께 이곳저곳 같이 다니는 것에 우쭐함을 느꼈었다.
왜냐하면 이 도시에서 골프 챔피언인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사실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종의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녀가 세상을 향해 내세우는 그 지루해 보이는
거만스러운 얼굴 뒤에는 무엇인가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허식이란 처음에는 그렇지 않지만
결국은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게 마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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