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최용우의 햇볕같은 이야기
오, 이 단순함...
언젠가 장롱을 정리하다가 '최용우' 도장이 한 주먹이나 나왔었습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도장을 잃어버리고 새로 만들곤 했었는데,
알고 보니 도장은 중요한 물건이라며
아내가 너무 너무 잘 숨겨 두는 바람에 숨긴 본인도 못 찾은 것이었습니다.
통장을 새로 바꾸어야 하는데, 아내가 또 도장을 안 내놓습니다.
지난번에 분명히 줬다고 하면서 모른다고 합니다.
저는 안 받았다고 해 보지만 아내를 말로 이길 수는 없습니다.
아내가 '그때 도장을 당신에게 다 줬었다'고 끝까지 주장하니
할 수 없이 도장을 새로 파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아내가 도장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내는 A형 혈액형에 완벽주의 우울질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건을 얼마나 꼼꼼하게 잘 챙기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너무 잘 챙겨서 시간이 지나면
어디다 뒀는지 잊어버리고 보물찾기를 해야 합니다.
반면에 저는 물건 못 챙기기 선수입니다.
하지만 저는 물건을 잘 안 잃어버립니다.
왜냐하면 잡동사니 물건을 오직 한 군데
서랍 속에 집어 넣어놓기 때문에 서랍을 열면 다 있습니다.
하도 뭘 잘 잃어버려서 고민 끝에 생각해낸 방법이
'무조건 한 군데 모아놓자' 입니다.
그래서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즉시 주머니를 열어 서랍 속에 쏟아 붓습니다.
외출할 때는 서랍을 열고 필요한 것을 골라 가져가는
이 단순 무식한 방법은 뭘 잃어버리지 않는데 상당히 효과가 있습니다.
ⓒ최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