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두 사람은 간단하게 악수를 했다.
순간 개츠비는 당황한 것 같기도 하고, 긴장돼 보이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떻게 지냈나?"
탐은 다시 내게 따져 물었다.
"그리고 무슨 일로 이렇게 멀리까지 식사를 하러 오게 되었지?
"여기 있는 개츠비 씨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러 왔네."
나는 개츠비 쪽을 돌아다보았지만, 그는 벌써 거기에 없었다.
"1917년 10월 어느 날이었어요.
(조던 베이커는 플라자 호텔의 정원 다실에 있는,
등받이가 곧은 의자에 바로 앉아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보도와 잔디밭을 번갈아 가며 줄곧 걸어가고 있었어요.
잔디 위를 걷는 일은 무척 즐거웠어요.
왜냐하면 앞 창에 고무 혹이 붙어 있는 영국에서 보내 온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그것이 부드러운 흙 속으로 파고 들어갔기 때문이었지요.
스커트도 체크 무늬의 새것을 입고 있었는데, 바람이 불면 그것이 조금씩 펄럭였어요.
그럴 때면 붉고 하얗고 또 푸른 깃발들이 모든 집 앞에
빳빳하게 펼쳐진 채 못마땅한 듯이 탓탓탓탓 소리를 내며 바람에 휘날렸지요.
가장 큰 깃발과 가장 넓은 잔디밭은 데이지 훼이 가의 소유였어요.
데이지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열여덟 살이었는데,
루빌의 그 어떤 아가씨보다 인기가 있었어요.
그녀는 흰색의 소형 로드스터를 갖고 있었고 흰 옷을 자주 입고 다녔어요.
데이지네 집의 전화가 온종일 울려 댄 그 날 밤,
테일러 기지의 들뜬 젊은 장교들은 데이지를 독점하겠다고 나섰지요.
'어떻게 해서든지 한 시간 동안만!' 하면서 말이에요.
그 날 아침 내가 그 집 맞은편에 갔을 때,
그녀의 흰색 로드스터가 길모퉁이에 정차해 있었는데,
그 안에는 데이지와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느 중위가 나란히 앉아 있었어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너무나 열중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바로 앞까지 다가가도록 내가 나타난 걸 몰랐어요.
그런데 갑자기 '안녕, 조던.' 하고 뜻밖에 데이지가 소리쳤어요.
'이리 좀 오겠니?'
나는 데이지가 내게 말을 거는 바람에 우쭐해졌었는데,
그 이유는 당시 나는 연상의 아가씨들 중에서 데이지를 가장 사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 장교는 데이지가 말하고 있는 동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가씨라면 누구나 자기를 언젠가는
그렇게 바라보아 주기를 바라는 그런 좋은 인상을 풍겼어요.
그게 내게는 낭만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난 지금도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있어요.
그 장교의 이름은 제이 개츠비였지요.
그 후 4년이 지나도록 나는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어요
-롱아일랜드에서 그를 만난 뒤에도 나는 그가 바로
그 때 그 장교였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그것은 1917년의 일이었어요.
그 다음 해에는 내게도 두세 명의 애인이 생겼고
토너먼트 시합에 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난 데이지를 자주 만나지 못했어요.
데이지는 자기보다 나이가 좀 많은 사람들과 사귀고 있었지요-
데이지의 주변엔 좋지 못한 소문이 떠돌았어요-
어느 겨울 밤에 여행 가방을 꾸리다 어머니에게 들켰는데,
해외로 떠나는 어떤 군인을 전송하려 뉴욕으로 가려고 했었다는 거였어요.
그녀는 당연히 가지 못했고, 그 후 그녀는 여러 주일 동안 가족들과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 일이 있은 데이지는 더 이상 군인과 사귀지 않았어요.
다만 군대에는 절대로 입대하지 못할 평발족이나 눈이 나쁜 몇몇 청년들하고만 사귀었어요.
이듬해 가을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다시 예전처럼 명랑해졌지요.
그녀는 휴전 후 사교계에 데뷔했고,
2월에는 뉴올리언스 출신의 남자와 약혼했다고 소문이 났어요.
그런데 느닷없이 6월에는 시카고의 탐 부캐넌과 결혼을 했어요.
루빌에서는 전에 없던 성대한 결혼식이었지요.
신랑은 네 대의 자가용 차에 백명이나 되는 하객을 싣고 와서
멀바크 호텔 한 층을 전세 냈어요.
그리고 결혼식 전날 35만 달러짜리 진주 목걸이를 그녀에게 주었고요.
난 신부 들러리를 섰죠.
피로연이 시작되기 30분 전에 내가 신부방에 들어갔을 때,
데이지는 꽃장식을 한 드레스를 입고
5월의 장미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어요
-술에 취해 원숭이처럼 빨갛게 되어서 말이에요.
한 손에는 소턴산 백포도주 병을 들고 있고 다른 손에는 편지 한 통을 들고 있더군요.
'축복해 줘.' 그녀가 중얼거렸어요.
'전에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었지.
그렇지만 정말 술은 먹을 만해.'
'왜 이러는 거죠, 데이지?'
난 겁이 났어요. 사실이에요.
그런 여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이봐.' 데이지는 침대에 놓아 둔 휴지통을 뒤져서 진주 목거리를 꺼냈어요.
그리고는 '이걸 아래층으로 가지고 가서 누구에게든 그 주인에게 돌려 줘.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데이지는 이미 마음이 변했다고 말해.
데이지는 마음이 변했다고 말이야.' 하고 말하며 울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울음은 끊이지 않았어요.
나는 달려가서 그녀 어머니의 하녀를 데려와 문을 잠그고 냉탕에 집어 넣었어요.
그녀는 편지를 꼭 쥐고 욕조속으로 들어가서는
그것을 꼭 쥐어짜서 젖은 덩어리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리고는 그것이 눈송이처럼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서야
내게 주면서 비누 접시를 놔 두게 했어요.
그렇지만 그녀는 그 뒤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그녀에게 강한 암모니아수를 주고 이마에 얼음 맛사지를 한 다음에,
드레스를 입혀 등의 호크를 끼워 주었어요.
30분 뒤 우리가 그 방을 걸어나올 때 진주 목걸이는 그녀의 목에 걸려 있었어요.
소동은 끝난 거죠.
다음 날 5시에 그녀는 조용히 탐 부캐넌과 결혼했고
9개월간의 남태평양 여행길에 올랐어요.
난 여행에서 돌아온 그들을 산타바바라에서 만났지요.
그런데 그 때 난 그녀처럼 남편에게 푹 빠진 여자는 처음 본다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남편이 잠시라도 밖에 나가면 불안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탐은 어디 갔지?' 하고 묻는 거였어요.
그리고 그가 보일 때까지 정신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또한 해변의 모래 위에 앉아서 자기의 무릎을 베고 누운 남편의 눈을 어루만지며
한없이 기쁜 표정으로 1시간씩이나 그를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그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는 건 무척 기분 좋은 일이었지요
-사람들로 하여금 말소리를 죽이게 하고 마음의 평화롭게 해 웃게 만드는 거였죠.
그 해 8월 어느 날의 일이었어요.
제가 산타바바리를 떠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밤에
탐이 벤튜라 거리에서 마차와 충돌했고, 그의 차 앞바퀴가 빠져 나갔지요.
같이 탔던 여자의 팔 하나가 부러졌기 때문에 여러 신문에 그 기사가 실렸어요.
그 여자는 산타바바라 호텔의 침실 담당 종업원이었지요.
다음 해 4월에 데이지는 여자아이를 낳았고,
그들은 일 년쯤 프랑스에서 보냈어요.
나는 어느 해 봄에 칸에서 그들을 만났고, 그 후 도빌에서도 그들을 만났는데,
그 다음에 그들은 시카고에 정착하려고 돌아왔어요.
아시겠지만 데이지는 시카고에서 인기가 있었죠.
그 두 사람은 건달류 사람들과 어울려 돌아다녔어요.
하지만 그들은 모두 젊고 돈이 많은 부자들로 절제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데이지만은 절대로 스캔들이 나지 않도록 정숙을 유지했지요.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술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이야기꾼들 속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무척 유리하거든요.
술을 안 마시면 입을 다물고 있어도 될 뿐만 아니라
이들이 만취가 되어 눈뜬 장님처럼 되는 틈을 타 약간의 탈선도 할 수 있지요.
아마도 데이지는 불장난 같은 것을 해 본 적이 전혀 없을 거예요-
그런데도 데이지의 음성에는 어딘지 연정이 느껴지지요. ...
그런데 약 6주일 전에 데이지는 수년 만에 처음으로 개츠비라는 이름을 다시 듣게 되었어요.
내가 당신에게 혹시 웨스트에그에 사는 개츠비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었지요,
생각 나세요? 그 때였어요.
당신이 집으로 돌아가고 난 뒤 데이지가 내 방으로 들어와서 나를 깨우고 묻더군요.
'무슨 개츠비지?' 그래서 내가 아는 얘기를 해 주었더니
-그 때 나는 반쯤 자고 있는 상태였는데-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분명하다고 정신 나간 듯 중얼거렸어요.
바로 그 때야 비로소 나는 개츠비 씨를
데이지의 흰색 로드스터에 앉아 있던 그 장교와 연관시킨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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