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우리는 잔디를 내려다 보았다- 내 집의 볼품없는 잔디밭이 끝난 곳에 선명하게 선이 그어져 그 지점부터 진초록의 손질이 잘 된 그의 잔디밭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내 잔디밭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다른 일도 있습니다." 그는 애매하게 말을 하다가는 망설였다. "그럼 며칠 후로 연기할까요?" 내가 물었다. "아, 그런 게 아닙니다. 최소한-." 그는 어쩔 줄 몰라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그런 게 아니고, 난 생각했습니다 -저, 나 좀 보십시오, 친구분. 당신은 수입이 넉넉하지 못하죠?"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지요." 이 말이 그를 안심시킨 듯 했다. 그는 조금 전보다 한결 자신 있게 말을 계속했다. "수입이 넉넉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실례가 되는 말일지도 모르지만-나는 일종의 부업으로 장사를 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는데, 만일 당신의 수입이 별로 좋지 못하다면- 채권 매매를 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좋지 않습니까, 친구분?" "안 그래도 그 일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 그것은 흥미로울 겁니다. 별로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수입을 올릴 수 었지요. 그런데 그것은 보안 유지가 아주 중요합니다." 지금에야 깨달은 것인데, 다른 상황에서였다면 그 이야기는 내 인생을 바꿀 사건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그 제안을 형식적인 것이었으므로 나로서는 그 자리에서 깨끗하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난 지금 하고 있는 일도 힘에 벅찹니다." 내가 말했다. "고맙지만 더 이상 다른 일에 신경을 쓰기 싫습니다." "울프심과 사업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분명히 그는 앞서의 점심 식사 때 언급된 '거래선'이라는 말 때문에 내가 물러선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잘못 생각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내가 이야기를 계속하기를 바라면서 잠시 더 기다렸다. 그렇지만 나는 내 생각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거기에 응하질 못했다. 그러자 그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날 밤 나는 마음이 개운하고 즐거웠다. 나는 현관문을 들어서자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나는 개츠비가 코니아일랜드로 갔었는지 아니면 저택에 불을 현란하게 켜 놓고 몇 시간이나 '방들을 살펴보았는지'를 모른다. 다음날 아침 나는 사무실에서 데이지에게 전화를 걸어 만찬에 초대했다. "대신에 탐은 데리고 오지 마." 나는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 "뭐라고요?" "탐은 데려오지 말라고." "'탐'이 누군데요?" 데이지는 순진하게 물었다. 데이지를 초대한 날은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 11시쯤 우의를 입은 한 남자가 제초기를 끌고 와서 현관문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개츠비가 우리 집 잔디를 깎으라고 보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것은 내가 핀란드인 가정부에게 일하러 오라고 말한다는 걸 그만 잊어 버린 것을 생각나게 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빗물이 깨끗이 씻어 내린 골목길들을 정신없이 돌아다닌 끝에 그녀를 찾아냈다. 그리고 약간의 컵과 레몬과 꽃을 사기 위해 차를 몰고 웨스트에그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나 내가 사 온 꽃들은 잠시 후 필요가 없게 되었다. 2시가 되자 개츠비의 저택으로부터 꽃을 담을 수많은 용기와 화분 하나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1시간쯤 지나자 현관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하얀 플란넬 양복에 은빛 셔츠와 금빛 넥타이 차림의 개츠비가 허겁지겁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특히 눈이 피곤해 보였다. "모든 것이 잘 되었습니까?" 그는 들어서자마자 물었다. "잔디 얘기라면 잘 됐습니다." "잔디라고요?" 그는 멍하게 묻더니 이내, "아, 마당의 잔디 말이군요."하고는 잔디를 보려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으로 판단하건대 그의 눈에는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아주 좋군요." 그는 건성으로 말했다. "어느 신문을 보았더니, 비는 4시쯤이면 그칠 것이라 했더군요. '저널'지였던 것 같습니다만, 필요한 건 모두 준비됐나요? -차 준비는 됐습니까?" 나는 그를 식료품실로 데리고 들어갔는데, 그는 핀란드인 가정부를 좀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우리 두 사람은 식료품점에서 사 온 12개의 레몬 케이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거면 될까요?" 내가 물었다. "물론, 물론이지요. 훌륭해요!"하고 그는 이번에도 건성으로 대답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친구분." 3시 30분쯤 되자 비는 선선한 안개로 변하더니 가는 빗방울로 변했다. 이따금 그 안개를 뚫고 가는 빗방울이 이슬처럼 흩날렸다. 개츠비는 멍한 눈초리로 클레이의 '경제학'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부엌에서 핀란드인 가정부가 마룻바닥이 흔들리게 걷는 발소리에 놀라기도 하고 마치 밖에서 충격적인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기라도 하듯이 가끔 흐릿한 창문 쪽으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마침내 그는 일어서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자기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을 나에게 알렸다. "왜 그러시죠?" "아무도 오지 않는군요. 너무 늦었습니다." 그는 무슨 다급한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하루 종일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기다렸다고. 이제 겨우 4시 2분 전이에요." 그는 마치 내가 자기를 붙잡아 눌러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참담한 표정으로 의자에 도로 주저앉았다. 바로 그 때 내 집의 오솔길로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우리 둘은 벌떡 일어섰고, 나는 좀 걱정스런 심정으로 마당으로 나갔다. 한 대의 대형 무개차가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는 앙상한 라일락 나무 아래를 지나 집안 차도를 달려 올라오고 있었다. 차가 멈추자 삼각모를 한쪽으로 살짝 기울게 쓴 데이지가 밝고 황홀한 미소를 띠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 집이 분명 오빠가 사는 집인가요?" 사람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빗속에서 거친 고음으로 퍼져 왔다. 나는 어떤 말이 나올 때까지 한동안 그저 귀를 쫑긋거리며 가만 있어야 했다. 그녀의 뺨에는 한 가닥의 젖은 머리카락이 푸른 물감으로 가늘게 그은 것처럼 내려 붙어 있었고, 그녀가 차에서 내릴 때 거들려고 잡은 그녀의 손은 물방울로 빛나고 있었다. "오빠는 저를 사랑하고 있나요?" 그녀가 내 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그렇지 않다면 왜 저 혼자만 부른 거죠?" "그건 래크렌트 성의 비밀이지. 운전사에겐 한 시간쯤 있다 오라고 하렴." "퍼디, 한 시간 후에 다시 와요." 운전사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녀는 소리를 낮춰 내게 소곤거렸다. "저 사람 이름이 퍼디예요." "휘발유가 그의 코에 무슨 영향을 줬니?" "그럴 리가 없는데요." 그녀는 순진스럽게 말했다. "왜 그러세요?" 우리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주 놀랍게도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거 이상한데."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뭐가 이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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