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저 사람은 누굽니까?"
"저 사람 말입니까? 저 사람은 댄 코디 씨입니다."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요. 그렇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게 가장 좋은 친구였답니다."
큰 사무용 책상 위에는 역시 요트복을 입은 개츠비의 조그만 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는 반항적으로 보이기 위해 머리를 뒤로 제치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18세쯤 되었을 때 찍은 사진 같았다.
"난 이 사진이 정말 좋아요."
데이지가 소리쳤다.
"머리칼을 모두 뒤로 넘겨 빗었군요!
머리를 이렇게 했었다는 얘기를 지금까지 전혀 하지 않았어요. 요트 얘기도 그렇구요."
"이걸 봐요."
개츠비가 빠르게 말했다.
"오래 낸 기사 쪽지가 많이 있어요. 당신에 관한 기사지요."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그것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내가 막 루비를 보여 달라고 말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개츠비가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네. ...글쎄요, 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 친구분. ...난 작은 도시라고 했습니다.
그는 작은 도시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어야 해요. ...
그런데 그의 생각으로 디트로이트를 작은 도시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우리에겐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전화를 간단히 끊었다.
"이리 좀 와 보세요."
데이지가 창가에서 소리쳤다.
밖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서쪽에는 어둠이 물러갔고
바다 위엔 분홍빛과 황금빛의 거품 같은 구름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저것 좀 보세요."
데이지는 속삭이고 나서 잠시 후 이렇게 말했다.
"저 분홍빛 구름을 한 덩어리 떼어 그 속에 당신을 넣어서 밀고 다녀 봤으면 좋겠어요."
나는 이 때 돌아오려고 했지만, 그들은 아랑곳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거기에 있다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더욱 단둘만의 호젓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하지요."
개츠비가 말했다.
"클립스프링거에게 피아노를 치게 하는 겁니다."
그는 방을 나가서 '유잉'하고 불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약간 수척한 몸에 별갑테 안경을 쓰고 어리둥절해하는,
숱이 적은 금발의 청년을 데리고 들어왔다.
청년은 앞이 터진 스포츠 셔츠와 누런 색의 즈크 팬츠를 단정하게 입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연습하시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나요?"
데이지가 공손하게 물었다.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클립스프링거는 매우 당황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실은 죽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금방 일어났지요..."
"클립스프링거는 피아노를 칠 줄 알아요."
개츠비가 청년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렇지 않소, 유잉, 친구분."
"잘 치지는 못합니다. 아니 못쳐요-아주 못 칩니다. 통 연습을 하지 않았거든요."
"차라리 우리 아래층으로 내려가지요."
개츠비가 청년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그는 스위치를 올렸다.
온 집안이 전등불로 환히 밝아지면서 어스름하게 보이던 창문들이 사라져 버렸다.
음악실에 들어서자 개츠비는 피아노 옆에 외로이 있는 전등을 켰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성냥을 켜 데이지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고는
방구석에 있는 긴 의자에 그녀와 함께 앉았다.
거기에는 홀에서 스며드는 불빛으로 반사된 마룻바닥의 빛을 제외하고는 빛이라곤 전혀 없었다.
클립스프링거는 '사랑의 보금자리'를 연주한 뒤 의자에서 몸을 돌려
어정쩡한 표정으로 어둠 속에서 개츠비를 찾고 있었다.
"연습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연주를 잘 못 한다고 했지요. 연습을 통 하지 않아서..."
"더 말하지 말아요, 친구분."
개츠비가 명령했다.
"음악을 계속 들려주세요."
아침에도
저녁에도
우리는 즐겁지 않네-
밖엔 바람 소리가 요란했고 해협을 따라 약한 천둥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무렵 웨스트에그에는 온통 불이 켜지고 있었다.
전동차는 사람들을 싣고 뉴욕으로부터 빗줄기를 뚫고 속력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큰 변화가 일어나는 시간이라 공기 속에도 온통 흥분이 일고 있었다.
한 가지만은 분명하기에 더 분명한 것은 없네.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자식들만 얻네.
그러는 동안,
그러는 사이에-
내가 작별 인사를 하러 갔을 때, 개츠비의 얼굴에는 또다시 그 당황한 표정이 떠올랐다.
마치 현재 자신의 행복에 금이 생기기라도 한 것처럼. 거의 5년만의 만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날 오후에도 데이지가 그의 꿈을 중간에서 깨뜨리는 순간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그가 꿈꾸는 환상의 열기 때문에 말이다.
그 열기는 데이지를 뛰어넘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그는 창조적인 정열을 가지고 그 환상에 몸을 내던져 끊임없이 그것을 키우며
자기 앞길에 떠도는 온갖 찬란한 깃털로써 그것을 장식해왔다.
어떠한 불길이나 생기도 인간이 자신의 유령 같은 가슴속에 쌓아올린 것에는 대항할 수 없다.
내가 지켜보고 있을 때, 그는 눈에 띄게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의 손은 데이지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데이지가 그의 귀에 대고 뭐라고 나직이 말했을 때,
그는 솟구치는 정열에 휩싸여 그녀에게로 몸을 돌렸다.
내 생각으로는 억양이 분명하고 열정을 가득 지닌
그녀의 목소리가 그를 완전히 사로잡은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꿈에도 들을 수 없는 달콤한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노래였다.
그들은 한때 내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으나,
데이지는 나를 힐끔 쳐다보고 한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개츠비는 그 때까지도 나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들을 바라보았고 그들은 뜨거운 열정에 압도당한 채 멀리서 나를 돌아다보았다.
곧 나는 그들을 거기에 남겨 둔 채 방을 나와
대리석 계단을 내려와서 빗속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제6장
그 일이 있은 후 어느 날 아침 뉴욕으로부터 젊은 신문 기자가 개츠비를 찾아왔다.
그는 저택 현관문에 도착해서는 개츠비에게 뭔가 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뭘 말하라는 겁니까?"
개츠비가 겸손하게 물었다.
"글쎄요, 발표문 같은 게 있나 해서요."
어정쩡한 5분이 지난 뒤에 그 사나이는 자신의 사무실 주변에서
신분을 밝히기를 꺼리거나 아니면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연줄로 해서
개츠비의 이름을 듣고 찾아왔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기자는 이 날이 마침 비번이기도 해서
직업의식으로 그는 뭔가를 '찾아내려고' 급히 달려왔던 것이다.
그것은 대상을 겨냥하지 않고 마구 총을 쏘는 격이었지만, 그 기자의 직감은 정확했다.
개츠비에게 환대를 받고 그의 과거에 대해 권위자가 된 수백 명의 사람들이 퍼뜨린,
개츠비의 좋지 못한 평판이 여름 내내 확산된 결과
그는 결국 훌륭한 뉴스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에겐 '캐나다로 통하는 지하 정보망'이라느니 하는 별명이 붙어 다녔다.
그리고 그는 절대로 집에서는 살지 않고 집처럼 생긴 배 안에 살면서
롱아일랜드 해안을 비밀리에 드나든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뜬소문이 노스다코타 주 태생의
제임스 개브를 만족시키는 이유가 되었는지는 경위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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