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그녀는 현관문을 점잖게 노크하는 소리가 가볍게 들려 오자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나가서 문을 열었다. 그러자 창백한 얼굴의 개츠비가
물 구덩이 속에 서서 양손을 웃옷 주머니에 찔러 넣은 넣은 채
침통한 눈초리로 내 눈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양손을 계속 웃옷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성큼성큼 걸어서 내 곁을 지나
홀로 들어가더니 마치 줄타기에서처럼 몸을 홱 돌려 거실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도 우습지 않았다.
나는 가슴을 몹시 두근거리는 것을 의식하면서 한
층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막으려고 현관문을 잡아당겼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거실로부터 숨을 죽인 것 같은 속삭임과 짧은 웃음소리가 들리고
이어 데이지의 가식적인,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다시 뵙게 돼서 정말 기쁘네요."
말이 끊어졌다. 그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나는 홀에서 할 일도 없고 해 거실로 들어갔다.
개츠비는 여전히 양손을 웃옷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지나칠 정도로 아주 편안하다는,
아니 지루할 정도라는 여유 있는 태도를 취하며 벽난로 선반에 기대에 서 있었다.
그는 그런 자세로 벽난로의 못 쓰게 된 시계의 숫자판에 기대
머리를 뒤로 깊숙이 젖힌 채 갈피를 못 잡는 두 눈으로 데이지를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데이지는 놀랐지만 우아한 자태로 딱딱한 의자의 모서리에 침착하게 앉아 있었다.
"우리는 전에 만난 적이 있지요."
개츠비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는 순간적으로 흘끗 나를 쳐다보았고,
그의 입술은 웃으려고 노력했으나 끝내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그 순간 시계가 그의 머리에 눌려서 위험할 정도로 기울어지자,
그는 뒤로 돌아서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붙잡아 다시 제자리에 걸쳐 놓았다.
그러고 난 다음 그는 소파에 경직되게 앉아 팔꿈치를 팔걸이에 얹고 손으로 턱을 괴었다.
"시례를 건드려서 정말 미안합니다."
그가 말했다.
그 때 내 얼굴은 묘한 감정에 들떠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으나,
단 한 마디의 평범한 말조차 꺼낼 수가 없었다.
"다 낡아빠진 시계인걸요."
나는 바보스럽게 대꾸를 했다.
바로 그 순간 시계가 방바닥에서 떨어져서 박살이 났다.
"그 후 우리는 여러 해 동안 못 만났어요."
데이지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더할 수 없이 침착했다.
"다가오는 11월이면 5년째가 됩니다."
개츠비가 한 이 대답의 어투가 우리로 하여금 또다시 최소한 1분간은 말을 중단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들 두 사람에게 부엌에서 다과를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겠느냐고 제의해
간신히 그들을 일어서게 했을 때 눈치없는 핀란드 인 가정부가
차를 쟁반에 담아 가지고 들어왔다.
찻잔들과 케이크를 받아 놓는 약간의 소란 속에서도
그들의 어떤 자연스런 예의는 철저히 지켜졌다.
개츠비는 그늘진 자리로 옮겨 앉아 있었는데, 내가 데이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는 긴장되고 침울한 눈초리로 물끄러미 우리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여하튼 침묵을 어서 깨야 할 것이기에 나는 틈을 타서 핑계를 대고 일어섰다.
"어디 갈려고요?"
개츠비가 대뜸 놀라며 물었다.
"곧 돌아올 거예요."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는 허겁지겁 내 뒤를 부엌으로 들어오더니 문을 닫고는 풀이 죽어 귓속말로 말했다.
"어쩌면 좋지요!"
"왜 그러시죠?"
"이건 굉장한 실수입니다."
"왜 그러시죠?"
"이건 굉장한 실수입니다."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말했다.
"이건 엄청난 실수라구요."
"아니 지금 당신은 단지 당황한 거예요."하고 말한 나는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덧붙였다.
"데이지 역시 당황하고 있어요."
"그녀도 당황했다고요?"
그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당신만큼 그녀도 당황하고 있어요."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지 마세요."
"당신은 꼭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는군요."
나는 참다 못해 짜증을 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은 정말이지 예의가 없군요.
데이지가 저 방에 혼자 앉아 있지 않습니까?"
그는 한 손을 들어 내 말을 막았고, 영원이 잊을 수 없는
책망하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그 방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30분쯤 전에 개츠비가 불안스럽게 집을 한 바퀴 돌았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뒷길을 빠져 나가 마디가 울퉁불퉁한, 거대하고 검은 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빽빽한 나뭇잎들이 비를 막아 주는 덮개 구실을 해주었다.
비는 또다시 억수같이 퍼붓고 있었다.
고르지는 못하나 개츠비의 정원사가 잘 깎아 준 나의 잔디밭은
작은 흙탕 구덩이와 늪을 많이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나무 밑에서 바라볼 만한 것이라고는 개츠비의 거대한 저택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반 시간 동안이나 칸트가 그의 교회 첨탑을 바라보았듯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저택은 10년쯤 전에 어떤 양조업자가 '시대'의 유행에 따라 지은 최신형의 것이었는데,
그 양조업자는 모든 이웃 오두막집 주인들에게 만약 그들이
짚으로 지붕을 이으면 5년간의 세금을 대신 내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거절로 '한 가문을 창립'하려던 그의 계획은
좌절되었고 그의 가문은 몰락해 버렸다.
그래서 그의 자식들은 현관문에 새긴 검은 화환을 그대로 둔 채 그 집을 팔았던 것이다.
미국인들이란 기꺼이 혹은 열성적으로 농노 노릇을 하려고 하면서도
언제나 농부의 위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한다.
30분쯤 지나자 다시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고, 하인들의 저녁 식사 재료를 실은
식료품점의 자동차가 개츠비의 저택 차도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나는 개츠비는 분명히 그런 음식은 한 숟가락도 먹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녀 하나가 그의 저택 이층 창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창문으로마다 잠깐씩 모습을 나타내고는
밖으로 내어 단 중앙의 커다란 창문에 몸을 기대고
명상에 잠긴 듯한 얼굴로 정원을 향해 침을 뱉었다.
이제 되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계속해서 비가 내릴 때의 빗소리는 감정이 격해짐에 따라
높아지곤 하는 개츠비와 데이지의 속삭임처럼 들렸었다.
그러나 비가 그친 뒤의 새로운 고요함에 빠져 들자
그 고요함은 집 안까지 깃들인 것같이 느껴졌다.
난로를 넘어뜨릴 뻔한 소리를 내는 등 부엌에서 가능한
모든 시끄러운 소리를 낸 연후에 나는 거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이 그 어떤 소리를 들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두 사람은 긴 의자 양 끝에 앉아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마치 무슨 질문이 오고갔거나 혹은 그것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으나
조금 전의 그 당황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데이지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는데, 내가 들어서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앞으로 다가가서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한편 개츠비에게 놀랄 만한 변화가 있었다.
그는 정말로 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환희의 말 한 마디도 행동도 없었지만,
새로운 행복감이 넘쳐 흐르는 그 빛은 작은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 반갑군요, 친구분."
그는 마치 오랜만에 나를 만난 것처럼 말했다.
나는 한 순간 그가 악수를 하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비가 그쳤어요."
"그래요?"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방 안에 눈부신 방울 같은 햇살이 비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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