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패미, 이리 와요."
"안녕, 내 아기!"
훈련이 잘 된 그 아이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듯이
뒤를 힐끔 돌아보고는 유모의 손을 잡고 문 밖으로 이끌려 나갔다.
바로 그 때 탐이 얼음을 가득 채운 넉잔의 진 리키를 들고 돌아왔다.
개츠비가 자기 잔을 집어들었다.
"정말로 시원해 보이는군요."
그는 어색하게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모두 목이 말랐는지 한 번에 잔을 비웠다.
"어느 책에서인지 읽었는데, 태양이 해마다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답니다."
탐이 기분 좋게 말했다.
"그러니까 얼마 안 있어서 지구는 태양 속으로 떨어져 들어갈 겁니다
-아니, 가만 있자-정반대군요. 태양은 해마다 식어 가고 있다는 거죠. 밖으로 나갑시다."
그가 개츠비에게 권했다.
"이 곳을 한 번 구경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나도 그들과 함께 베란다로 나갔다.
더위에 기운이 다 빠진 파란 바다에는 작은 돛배 한 척이,
더 시원한 바다를 향해 기어가듯 떠가고 있었다.
개츠비는 눈으로 잠시 그 배를 쫓다가 손을 들어 만 건너를 가리켰다.
"나는 이 집 건너편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삼복 더위 속의 바닷가에 있는 장미꽃밭과
뜨거운 잔디와 잡초가 무성한, 손질 안 된 땅을 보고 있었다.
배의 하얀 돛들은 푸르고 시원한 하늘의 경계선을 등지고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앞쪽에는 부채모양의 바다와 풍요로워 보이는 섬들이 가로놓여 있었다.
"재미있는 게임이 있는데..."
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저 사람과 1시간쯤 저기로 가 볼까 해."
우리는 더위를 막기 위해 태양을 가린 그늘진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고,
시원한 맥주와 함께 불안한 즐거움을 만끽했다.
"오늘 오후엔 뭘 할 거죠?"
데이지가 소리쳤다.
"그리고 내일은요? 그리고 앞으로 30년 동안은요?"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말아요."
조던이 말했다.
"인생이라는 것은 시원해지는 가을이면 다시 새출발을 하게 마련이라구요."
"하지만 지금은 너무 더워."
눈물이 나오기 직전에 우기듯 데이지가 말했다.
"게다가 모든 게 걷잡을 수 없이 엉망이야. 모두들 시내로 가는 게 어때요."
그녀의 목소리는 더위 속을 애써 뚫고 부딪치며 무의미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마구간을 차고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어요."
탐이 개츠비에게 말했다.
"그러나 차고를 마구간으로 만든 사람은 내가 처음일 겁니다."
"어떤 분이 시내로 가기를 원하지요?"
데이지가 끈질기게 물었다. 개츠비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옮겨갔다.
"아이, 참!"
그녀가 소리쳤다.
"당신은 너무 냉정해 보여요."
그들의 눈동자가 부딪혔고, 그들은 허공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았다.
데이지는 힘없이 식탁 위로 시선을 떨구었다.
"당신은 언제나 너무 재미없어요."
그녀는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한다고 그에게 말했었다.
탐 부캐넌도 지금 그것을 확인했다. 탐은 굉장히 놀랐다.
그는 입을 조금 벌린 채 개츠비를 보았다.
그러더니 잊었던 옛 친구를 이제 막
알아보기라도 한 듯한 눈으로 데이지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그 광고에 나온 남자와 닮았어요."
데이지는 천진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 광고에 나온 남자 알고 있을 거예요."
"좋아."
탐이 갑자기 끼여들었다.
"나 갑자기 시내에 가고 싶어졌어. 자, 가자고. 우리 모두 시내로 가는 거야."
그가 일어났다.
그의 눈은 여전히 개츠비와 자기 아내의 중간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그러나 움직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가자니까."
탐은 약간 짜증을 냈다.
"대체 왜들 이러는 거지. 시내로 갈 거면 지금 출발합시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잔을 들어 남은 음료를 마셨다.
"데이지의 목소리에 햇볕이 내려쬐는 차도로 나갔다.
"그런데 가서 뭐 하지요?"
데이지가 이의를 제기했다.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우선 담배를 피우고 싶은 사람에게 그렇게 하도록 해 줄 수 없어요?"
"모두들 줄곧 피웠잖소?"
"아이, 그러지 말고 즐겁게 지내요."
그녀가 탐에게 부탁했다.
"너무 더워서 이야기 할 힘도 없군."
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 맘대로 하라고요."
그녀가 말했다.
"이리 와, 조던."
두 여자가 이층으로 준비하러 간 동안 우리 세 남자는
차도에서 뜨거운 자갈을 발로 이리저리 굴리며 서 있었다.
서쪽 하늘에는 벌써 침침한 초승달이 떠있었다.
개츠비가 마음을 고쳐먹고 말을 꺼내려고 했다.
바로 그 때 탐이 빙그르르 돌아서서 그의 말을 기다리듯 마주 보았다.
"이 곳에 마구간을 갖고 있나요?"
개츠비가 애써서 말했다.
"여기서 4분의 1마일 가량 내려가면 있습니다."
"그래요?"
잠시 말이 끊겼다.
"왜 시내로 가려는 거죠?"
탐이 상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자들이란 머릿속으로 그따위 생각이나 한다니까요-."
"마실 걸 좀 갖고 갈까요?"
데이지가 이층 창가에서 소리쳤다.
"아냐, 내가 가지러 갈게."
탐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안으로 들어갔다.
개츠비는 굳은 모습으로 나를 돌아다보았다.
저 사람의 집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군요. 친구분."
"그녀의 목소리는 좀 투박하게 느껴져요."
내가 말했다.
"그 목소리엔 가득하게-."
그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난 지금까지 그런 걸 느끼고 있었다.
정말이지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올라갔다 떨어졌다 하는 천박한 매력이었다.
그 목소리는 딸랑딸랑 울리기도 하고 심벌의 노래 같기도 했다.
그녀는 하얀 궁전에 높이 앉은 공주이자 모든 남성의 우상이었다.
탐이 1쿼트들이 술병을 타월로 싸면서 나왔다.
그 뒤를 데이지와 조던이 금속천으로 만든,
작고 꼭 끼는 모자를 쓰고 팔에는 가벼운 케이프를 걸치고 따라왔다.
"내 차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개츠비가 제안했다.
그러나 이내 그는 의자의 후끈거릴 녹색 가죽을 생각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들에다 주차시켜 두었어야 했는데요."
"이 차는 표준형 변속입니까?"
탐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내 쿠페를 타시지요. 내가 당신의 차를 몰고 시내로 가겠습니다."
이 제안은 개츠비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휘발유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군요."
"휘발유가 넉넉합니다."
탐은 자랑하듯 말하고는 계량기를 들여다보았다.
"혹시 휘발유가 떨어지더라도 약국에 들리면 됩니다.
요즘엔 약국에서 뭐든지 다 팔리더라구요."
둘 사이에 비꼬는 투로 말이 오가자 서로 얼굴이 붉어졌다.
데이지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탐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말할 수 없이 괴로운 표정이 개츠비의 얼굴을 스쳐 갔는데,
그것은 지금은 분명히 처음 보는 것 같지만 마치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어렴풋이 기억할 수는 있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