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 제랄드.
그녀는 너무 열중한 나머지 누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천천히 현상되고 있는 사진에 여러 물체들이 나타나듯이
그녀의 얼굴에는 차례차례 틀린 표정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표정은 이상하게도 눈에 익은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여자의 얼굴에서 흔히 보아 온 그런 표정이었지만,
머틀 윌슨의 얼굴에서는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마침내 나는 질투와 공포로 휘둥그래진 그녀의 눈은
탐에게가 아니라 조던 베이커에게 고정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녀는 조던 베이커를 탐의 아내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사람이 혼란스러워지는 것만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은 없다.
그 예로 탐은 차를 타고 가면서 심한 채찍질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1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의 아내와 정부는 자기 손아귀에 꽉 잡고 있어
아무도 넘보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갑자기 그의 통제에서 벗어나 활개치고 있었다.
데이지를 추월하고 윌슨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야겠다는 그의 본능은
가속기를 마구 밟게 했고, 우리는 시속 50마일로 아스토리아를 향해 달려갔다.
마침내 고가도로의 거미줄 같은 돌도 사이에서
느긋하게 달리고 있는 푸른색 쿠페가 우리의 시야에 들어왔다.
"50번가 근처에 있는 대형 영화관은 시원하지요."
조던이 말을 꺼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외곽으로 빠져나간 여름철 오후의 뉴욕에 좋아요.
어딘지 모르게 감각적인 면이 있거든요-
마치 온갖 이상한 과일들이 무르익어서 손에 쥐어질 것만 같죠."
이 '감각적'이라는 말이 탐을 한층 더 불안하게 만드는 효과를 나타냈다.
그러나 그가 미처 항의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쿠페가 다가왔고
곧이어 데이지가 우리에게 차를 가까이 대라고 신호를 보냈다.
"어디로 가는 거죠?"
그녀가 소리쳤다.
"영화를 보는게 어떻겠소?"
"이렇게 더운데요."
그녀는 짜증을 냈다.
"당신들이나 가세요. 우리는 드라이브나 할 테니 나중에 만나요."
그녀는 간신히 재치 있는 말로 우리를 따돌렸다.
"어느 길모퉁이에서 만나도록 해요.
찾기 쉽게 나는 두 개피의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이 될게요."
"이 곳은 그런 일로 입씨름을 할 데가 아니오."
뒤에서 트럭이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 대자, 탐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센트럴파크의 남쪽으로 해서 플라자호텔 앞까지 우리 뒤를 따라와요."
그는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그들의 차를 바라보는가 하면
그들의 차가 신호에 걸려 늦게 되면 그들이 시야에 들어올 때까지 속도를 늦추었다.
그 때 그는 그들이 옆길로 총알같이 돌진해서는
자신의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우리는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플라자 호텔의 특실 휴게실을 빌렸다.
우리가 그 방으로 떼지어 들어감으로써 끝난
그 끈질기고 떠들썩했던 입씨름을 지금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때 그 과정에서 속옷이 온통 땀으로 가득했던 일만은 생생히 기억한다.
이러한 기억은 그 때 다섯 개의 욕실을 빌리어서
냉수욕을 하자고 했던 데이지의 제안이 생각났기 때문에 떠오른 것인데,
그 후 '민트줄렙을 마시러 간 곳'에 대한 기억으로 더 생생하게 남은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그것은 '미친 생각'이라고 여겼다-
그 때 우리 모두는 어리둥절해하는 호텔 종업원에게 한꺼번에 떠들어댐으로써
아주 유쾌한 기분이라고 생각했거나 혹은 유쾌한 척했던 것 같다.
그 방은 큼지막했으나 숨막힐 것 같았고,
오후 4시가 되어 창문들을 열어제쳤으나
공원의 뜨거운 관목숲으로부터 겨우 한 차례 바람이 불어올 뿐이었다.
데이지는 화장대 앞으로 가서 우리에게 등을 돌린 채 서서는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근사한 방들이군요."
조던이 감탄조로 소곤거리자 모두 한바탕 웃었다.
"다른 창문들도 좀 열어요."
데이지는 거울을 계속 쳐다보면서 시켰다.
"더 이상 열 창문이 없어요."
"그럼 도끼를 가져오라고 전화라도 하는 편이 낫겠군요."
"해야 할 일이란 게 기껏 더위를 잊어버리는 것이라니."
탐이 참을성 없이 한마디했다.
"당신은 자꾸 트집을 잡으니까 더 덥게 느껴지잖아요."
그는 타월로 싸 가지고 온 위스키 병을 풀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시죠?"
개츠비가 의견을 말했다.
"시내로 오자고 했던 사람은 당신이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못에 걸려 있던 전화 번호부가
스르르 빠져 나와서 바닥으로 떨어지자 조던이 귓속말로 말했다.
"실례했어요."
그러나 이번에는 그 누구도 웃지 않았다.
"내가 집겠습니다."
내가 일어나며 소리쳤다.
"내가 집었어요."
개츠비는 끊어진 줄을 살펴보더니 재미있다는 듯
'흠!'하고 중얼거리고는 그것을 의자 위로 던져 올렸다.
"당신의 표현력은 대단해요!"
탐이 날카롭게 말했다.
"뭐 말이지요?"
"그 '친구분' 하는 말 말입니다. 어디서 얻어 낸 말이지요?"
"저 좀 봐요, 탐."
데이지가 화장대에서 몸을 돌리고 말했다.
"개인적인 것에 대해 말을 할 생각이라면 전 여기서 떠날 거예요.
딴 얘기 그만하고 전화를 걸어 민트줄렙에 넣을 얼음이나 주문해 줘요."
탐이 수화기를 집어들자 압축된 더운 공기가 폭발하여 그 소리에 섞여 들어갔고,
우리는 아래층 무도장에서 들려 오는
멘델스존의 결혼진행곡의 엄숙한 화음에 귀를 기울였다.
"이런 무더위에 결혼을 하다니!"
조던이 침울하게 소리쳤다.
"그래도 난 6월 중순에 결혼했었지."
데이지가 지난 일을 기억하며 말했다.
"6월의 루빌에서! 그 때 누군가 기절했었는데, 그 사람이 누구였지요, 탐?"
"빌록시."
탐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맞아. 빌록시라는 이름의 사람이었어.
'블록스' 빌록시였지. 그런데 그는 상자를 만드는 사람이었어
-정말이야-게다가 그는 테네시 주 빌록시 출신이었지."
"사람들이 그를 우리 집으로 실어 왔었지요?"
조던이 말했다.
"우리 교회에서 두 번째 집에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그는 우리 아버지가 나가 달라고 말해도 3주일이나 계속 머물렀었지요.
그가 떠난 다음 날 우리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어요."
잠시 후 그녀가 덧붙였다.
"그와 무슨 연관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난 전에 멤피스 출신의 빌 빌록시라는 사람과 알고 지냈는데..."
내가 한 마디 했다.
"그는 그 사람의 사촌이에요. 그 사람이 떠나기 전에 전 그의 집안 내력을 모두 알았지요.
그 사람은 제게 알미늄으로 만든 골프채를 주었는데,
전 지금까지도 그걸 사용하고 있어요."
결혼식이 시작되면서 음악은 그치고 창문으로 기다란 환호 소리에 뒤이어
'그래요-그래-그래!'하는 짧은 고함 소리가 들려 오더니
마침내 재즈가 터지면서 댄스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제 늙어 가고 있어요."
데이지가 말했다.
"만약 우리가 젊다면 일어나서 신나게 춤을 출 텐데 말이에요."
"빌록시란 사람 기억나요?"
조던이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를 어디서 알게 되었죠, 탐?"
"빌록시?"
탐은 기억을 더듬느라 애를 썼다.
"난 그런 사람을 모르겠는데요. 그는 데이지의 친구였으니까 말이오."
"아니었어요."
데이지가 부정했다.
"전 그를 본 적이 없다구요. 그는 자가용으로 왔어요."
"그런데 그는 당신을 안다고 했소.
그는 루빌에서 자랐다고 했지. 에이서 버드가 그를 마지막 무렵에 데리고 와서
그에게 내줄 방이 없느냐고 우리에게 물었었지."
조던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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